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문 앞의 공포 최악의 상상 옆에 살아낸 경험을 놓습니다
전신마취를 앞두고 가장 무서웠던 것은 통증이 아니었습니다. 깨어났을 때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추락사고로 목을 심하게 다친 뒤 받은 목등뼈 수술은 이전의 어깨와 무릎 수술과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몸의 두려움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공포를 없애는 법보다, 두려운 상태에서도 나를 어떻게 돌볼지 생각하게 했습니다.
머리로 이해한 수술과 몸이 받아들인 위협
병실에 있을 때부터 잘못되면 죽거나 하반신이 마비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시 내가 가장 두려워한 결과에 대한 기억입니다. 모든 목 수술에 같은 위험이 따른다거나 실제 가능성이 얼마나 되었는지 설명하는 말은 아닙니다. 수술의 위험은 손상 상태와 수술 방법 등 개인의 의학적 조건을 바탕으로 의료진에게 확인해야 합니다. 어깨나 무릎 수술 때에는 결과가 나빠져도 삶 전체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그것 역시 그때의 나의 인식이었습니다. 목을 다친 뒤에는 생명과 움직임을 잃을 수 있다는 상상이 훨씬 가까이 느껴졌습니다. 같은 사람이 수술받아도 부위와 상황, 이전에 알고 있던 정보에 따라 두려움의 무게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불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위험을 예상하는 감정이고, 공포는 눈앞의 위협에 반응하는 감정으로 설명되곤 합니다. 실제 경험에서는 둘이 겹칩니다. 병실에서 미래를 걱정하던 마음은 수술실로 이동하며 더욱 선명해졌고, 마취를 시작하던 순간에는 몸 전체를 덮는 감각이 되었습니다. 두 감정의 이름을 정확히 고르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알리는 일이 먼저였을 것입니다. 당시는 코로나19 유행 시기여서 보호자가 함께 있을 수 없었습니다. 옆에서 손을 잡아줄 사람 없이 혼자 수술실로 이동했습니다. 목이 타는 듯이 말랐고, 마취가 시작되자 공포는 정점에 달했습니다. 그러다 몇 초 만에 의식이 끊겼습니다. 지금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수술의 기술적인 설명과 별개로 혼자였다는 감각이 얼마나 컸는지 떠오릅니다.
뉴스에서 본 타인의 일이 내 미래가 되는 순간
수술 전에는 목을 다친 뒤 마비가 남은 사람들의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남에게 일어난 일이 곧 나에게 닥칠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올 손과 펠프스가 정리한 공포의 사회적 학습 연구는 직접 위험을 경험하지 않아도 타인의 경험과 정보를 통해 두려움을 배울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위험을 미리 배우는 능력은 필요하지만, 내 상황을 판단할 때 다른 사람의 결과가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사례는 실제보다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 뉴스가 거짓이었다거나 두려움이 쓸데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타인의 경험에서 배울 부분과 내 상태에 관한 의학적 정보를 나누어 살피는 일이 필요합니다. 수술의 이유와 예상되는 경과, 주의할 점을 질문하는 것은 공포를 억지로 누르는 것보다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영역을 찾게 해줍니다. 질문을 적어 의료진에게 전하고 이해되지 않는 점은 다시 묻고 싶습니다.
깨어난 뒤 다리를 움직여 보았던 기억
마취에서 어렴풋이 깨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두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정신이 또렷하지 않았지만 움직이는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다리가 정상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수술 전 내 마음을 차지했던 최악의 장면이 그대로 현실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몸으로 확인한 순간, 말로 다 옮기기 어려운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던 몸으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수술 뒤 지체 장애가 남았고 지금도 그 몸으로 살아갑니다. 이 현실을 놓고 보면 당시의 공포를 단지 기우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실제 손상과 위험이 있었고 상실도 남았습니다. 동시에 잃은 것만으로 지금의 몸을 전부 설명할 수도 없습니다. 남아 있는 어려움과 다시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살펴야 합니다. 그날의 안도감은 지금도 내 몸을 바라보는 데 영향을 줍니다. 예전과 똑같이 할 수 있는지만 물으면 부족한 것만 보입니다. 오늘 움직일 수 있는 범위와 쉬어야 할 때를 물으면 구체적인 상태가 보입니다. 수술을 견뎠으니 모두 이겨낼 수 있다고 장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의 생존 경험을 새로운 무리의 근거로 삼지 않으려 합니다. 두려움이 남아 있어도 생활을 넓혀갈 수 있습니다
큰 수술을 앞두고 겁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공포증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는 없습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는 공포증을 특정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강하고 지속적인 두려움과 회피가 생활에 영향을 주는 문제로 설명합니다. 진단에는 실제 위험과 감정의 정도, 지속과 생활의 제약을 함께 살피는 평가가 필요합니다. 위험한 상황에서의 자연스러운 공포까지 질환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공포를 다루는 방법 중에는 안전한 상황을 작은 단계로 경험하는 접근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술 뒤의 통증이나 움직임의 한계를 무조건 두려움 탓으로 여기고 밀어붙여서는 안 됩니다. 먼저 의료진과 몸의 상태, 움직여도 되는 범위를 확인해야 합니다. 실제 손상을 살피는 일과 불필요하게 좁아진 활동을 넓히는 일은 서로 대신할 수 없습니다. 안전이 확인된 활동에서도 내 속도는 남의 속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한 번 시도한 뒤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쉬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어제 할 수 있었던 일을 오늘 못 했다고 회복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반대로 오늘 괜찮다고 활동을 한꺼번에 늘릴 필요도 없습니다. 기준은 두려움을 이겼다는 증명이 아니라 내 몸으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방식입니다.
두려움의 기억도 지우기보다 설명할 수 있게 두고 싶습니다. 어떤 장면이 떠오르는지, 그때 무엇이 가장 무서운지,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족에게 이야기할 때도 무조건 괜찮다는 답을 얻으려 하기보다 내 상태를 함께 알아차리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면 전문가와 경험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수술 기억 때문에 잠이나 일상이 계속 흔들릴 때는 참고 지나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몸의 문제와 마음의 문제를 스스로 완벽히 구분한 뒤에야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진료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공포를 말하는 것은 회복이 덜 되었다는 부끄러운 고백보다, 지금도 필요한 돌봄을 찾는 과정입니다. 부모님의 부고처럼 아무리 걱정해도 미리 막을 수 없는 사건이 삶에는 있습니다.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준비하되 모든 가능성을 생각 속에서 먼저 겪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의 수면과 운동, 생활을 돌보는 행동은 미래를 완전히 통제해 주지는 않습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구하고 대응할 여유를 마련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수술실 문 앞에서 목이 타들어 가던 나에게 지금 말을 건넨다면 두려움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그 마음 곁에는 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내게 남은 것은 무서웠던 기억 하나만이 아닙니다. 다리를 움직였던 안도감과 장애가 남은 몸으로 일상을 이어온 시간도 있습니다. 최악의 상상이 앞서갈 때마다 이 경험을 나란히 놓고, 오늘 가능한 움직임을 살피려 합니다.
참고 자료
Olson·Phelps(2007), Social learning of fear. https://www.nature.com/articles/nn1968
영국 국민보건서비스, Phobias. https://www.nhs.uk/mental-health/conditions/phob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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