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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데려온 뒤에야 알게 된 하루의 무게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9. 4.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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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계신 양산 가까이로 돌아와 살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맡겼던 아들을 데려왔다. 다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기쁜 마음만으로는 두 사람의 생활을 꾸릴 수 없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유치원에 보내는 일을 이제 내가 맡아야 했다. 아버지로 돌아간다는 말은 크게 들렸지만 실제로 내 앞에 놓인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아이의 하루였다.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며 울었다. 아들을 키워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렸다. 이미 다섯 자녀를 키우신 분들에게 다시 어린 손자를 맡겼으니 죄송한 마음이 컸다. 내가 무너져 있던 동안에도 아이의 생활은 멈추지 않았고, 그 생활을 부모님이 지켜 주셨다. 아들을 다시 데려온 것으로 지난 시간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대신 감당하신 수고를 기억하면서 이제 내가 맡을 몫을 해야 했다. 내가 아이를 맡겼다는 한 문장 안에는 부모님이 대신 보내신 날들이 있었다. 그 시간은 내 사정이 어려웠다는 설명만으로 다 이야기할 수 없다.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다. 돈이 부족해지고 있는 몸으로 직장에 다니기도 어려웠다. 몸을 돌봐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생각하면 일을 놓을 수 없었다. 집을 마련하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고 생활이 안정된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채울지 하나씩 알아가야 했다. 회복을 기다렸다가 양육을 시작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어서, 아픈 몸과 부족한 형편을 가진 채 아버지 일을 배워야 했다. 아침이면 아들을 깨워 유치원에 보냈다. 일을 마치면 데리러 갔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학교생활과 교육을 살폈다. 짧게 적으면 몇 줄이면 되는 일들이지만 실제로는 내 하루의 시간을 정했다.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아이를 데려오는 일부터 생각해야 했다. 몸이 아프다고 아이의 일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혼자 생활할 때와 달리 내가 해야 할 일을 미뤘을 때 영향받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전혀 낯설었던 것은 아니다. 아들의 어머니는 많이 아팠고, 이혼 전에도 내가 집에 있을 때 아이를 돌보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혼자 하루를 전부 책임지는 것은 달랐다. 내가 잠시 맡아 하는 일과 매일의 생활을 끝까지 살피는 일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는 아이를 덜 사랑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이 쓸 수 있는 시간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양육 속에서 알게 되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돌봄에는 많은 것이 필요했다. 밥을 먹이고 옷을 챙기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안아 주어야 했고, 같은 말을 여러 번 설명해야 했고, 함께 놀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했다. 내가 이미 충분히 말했다고 느껴도 아이에게는 아직 필요한 말이 있었다. 아픈 몸으로 일을 마친 뒤에도 아이와 나눌 시간은 따로 있어야 했다. 집에 함께 있다는 것과 아이에게 마음을 내주는 것이 늘 같은 일은 아니었다. 아이에게는 아버지가 필요했고 쉬어야 할 몸이 있었다. 어느 한쪽이 틀린 요구가 아니어서 둘을 함께 살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육아 스트레스가 심했다. 꿈속에서조차 아이를 시설에 보내야 하나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기억을 쓰는 일이 편하지는 않다. 다시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감추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내가 너무 지쳐 있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했다. 그때의 피로가 없는 일처럼 만들면 혼자 아이를 키운 시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몸과 마음의 여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들을 다른 곳에 보내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이 일을 내가 끝까지 참아 낸 이야기로만 남기고 싶지는 않다. 지친 마음을 계속 눌러 두는 것으로는 생활을 오래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그런 생각이 꿈에 나타날 만큼 버거웠다는 데도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아버지라는 이유로 힘들다는 말을 삼키는 것이 아이를 위한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지 살피는 일 역시 양육에 포함되어야 했다. 한때 나는 가족을 책임진다는 것을 오는 일로 이해했다. 그래서 조선소에서 오래 일했고 아픈 몸도 쉬게 하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살고 나니 책임에는 돈으로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아이의 말을 듣고 같은 설명을 되풀이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런 일은 한꺼번에 많이 해 놓을 수 없었다. 어제 잘 돌보았다고 오늘의 돌봄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때로는 무겁게 다가왔다. 다시 아들과 살기로 한 선택을 후회한다는 뜻은 아니다.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많은 힘을 요구하는지 뒤늦게 배웠다는 뜻이다. 아이를 위해 돌아왔다는 마음이 나를 저절로 능숙한 아버지로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서툰 부분은 배우고 감당하기 힘든 부분에는 도움이 필요했다. 나는 모든 일을 혼자 해내야만 떳떳한 아버지라고 생각했지만, 그 기준을 그대로 지키려 할수록 내 몸과 마음이 지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데려오던 일을 떠올리면 부모님께 흘린 눈물과 그 뒤에 이어진 생활을 함께 생각한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지만 이어가는 데는 계속 힘이 들었다. 지금도 내가 잘했던 일만 골라 적고 싶지는 않다. 아이를 사랑하면서도 지쳤고, 책임지고 싶으면서도 혼자서는 버거웠다. 그 사정을 인정한 자리에서 아버지로 사는 방법을 다시 배웠다. 내게 필요한 도움까지 포함해서 두 사람의 하루를 꾸리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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