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키우면서 일자리를 찾을 때는 예전과 다른 것부터 살펴야 했다. 얼마를 벌 수 있는지뿐 아니라 언제 일할 수 있는지,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아이를 돌보고 생활비를 마련하고 몸도 보살펴야 했다. 어느 하나를 나중으로 미루기 어려웠다. 세 가지를 모두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막연히 걱정한다고 아이의 등하교 시간이 바뀌지는 않았다. 내 하루를 그 시간에 맞춰 다시 짜야 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회사에 다니기는 어려웠다. 아들의 등하교와 돌봄을 맞춰야 하고 있는 몸도 고려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고르고 생활을 맞추던 때와는 달랐다. 내게는 이미 지켜야 할 시간이 있었다. 조건이 맞지 않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지만, 그 조건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일을 시작하는 것만큼 계속할 수 있는지도 중요해졌다. 일자리를 알아볼 때마다 내가 맞출 수 있는 시간부터 생각했다. 그 시간을 좁은 조건으로만 보지 않고 아들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약속으로 받아들이려 했다. 아들의 일정에 맞춰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과 일하는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일도 찾았다. 내가 가진 경력 가운데 지금 쓸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했다. 이전처럼 오래 서 있거나 몸을 많이 쓰는 일은 부담이 컸다. 예전에 할 수 있었다는 이유로 지금도 같은 일을 맡을 수는 없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과정은 달라진 몸을 자꾸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일정이 맞지 않을 때는 부모님이 아들을 돌봐 주셨다. 다시 아이와 살겠다고 데려온 뒤에도 부모님 손을 빌려야 하니 죄송했다. 그래도 그 시간에 일을 할 수 있었다. 혼자 양육한다는 말 뒤에는 부모님이 내주신 시간이 있었다. 내 수입만 적어 놓으면 보이지 않는 수고였다. 내가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할 때면 맡은 일을 한 나의 노력과 아이를 돌봐 주신 부모님의 도움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하루는 계획한 그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일에 시간을 더 써야 하는 날도 있었고 양육에 매달려야 하는 날도 있었다. 몸이 좋지 않으면 세워 둔 계획을 바꿨다. 모두 제대로 해내겠다고 생각할수록 바꿔야 하는 일정이 내 잘못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실제 생활에 맞아야 쓸모가 있었다. 아이를 돌보는 시간과 내 몸의 상태를 지우고 만든 시간표는 아무리 빈틈없어 보여도 오래 지키기 어려웠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과 심리학 학위를 위한 과정을 밟았다. 공부가 곧바로 일자리나 수입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금의 몸과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며 배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한때 시험을 포기한 뒤 공부에서 멀어졌던 내가 다시 과정을 밟고 있다는 사실도 내게는 의미가 있었다. 이번에는 생활과 동떨어진 목표를 세우기 어려웠다. 배움의 목적이 생활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부담이기도 했지만 붙잡을 이유이기도 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배우는 쪽으로 시간을 써 보고 싶었다. 사회복지는 대학 진학 때부터 관심을 가졌던 분야였다. 당시에는 법학을 택하면서 그 관심을 뒤로 미뤘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른 처지에서 다시 공부하게 된 셈이다. 예전에는 사람을 돕는 일에 관심을 두었다면, 이제는 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책을 읽었다. 어려운 사람의 사정이 내 생활에서 멀지 않았다. 오래전에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돌아보는 마음보다 지금 배운 것을 어떻게 이해할지가 더 중요했다. 공부하면서 한부모가정과 장애인을 위한 복지제도를 알게 되었다. 지원이 있어도 내가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면 신청할 수 없었다.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것과 필요한 사람이 그것을 알고 찾아가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나도 그 거리를 모르고 지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렸고, 무엇을 알아봐야 하는지 아는 일도 별도의 수고였다. 생활을 유지하는 데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제야 실감했다. 필요한 정보를 찾고 주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람이 그냥 죽으란 법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걱정이 사라져서 한 말은 아니었다. 혼자서는 방법이 없다고 여겼던 생활에 알아볼 곳과 부탁할 사람이 있다는 뜻에 가까웠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내 책임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를 돌보고 일을 구하는 일은 계속 내 몫이었다. 다만 그 몫을 감당하는 데 다른 사람과 제도의 힘을 받을 수 있었다.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새벽 배송도 했다. 배송 일을 하면 통증이 더 심해졌다. 몸에 무리가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그만두기 어려웠다. 이 시간을 떠올릴 때 성실하게 버텼다는 말만 남기고 싶지는 않다.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과 몸이 견뎌야 하는 부담이 함께 있었다. 나에게 맞는 일을 찾는다는 것은 덜 힘든 일을 바라는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아이와 생활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찾은 일과 새로 시작한 공부는 반듯한 순서로 정리되지 않는다. 일을 하다가 몸 때문에 계획을 바꾸었고, 아이의 일정 때문에 도움을 청했으며, 생활을 위해 제도를 알아봤다. 어느 하나만 잘한다고 나머지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았다. 지금도 그때의 나에게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을 보태고 싶지 않다. 이미 애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더 많은 시간을 쓰라는 재촉보다, 주어진 시간과 몸으로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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