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처음 만나면 긴장되면서도 설렌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 앞에서도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내 마음인데도 왜 이런 감정이 드는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아들을 키우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웬만하면 화내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지친 날에는 다짐과 달리 화부터 낼 때가 있다. 지나고 나면 미안하다. 조금만 차분하게 말할 수는 없었을까.
분명 내가 한 행동인데, 내가 원했던 모습과는 다르다. 이런 순간을 돌아보면서 의식과 무의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프로이트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욕망과 기억, 마음속 갈등도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았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은 이처럼 의식에 직접 드러나지 않으면서 마음에 작용하는 영역을 뜻한다. 미국심리학회는 이 개념과, 단순히 자각 없이 일어나는 정신 과정을 가리키는 용법을 구분한다. 미국심리학회 심리학 사전
따라서 ‘나도 모르게 한 행동’을 모두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내가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억압된 기억이나 욕망이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나는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접하면서, 평소 당연하게 여겼던 내 반응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왜 힘들다는 말을 못 했는지, 왜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혼자 해결하려 했는지 궁금해졌다.
나는 다섯 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부모님은 농업과 어업을 하며 바쁘게 일하셨다. 어린 나도 부모님이 고생하신다는 것을 느꼈던 것 같다.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야 한다.’
‘부모님께 폐를 끼치면 안 된다.’
누가 매일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느새 나는 그런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힘든 일이 생겨도 먼저 참았고, 도움을 부탁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혼자 감당하려 했다.
참고 견딘 덕분에 해낸 일도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는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해졌다. 불안하고 화가 나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실패했다고 느끼거나 억울한 일이 있어도 겉으로는 버티는 모습을 보이려고 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린 시절의 경험과 이후의 습관이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 모든 어려움을 성장 환경 하나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의 일과 관계, 몸의 상태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들 때마다 찾았던 것이 술이었다. 마시는 동안에는 긴장이 조금 풀렸다. 마음속에 쌓인 감정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술이 깨면 문제는 그대로였다. 나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술을 끊었고, 지금은 단주 7년째를 보내고 있다.
술을 끊은 뒤에도 마음의 어려움은 남아 있었다. 지금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있다. 치료를 이어가는 동안 수면이 일정해졌고, 마음도 전보다 안정되었다.
이제는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진료를 받는 일이 내 생활에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혼자 참으려고만 했던 때와 달라진 부분이다.
헬스를 시작한 지는 올해로 4년째다. 러닝은 약 1년 전부터 시작했고, 요즘은 하루에 한 시간가량 달린다.
달리는 동안에는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생각이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 계속 걱정하던 일에서도 잠시 떨어질 수 있다. 운동을 마치면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지고, 해야 할 일을 다시 시작할 힘이 생긴다.
꾸준히 운동하면서 체력과 끈기가 좋아졌다고 느낀다. 잠을 자고 일상을 보내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이것은 내가 경험한 변화다. 내게 맞는 생활을 찾는 과정에서 운동이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지금도 치료를 받으면서 운동을 이어간다. 마음을 이해하려고 공부하는 일과 몸을 움직이는 일이 내 생활 안에서 함께 자리 잡았다.
나는 내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 심리학을 공부했고 학위도 취득했다. 심리학 책과 심리치유 에세이를 읽다가 직접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로 적으려니 막연하게 넘겼던 일을 다시 생각해야 했다. 무엇이 억울했는지, 어떤 순간이 부끄러웠는지, 왜 나에게 그렇게 엄격했는지 문장으로 옮겼다. 쉽게 써지지 않는 대목도 있었지만, 피하고 있던 감정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도 과거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화를 하면서 어려운 형편에서도 나를 위해 애쓰셨고, 많이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을 다시 느꼈다.
어린 내가 힘들었던 기억도 남아 있다.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한다고 그 기억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부모님의 사정과 어린 나의 마음을 함께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대화가 내 마음을 풀어 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요즘은 예전보다 나 자신을 덜 미워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편해졌고,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도 커졌다. 여전히 불안하거나 화가 나는 날은 있지만, 그런 감정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몰아붙이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무의식에 대한 관심은 결국 이런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왜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반응을 할까.’
이유를 서둘러 하나로 정하기보다, 최근의 일을 구체적으로 돌아보면 어떨까. 다음 질문은 내 반응을 살펴보기 위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 질문만으로 무의식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단정하기 전에, 내 행동이 나온 상황을 자세히 볼 수는 있다.
아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쳤다는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 아이에게 화낸 행동을 돌아보는 일은 함께 필요하다. 내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들과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사회봉사를 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만난 경험도 기억에 남는다. 내 어려움만 크게 느껴졌던 때와 달리,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 보였다. 작은 도움이라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
책과 공연, 전시 같은 문화예술에도 관심을 가져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야기 속 인물에게 유난히 마음이 가거나, 어떤 음악과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면 그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평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감정을 돌아볼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관심 가는 책을 조금 읽거나, 참여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을 알아보는 정도로 시작해도 좋겠다. 불안이나 분노, 음주 문제 때문에 일상을 감당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와 상의하는 일도 필요하다. 나 역시 지금까지 진료를 받으며 생활하고 있다.
나는 아직 내 마음을 전부 알지 못한다. 다만 예전처럼 불편한 감정을 술로 피하지는 않는다. 왜 힘든지 생각해 보고, 글로 적고, 필요하면 도움을 구한다. 내게는 그 변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