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공부 잘하던 아이의 모습과 함께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친구의 응원을 받아 전교생 앞에 섰던 날, 빌린 선글라스를 쓰고 노래했던 소풍날, 학교까지 걸어 다니던 긴 길이다. 나는 평소 말이 적었지만 앞에 나서기도 했고, 마음에 있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 여러 모습이 나의 어린 시절 안에 함께 있다. 초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잘했다. 늘 한 명의 경쟁자가 있었고, 그 친구를 한 번이라도 이겨 보고 싶었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 데에는 그 마음이 있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승부욕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그 친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가까이에 경쟁자가 있다는 것이 어린 나를 공부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6학년이 되자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가 열렸다.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참여하는 선거였다. 그때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가까운 친구가 있었다. 키가 크고 운동을 잘해서 학교에서 영향력이 있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나를 응원했고, 나는 전교 어린이회장이 되었다. 학창 시절에서 친구의 도움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다. 어린이회장 선거 이야기를 할 때에는 그 친구를 빼놓을 수 없다. 내가 혼자 해낸 일처럼 적으면 친구가 해 준 일이 빠진다. 그 친구는 나를 도왔고, 응원이 결과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어린이회장이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나를 응원해 준 사람도 기억하게 된다. 그 응원도 오래 남아 있다. 어린이회장이 된 뒤에는 매일 조회를 진행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운동장 대신 방송실로 갔다. 선생님과 나만 방송실에 앉아 전교생에게 전달할 말을 읽었다. 떨렸지만 큰 실수 없이 해냈다. 어린이회장이라는 이름에는 매일 해야 하는 일이 붙어 있었다. 선거에서 뽑힌 뒤에도 아침마다 맡은 일을 해야 했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평소 말이 적던 아이가 전교생에게 말을 전하는 일을 맡았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흥미롭다. 많은 말을 잘하는 것과 맡은 말을 제대로 읽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었다. 떨리는 마음이 있어도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 조용한 성격 안에도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모습이 있었다. 학교에는 도시락을 싸다녔다. 겨울이면 교실 난로 위에 도시락을 먼저 올려놓으려고 아이끼리 경쟁했다. 아침 일찍 온 아이의 도시락이 가장 따뜻하게 데워졌다. 공부에서는 한 친구를 이기고 싶었던 내가, 교실에서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따뜻한 도시락을 두고 경쟁하던 셈이다. 그 시절 학교생활에는 시험이나 선거만큼이나 이런 작은 일들이 들어 있다. 어린 시절의 학교를 기억할 때 교실 난로와 도시락이 빠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성적표에는 남지 않아도 아이들에게는 그날의 중요한 일이었다. 겨울 점심시간을 위해 아침부터 도시락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모습이 학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교실에서 함께 지내던 아이들의 생활이기도 했다. 평소 말이 적던 나도 소풍날에는 친구들 앞에 나서곤 했다. 한 번은 경찰이던 오촌 당숙에게 선글라스를 빌렸다.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지만 어린 내게는 귀하고 특별했다. 빌린 선글라스를 쓰고 친구들 앞에서 전영록의 「아직도 어두운 밤인가 봐」를 부르며 춤을 췄다. 방송실에서 전달할 말을 읽던 나와 소풍날 노래하고 춤추던 나는 같은 아이였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의 나를 조용한 아이였다고만 말하기 어렵다. 조용한 성격이었어도 친구들 앞에 나서고 싶을 때가 있었다. 선글라스는 그 기억에 남은 특별한 물건이다. 어린 내게 귀했던 것을 빌려 쓰고 노래와 춤을 보여 주던 소풍날. 평소의 모습과 조금 다른 나도 친구들과 함께 있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긴 통학길이 있었다. 학교는 집에서 6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1학년 때에는 매일 왕복 12킬로미터를 걸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학교에 가려면 그 길을 지나야 했다. 