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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에게 기대면서도 내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학

by 늘파란바다 2026. 10. 20.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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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기대면서도 내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돌보고 아이를 키우며 생계와 집안일까지 책임지던 때, 나는 누군가에게 기댄다는 생각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은 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고백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혼자 감당하는 생활을 반복하다 보니 돌보는 사람인 나도 지쳐갔습니다. 이혼 뒤 부모님과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회복하면서, 도움받는 일과 삶의 주도권을 잃는 일은 같지 않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돌보는 사람의 어려움도 돌봄의 일부입니다
결혼 생활 당시 아내는 조현병과 공황장애, 우울증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받았습니다. 나는 남편이면서 아버지 같은 보호자의 역할까지 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경제활동을 하면서 아이를 돌보고 공과금을 내고 집안일을 처리했습니다. 생활의 많은 영역이 내 몫이라고 생각할수록 잠깐 쉬거나 도움을 구하는 일조차 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내에게 도움이 많이 필요했던 사정을 의존적인 성격이나 개인의 미성숙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질환이 일상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고 필요한 지원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이 모든 도움을 무한정 제공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사자의 치료를 돕는 일과 돌보는 사람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은 서로 충돌하는 의무가 아닙니다. 나는 당시 나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임을 충분히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퇴근하면 아이를 돌보고 밤에는 술을 마신 뒤 다시 출근했습니다. 술을 마실 때 잠시 책임의 무게를 잊는 듯했으나 다음 날 생활은 그대로였습니다. 사람에게 내 상태를 알리지 못한 빈자리에 술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관계에서 도움을 구하는 의존과 알코올에 의존하는 문제는 같은 의미로 묶어서는 안 됩니다.
도움받은 시간이 부모의 책임을 이어주었습니다. 결혼이 끝난 직후 나는 바로 모든 일을 혼자 감당할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아이를 부모님께 맡겼습니다. 아이와 떨어져 있다는 미안함이 컸지만 선택이 부모의 자리를 내려놓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상태에서 억지로 버티기보다 다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은 바로 그 시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전국을 여행하며 익숙한 환경에서 잠시 떨어져 내 상태를 돌아보았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의 도움으로 수면을 회복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여행과 약 중 무엇 하나가 모든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도움을 받으면서 안정된 뒤 아이를 다시 데려와 둘이 함께 생활하고 양육할 여건을 찾았습니다. 이 경험을 자율성의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결정성 이론에서 자율성은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선택한다고 느끼는 것을 뜻합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는 독립과는 구분됩니다. 처방을 이해하고 질문하면서 치료에 참여하거나,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필요를 인정하는 선택도 자율적일 수 있습니다. 도움의 유무만으로 한 사람의 주체성을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도움받기로 동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지원이 좋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할 정보가 부족하거나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습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설명을 듣고 내 의견을 말할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자율성은 혼자 결정하라는 요구보다, 다른 사람과 상의하는 과정에서도 내 필요와 뜻이 존중되는지를 묻게 합니다. 도움을 받는 방식에도 나의 의견을 말할 자리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의존의 역설을 내 경험에 비추어 읽기
부르게 피느냐는친밀한 관계 연구는 필요할 때 의존을 받아주는 상대의 반응이 이후의 자율적인 행동과 목표 추구에 연결될 수 있음을 살폈습니다. 안전하게 기댈 수 있다는 경험이 오히려 혼자 움직일 힘을 돕는다는 점에서 의존의 역설이라고 불립니다. 기대면 약해질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내 믿음을 다시 보게 하는 연구입니다. 다만 이 연구가 모든 의존이나 모든 관계에 같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인 관계에서 관찰한 결과를 내 가족과 치료 경험에 그대로 적용할 수도 없습니다. 나는 연구를 내 선택이 옳았다는 인증보다 도움의 방식을 생각하게 하는 근거로 읽고 싶습니다. 좋은 지원은 당사자를 대신해 모든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선택하고 행동할 자리를 남겨줄 필요가 있습니다.
내 경우 부모님께 양육의 도움을 받고 의료진에게 치료받은 시간은 내 몫을 전부 넘기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도움받는 동안에도 아이의 부모라는 자리는 나에게 있었습니다. 다시 양육을 이어갈 수 있는 상태를 마련한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을 돌아보면 혼자 견딘 양보다 필요한 도움을 받아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가 책임에 더 가까운 질문입니다. 기대는 관계를 오래 지키기 위해 필요한 말 건강하게 도움받으려면 상대가 알아서 내 상태를 읽어주기를 기다리기보다 필요한 일을 구체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말벗이 필요한지, 실제 일을 나누고 싶은지, 잠시 쉴 시간이 필요한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요청이 구체적이면 상대도 가능한 범위를 판단하기 쉽습니다. 도움을 부탁했다는 이유로 원하는 모든 것을 받을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며 거절 뒤에 다른 방법을 찾을 여지도 필요합니다. 돕는 사람도 자신의 한계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고통이 크다고 상대의 사정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정서적 지지와 생활의 모든 일을 몰아두면 서로 지칠 수 있습니다. 가족과 지인, 전문가가 각각 맡을 수 있는 역할을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가 필요한 부분까지 가족의 사랑으로 대신하려 하지 않는 판단도 중요합니다. 도움의 기간과 범위를 이야기하는 일은 정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언제 다시 상의할지, 상황이 달라지면 무엇을 조정할지 정하면 서로의 추측을 줄일 수 있습니다. 지원이 계속된다는 이유로 회복을 서두르게 해서는 안 되지만, 한 번 정한 방식이 누구에게나 영원히 가능하다고 여길 수도 없습니다.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변화하는 조건을 말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아들의 존재에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아이가 있었기에 다시 일어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아이에게 아버지를 구원하라는 요구로 전해져서는 안 됩니다. 내 불안과 외로움을 아이가 해결하도록 기대하거나 내 희생에 보답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에게 느끼는 고마움과 아이를 안전하게 돌보아야 하는 어른의 책임은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로서 내가 도움을 받는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아이가 부모의 사정을 모두 떠안도록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어른도 힘들 때 적절한 사람에게 도움을 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는 있습니다. 내 회복의 세부를 감당하게 하기보다, 아이의 생활이 안정되도록 필요한 지원을 찾는 행동으로 전달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도움받는 일에 미안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마음을 없앤 뒤에야 요청할 수 있다고 기다리기보다, 고마움과 필요한 말을 함께 전하고 싶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지키면서 어려운 부분은 나누는 방식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대는 선택안에서도 나는 내 삶의 방향을 말할 수 있고, 돌보는 사람인 나 역시 돌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Fee ney(2007), The dependency paradox in close relationships. https://pubmed.ncbi.nlm.nih.gov/17279849/
Chirkov 외(2003), 자율성과 독립의 구분. https://doi.org/10.1037/0022-3514.84.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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