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뒤 경남 고성의 조선소에 들어갔다. 신혼집은 통영에 얻은 여덟 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통영에서 고성까지 왕복 1시간 40분이 걸렸다.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밤 8시쯤 돌아왔다. 집에서 보낼 시간은 짧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생활을 지나, 정해진 일터에 나가 일을 배우는 생활이 시작됐다. 주방에서 쌓은 기술이 조선소에서 곧바로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와 표시 업무를 처음부터 배웠다. 나이는 많았지만 나는 신입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석 달이면 익히는 일을 여섯 달 동안 붙잡았다. 남보다 늦었다는 생각은 이미 나이가 많다는 부담과 겹쳤다. 다른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도 모르는 일 앞에서는 다시 서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머리로 아는 것과 매일 평가받으며 견디는 것은 달랐다. 첫 부서에서는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자리를 옮겼다. 일을 잘해서 새 자리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사업을 접은 뒤 다시 시작한 일에서도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새 부서의 반장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곳에서는 훨씬 빠르게 적응했다. 지금 돌아보면 같은 사람도 어떻게 배우고 누구에게 설명을 듣느냐에 따라 이해하는 속도가 달라질 수 있었다. 첫 평가가 내 가능성을 전부 말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 업무는 선박의 구조물이 제대로 조립됐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수천 개의 부재가 설계대로 놓였는지, 수평과 수직이 맞는지 살폈다. 작은 오차를 놓치면 다음 공정에서 문제가 커질 수 있었다. 눈앞의 부분을 확인하면서 그다음 작업까지 생각해야 했다. 주방에서도 재료의 크기를 일정하게 맞추는 일이 중요했지만 또 달랐다. 익숙하지 않은 구조와 작업의 관계를 하나씩 이해해야 했다. 빨리 배우려고 남들보다 먼저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조선소 가까운 구성으로 이사한 뒤에는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할 때도 있었다. 나이 많은 신입이니 더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을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쓰면 늦은 출발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시간이 모자라면 내 시간을 더 넣는 방식에 익숙했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지도 함께 따져야 한다는 생각은 뒤로 밀렸다. 내가 맡은 일만 보지 않고 주변의 작업도 살폈다. 윗사람이 무엇을 확인하고 어떤 근거로 판단하는지 관찰했다. 일이 끝난 뒤에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확인했다. 주방에서 내 일을 마친 다음 윗사람의 일을 익혀 두었던 방식과 닮아 있었다. 처음에는 느리더라도 작업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고 여겼다. 하나의 순서를 외우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판단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려고 애쓴 시간이 쌓였다. 약 1년 만에 2 파트에서 반장 다음으로 기술을 잘 아는 사람이 됐다. 다른 파트의 책임자는 남들이 10년 걸리는 일을 1년 만에 배웠다며 나를 ‘괴물’이라고 불렀다. 그 말은 그 사람이 해준 평가였지만 내게는 큰 힘이 됐다. 첫 부서에서 부족하다는 말을 듣던 때와는 달랐다. 사업 실패 뒤 잃었던 자부심이 돌아왔다. 낯선 곳에서도 다시 기술을 익히고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같았다. 정도 팀에 세 번째 파트가 생길 때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다. 선발됐을 때는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았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일이 가벼워 보였으나 작업량은 빠르게 늘었다. 반장이 된 뒤에는 사람들을 이끌고 작업 순서를 조정하며 마지막 검사까지 책임졌다. 혼자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파트의 판단에 수백 명이 하는 작업이 달려 있었으므로 내가 아는 기술을 전체 작업 속에서 써야 했다. 몇 밀리미터의 오차도 가볍게 넘길 수 없었다. 우리가 괜찮다고 판단해야 다음 공정이 시작됐다. 문제가 뒤늦게 드러나면 구조물을 다시 뜯고 고쳐야 했고, 원청이 협력사에 수리비를 청구할 수도 있었다. 일을 빨리 마치는 것과 정확하게 확인하는 일을 함께 해내야 했다. 책임자가 됐다는 기쁨에는 판단이 잘못됐을 때의 부담도 따라왔다. 나를 믿고 맡긴 자리라는 생각은 자부심인 동시에 긴장을 놓기 어렵게 하는 이유였다. 급여는 금융회사에 다닐 때 받던 수준까지 올라왔다. 생활이 안정됐고 컸다. 그러나 약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한 시기도 있었다. 밤에는 술을 마셔야 잠들 수 있었다. 마시는 동안은 긴장이 풀렸다. 오래 일해 필요한 사람이 되고 그 긴장을 술로 내려놓는 생활이었다. 일에서 얻는 성취가 커지면서 몸과 마음이 쉬어야 한다는 신호를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처음에는 늦게 배운다는 말에 쫓겼고 빨리 배운다는 말에 힘을 얻었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평가가 내게 중요했다. 인정받은 뒤에는 그 기대를 계속 채우고 싶었다. 배움이 느렸던 나도, 빠르게 성장한 나도 같은 사람이었지만 스스로 느끼는 가치는 달랐다. 일을 잘하는 기쁨을 누리면서도 평가에 따라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많이 벌고 오래 일하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생계를 꾸리는 데 소득은 중요했다. 하지만 가족과 보낼 시간은 부족했고 상해 갔다. 신입에서 책임자로 성장한 시간을 돌아보면 배운 기술과 받은 인정은 여전히 내 삶의 일부다. 동시에 그 성과를 위해 내 생활의 얼마를 쓰고 있었는지도 보인다. 그때는 잘 해내는 사람이 되는 데 마음이 쏠려, 그 일을 하면서 어떤 하루를 살고 있는지는 충분히 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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