열두 킬로미터라는 숫자에는 학교에 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의 길이 담겨 있다. 학교생활은 교실 문을 들어선 뒤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게는 집을 나서 학교로 가는 길과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도 하루의 큰 부분이었다. 비와 눈이 오던 날도 그 안에 있었다. 매일 오갔던 길을 이야기해야 학교에서 보낸 시간과 집에서 보낸 시간이 이어진다. 그 길은 중학교 시절의 생활 속에 분명하게 남아 있다. 2학년 무렵부터는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다만 날씨가 나쁘면 운행이 중단되었다. 버스가 생긴 뒤에도 통학은 날씨와 무관할 수 없었다. 학교까지의 거리는 그대로였고, 그 길을 오갈 방법은 당시의 사정에 따라 달라졌다. 중학교 시절의 통학을 떠올리면 거리와 날씨, 교통편이 함께 생각난다. 자전거가 있으면 통학이 훨씬 수월했지만, 당시 우리 형편에는 비싼 물건이었다. 부모님은 결국 내가 쓸 자전거를 마련해 주셨다. 자전거를 생각하면 길을 편하게 오갈 수 있다는 점과 그것을 마련한 부모님이 함께 떠오른다. 내게 필요했던 물건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집에서 쉽게 마련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다. 두 사정을 함께 기억하게 된다. 중학교에는 초등학교보다 학생이 더 많았고, 새로운 친구와 선생님도 있었다. 첫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하자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았다. 이후에는 5등 안팎으로 내려갔지만 자신감이 있었다. 성적이 달라진 뒤에도 내가 공부를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은 남아 있었다. 중학교 시절은 참 좋았다. 길을 멀리 오가야 했다는 사실과 그 시절이 좋았다는 기억은 함께 남아 있다. 통학의 어려움만 적으면 친구들과 지내던 시간이 빠지고, 성적만 낮으면 학교에서 누렸던 생활이 빠진다. 친구가 있었고 공부에 자신감도 있었다. 나에게 그 시절은 여러 기억이 겹쳐 있는 시간이다. 집에는 내 방도 생겼다. 세 누나가 공부와 일을 위해 포항과 부산으로 떠나면서 두 칸짜리 집의 한 방을 혼자 쓸 수 있게 되었다. 그 작은 방에서 혼자 공부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편안했다. 방이 생겼다는 짧은 말 안에는 누나들이 집을 떠나 각자의 공부와 일을 찾아갔다는 사정도 들어 있다. 나의 변화가 가족의 변화와 이어져 있었던 셈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좋았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는 시간도 편안했다. 작은 방에서는 혼자 공부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을 좋게 기억하는 데에는 학교 안의 일뿐 아니라 집에서 내 시간을 보낼 자리가 생겼다는 점도 있다. 긴 통학길 끝에 돌아오는 집에는 혼자 쓸 수 있는 방이 있었다. 그 무렵 김씨 성을 가진 한 여학생을 좋아했다. 그 아이도 나도 내성적이었다. 나는 직접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고, 친구들이 내 마음을 대신 전해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관계가 더 나아가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내 입으로 말하는 일은 어려웠다. 공부를 잘하거나 어린이회장을 해봤다는 경험이 그 일까지 쉽게 해 주지는 않았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설렜고, 정작 아무 말도 못 하는 내가 답답했다. 전교생에게 전달할 말을 읽고 친구들 앞에서 노래도 했던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전하지 못했다. 사람들 앞에 서는 일과 한 사람에게 내 마음을 말하는 일은 그때의 나에게 서로 다른 어려움이었다. 그 차이를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나를 조금 더 자세히 이해하게 된다.
그 마음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아련하게 남아 있다. 관계가 어디까지 이어졌는가만으로 기억의 크기가 정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설레던 마음과 말하지 못하던 답답함이 함께 남았다. 학창 시절을 적다 보니, 잘했던 일 못지않게 끝내 하지 못했던 일도 떠오른다. 그 기억 역시 그때의 나를 이루고 있다. 어린이회장, 난로 위의 도시락, 빌린 선글라스, 왕복 열두 킬로미터의 길과 작은 방. 서로 다른 장면들이지만 모두 나의 학창 시절로 이어진다. 그 안에는 나를 도와준 친구와 자전거를 마련해 준 부모님이 있고, 집을 떠난 누나들과 마음을 전하지 못한 여학생도 있다. 내가 어떻게 자랐는지 돌아보는 일은 그 시절 함께 있었던 사람들과 생활의 자리를 다시 기억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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