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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다귀 굴 천지 의 문을 닫던 시간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9. 4.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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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남구 용호동에 감자탕집 ‘뼈다귀 굴천지’를 열었다. 여러 식당에서 설거지와 칼질부터 배웠고, 냉면과 만두를 맡으며 내 기술을 인정받은 뒤였다.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좋았고 내 가게에서 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 사업을 했을 때와 달리 주방에서 쌓은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믿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가게 전체를 운영할 준비가 됐는지는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가게에는 모두 2억 원이 들어갔다. 내가 마련한 1억 원에 형제들에게 빌린 1억 원을 보탰다. 내 돈만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그 금액을 적으면 돈을 빌려준 가족의 마음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 돈을 빌려주었기에 내 돈만으로는 하기 어려웠던 규모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의 결과가 내 생활만 바꾸는 것은 아니었다. 내 선택에 가족의 돈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가게가 어려워졌을 때 더 무겁게 다가왔다. 처음 6개월은 장사가 잘됐다. 방송 출연 제안까지 왔다. 오랫동안 주방에서 보낸 시간이 보람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이 손님을 불러 모은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처음부터 어려웠다면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장사가 잘되던 경험은 쉽게 놓기 어려운 믿음이 됐다. 한동안 잘됐으니 다시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그 첫 6개월의 기억이 바탕으로 남아 있었다. 6개월쯤 지났을 때 바로 옆에 규모가 큰 고깃집이 들어섰다. 당시 유행을 앞서가는 가게였다. 손님들이 그쪽으로 옮겨 갔고 우리 매출은 빠르게 줄었다. 주변 상황이 바뀌자 기술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생겼다. 나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음식을 맛있게 만들면 손님들이 다시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내가 믿고 있는 것과 실제로 가게에서 벌어지는 일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도 요리를 익히던 시간을 헛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정한 맛을 내기 위해 애썼고 맡은 일을 해냈다. 다만 그 경험과 장사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능력을 같은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 손님이 줄어드는 상황 앞에서 나는 가장 익숙한 기준인 음식 맛을 붙잡았다. 다른 대응을 알지 못한 채 잘하던 일을 계속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가 아는 일의 범위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던 셈이다. 매출이 떨어지면서 직원을 줄였다. 처음에는 24시간 운영하던 가게였지만 야간 영업을 중단했고, 나중에는 낮에만 문을 열었다. 운영 시간을 줄이는 일은 단순히 시계를 바꾸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 구상했던 가게의 모습에서 조금씩 물러나는 일이었다. 그래도 문을 열 수 있는 동안은 어떻게든 살려 보려고 했다. 한 번에 끝을 결정하지 못하고 규모를 줄이며 버티는 시간 속에서 가게를 놓아야 할 때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마지막에 가게를 지킨 사람은 약혼자와 어머니, 나였다. 가족이 함께 버텨 주어 고마웠고 그래서 더욱 미안했다. 가게가 잘될 때의 기대를 나눴던 가족에게 어려운 시간을 함께 감당하게 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게를 유지하려던 내 마음만큼 가족이 감당한 수고를 돌아보게 된다. 가족의 도움을 가게를 계속할 수 있는 여력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됐다.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의 수고도 내 선택에 들어 있는 비용이었다. 결국 뼈다귀 굴천지의 문을 닫았다. 내 가게를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지켜 낼 수는 없었다. 문을 닫는다는 것은 앞으로 이 가게에서 벌어들일 돈을 더는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미 들인 시간과 노력을 생각하면 접는 일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오래 버텼다는 이유만으로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나는 사업이 끝났다는 사실과 그 뒤의 생활을 함께 받아들여야 했다. 형제들에게 빌린 1억 원을 갚고 나니 내게 남은 돈은 약 3천만 원뿐이었다. 빌린 돈만큼은 꼭 갚고 싶었다. 내 실패 때문에 가족까지 오래 어려움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은 돈을 보면 줄어든 재산이 분명했지만, 갚은 돈에는 지키고 싶은 관계가 있었다. 가족이니까 나중으로 미룰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게를 지키지는 못했어도 빌린 돈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감당하고 싶었다. 돈을 갚았다고 해서 가족에게 느끼는 미안함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빌린 돈은 금액으로 적을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가게를 지켜 준 시간은 그렇게 정리하기 어렵다. 어머니와 약혼자의 수고를 생각하면 폐업을 내 손실만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그 일을 함께 겪어 준 사람이 있었고, 가게의 문을 닫은 뒤에도 나는 그 사람들과 살아가야 했다. 가게를 정리한 뒤 결혼했다. 사업의 마무리와 새로운 가정의 시작이 가까이 놓여 있었다. 사업에서 잃은 것을 모두 되찾은 뒤에야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잠시 쉬면서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주방에서 배운 기술은 남아 있었으나 당장 어느 길로 가야 할지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한 번 잘했던 일로 돌아가면 되는지,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였다. 그때 경남 고성의 조선소에서 관리본부장으로 일하던 사촌 형이 일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내가 알고 지내던 외식업과는 다른 일이었다. 다시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했지만 이어 갈 길이 필요했다. 지금 이 대목을 돌아보면 실패 뒤의 삶은 거창한 결심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남은 돈을 정리하고 빌린 돈을 갚고 가족과 살아갈 일을 찾는 구체적인 문제가 먼저였다. 닫힌 가게의 결과를 없앨 수는 없어도, 그다음 생활을 마련하는 일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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