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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끊기로 한 날에도 삶은 막막했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9. 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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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다친 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통증만이 아니었다. 이전처럼 일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받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자꾸 내 쓸모를 따졌다. 돈을 벌어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가 보살핌받아야 했다. 몸이 할 수 없는 일과 내가 가진 가치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때는 구분하지 못했다. 일을 잃은 일이 곧 나 자신을 잃은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도움받아야 하는 몸을 가진 사람이 되어도 아버지이자 아들이라는 내 자리는 남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도 실패는 여러 번 있었다. 금융회사를 나온 뒤에는 요리를 배웠고, 음식점 문을 닫은 뒤에는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새로 배우고 오래 일하면 어떻게든 다음 생활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믿음을 받쳐 주던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일을 찾아 시작하는 것은 내게 너무 먼 이야기였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남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고, 앞으로 가족을 어떻게 책임질지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술에 더 깊이 의지했다. 마시는 동안은 통증이 흐려졌고 잠이 왔다. 깨어 있는 시간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잠시라도 느끼지 않으려 했던 셈이다. 하지만 술에 취한 동안 멈추는 것은 내 감각뿐이었다. 몸의 상태도 생활비 걱정도 그대로 남았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감당하기 두려운 시간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다. 그 시간을 대신 살아 줄 사람은 없었다. 결국 이혼했고, 어린 아들은 부모님께 맡겼다. 다섯 자녀를 키워 낸 부모님이 다시 손자를 돌보셔야 했다. 나는 내 고통에 갇혀 건강을 잃은 일만 억울해했다. 직장과 가정을 잃은 일이 얼마나 막막한지 생각하면서도 가족이 어떤 걱정 속에 지내는지는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곁을 지키지 못한 일이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술이 깨면 죄책감과 수치심이 밀려왔다. 다시 마시면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술 때문에 생활이 더 무너지고, 무너진 생활이 부끄러워 또 술을 찾았다. 무엇이 먼저였는지 따지는 동안에도 같은 일이 이어졌다. 그 시절을 말할 때 내 사정만 길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아프고 두려웠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내가 가족에게 준 상처도 함께 남아 있기 때문이다. 두 사실을 어느 한쪽으로 지울 수는 없다. 어떤 밤에는 내일이 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눈을 뜨면 통증과 생활비 걱정, 죄책감을 다시 마주해야 했다. 삶을 끝내려던 순간 어린 아들이 떠올랐다. 내가 없으면 아이는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겪을 일도 마음에 걸렸다.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갈 힘을 찾기 어려웠지만 아들 곁에는 남고 싶었다. 그때 붙잡은 것은 먼 미래의 성공이나 행복이 아니라 아이와 다시 살아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그 생각을 했다고 곧바로 희망이 생기지는 않았다. 돈을 벌 방법이 생긴 것도 아니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다음 날 무엇부터 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했다. 그래서 나는 그 밤을 모든 문제가 풀린 순간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끝내려던 삶을 조금 더 이어 가기로 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후의 생활은 따로 만들어야 했다. 아이를 떠올린 마음만으로 집을 꾸리고 일을 구하고 아픈 몸을 돌보는 일이 저절로 되지는 않았다. 2020년 1월 무렵 술과 담배를 끊기로 했다. 살아남아서 다시 아들을 돌보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결심한 마음과 몸의 반응은 같지 않았다. 술을 끊자 찾아왔고 힘들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받으며 그 시간을 견뎠다. 혼자 참으려고만 하다가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진료받는 동안에도 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남아 있었다. 그 두려움이 사라져야만 술 없이 지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내 생활로 배워야 했다. 예전의 나는 힘든 일을 오래 버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주방에서도 조선소에서도 남보다 더 일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술을 끊는 과정까지 그런 방식으로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내 힘만으로 해결했다고 말하면 실제로 진료받으며 버틴 시간을 지우게 된다. 그 시기에 내게 필요했던 것은 강한 사람처럼 보이는 일이 아니었다. 힘들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고 다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움받는 일이었다. 아들이 살아갈 계기가 되어 주었다는 말은 지금도 내게 사실이다. 다만 그 말을 아이가 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아버지가 살아가는 책임까지 아들에게 맡길 수는 없다. 내가 술을 끊고 생활을 돌보는 것은 어른인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아들은 내 선택에 보답하려고 자기 삶을 살 필요가 없다. 그때 떠오른 어린 얼굴을 고맙게 기억하는 마음과 아이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는 태도를 함께 지키고 싶다. 술과 담배를 끊은 뒤에도 몸은 아팠고 돈 걱정은 남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그 문제들을 깨어 있는 상태로 마주해야 했다. 내가 저지른 일을 인정하고, 치료받고, 아들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활을 다시 꾸리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번의 결심을 오래 자랑하는 것보다 그 뒤의 하루가 더 중요했다. 나는 모든 것을 되찾겠다는 약속 대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아버지로 살아가는 일을 시작했다. 아직 남아 있는 어려움도 그 생활 안에서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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