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순간이 많다. 특히 선임과 후임의 관계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지시를 받아도 싫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 대답은 “알겠습니다”라고 하면서도 표정과 목소리에는 불편한 감정이 남을 수 있다. 나에게도 말보다 얼굴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먼저 알아차렸던 경험이 있다. 군 복무 중 선임에게 군기를 잡으라는 부당한 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 나 역시 그 지시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거부하지 못하고 후임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후임은 겉으로는 따랐지만 마지못해 억지로 대답했다. 굳은 얼굴에서 상당히 불쾌하고 기분이 나쁘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후임이 직접 불만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도 선임에게 부당한 지시를 받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표정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지시를 받는 사람의 답답함과 억울함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후임의 표정을 모르는 척했다. 선임이 시킨 일이니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상황을 지나갔다. 마음 한편에는 미안함이 남았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뒤 후임과 당시의 일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후임은 그때 실제로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내가 표정에서 읽었던 감정이 틀리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후임은 나 역시 선임의 지시를 받은 처지였다는 점을 이해해 주었다. 서로의 상황을 말로 확인하고 나서야 당시 얼굴에 나타났던 감정과 행동의 이유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얼굴의 움직임이 대화에서 얼마나 중요한 단서가 되는지 보여 준다.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관계에서 힘의 차이가 크거나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어려울수록 감정은 목소리, 시선, 입가와 얼굴의 긴장으로 나타날 수 있다. 말의 내용과 표정이 다르게 느껴질 때 우리는 상대가 숨기고 있는 불편함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표정은 마음을 이해하는 단서이지 속마음을 그대로 보여 주는 정답지가 아니다. 미간을 찌푸렸다고 반드시 화가 난 것은 아니다. 밝은 빛 때문에 눈을 찡그렸거나 어려운 문제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입술을 다물었다고 무조건 불만을 참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말을 신중하게 고르는 중이거나 평소 습관일 가능성도 있다. 심리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과 동료들은 2019년 얼굴 움직임과 감정에 관한 연구들을 폭넓게 검토했다. 연구진은 사람들이 기쁠 때 웃고 화가 날 때 얼굴을 찌푸리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특정한 얼굴 움직임이 언제나 하나의 감정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같은 감정도 사람과 문화,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될 수 있고, 같은 표정도 서로 다른 감정이나 신체 상태에서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입술을 핥는 행동은 긴장으로 입안이 말랐을 때 나타날 수 있지만 단순한 건조함이나 습관 때문일 수도 있다. 콧방울이 커지는 모습은 흥분과 연결될 수 있지만 운동 직후 호흡이 가빠졌을 때도 생긴다. 한숨과 하품도 지루함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피로, 수면 부족, 긴장을 조절하려는 깊은 호흡 등 여러 가능성이 있다. 고개를 자주 끄덕이는 행동 역시 적극적으로 듣는 모습일 수도 있고, 예의상 반응하거나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따라서 얼굴을 읽을 때는 한 가지 동작만 보지 말아야 한다. 첫째, 그 사람의 평소 표정과 비교해야 한다. 원래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가 작은 사람인지, 평소와 달리 갑자기 얼굴이 굳었는지가 중요하다. 둘째, 표정이 나타난 상황을 함께 살펴야 한다. 재미있는 대화 중 나온 하품과 밤샘 근무 뒤 나온 하품을 똑같이 해석할 수는 없다.
셋째, 표정과 목소리, 말의 속도, 자세를 함께 보아야 한다. “괜찮습니다”라는 말과 달리 목소리가 작아지고 시선을 피하며 얼굴까지 굳는다면 불편함이 있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도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과정은 직접 묻고 확인하는 것이다. “혹시 불편한 점이 있습니까?”, “내 설명이 부족했습니까?”라고 물어야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후임의 표정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아차렸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마음을 읽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불편함을 눈치챘다면 지시를 그대로 밀어붙이기 전에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어야 했다. “나도 이 지시가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선임의 지시를 받은 상황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후임의 생각도 들었어야 했다. 물론 설명한다고 해서 부당한 군기 잡기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위에서 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이 모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당시에는 군대의 위계와 분위기 속에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지시의 문제점을 선임에게 이야기하거나 피해를 줄일 방법을 고민할 수도 있었다. 적어도 후임에게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며 미안함을 표현했다면 일방적으로 무시당했다는 느낌은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경험에서 더 마음에 남는 부분은 내가 선임에게 느꼈던 부당함을 후임에게 다시 전달했다는 사실이다. 부당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위계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후임의 굳은 표정은 그 사람의 기분만 보여 준 것이 아니라, 잘못된 지시가 아래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보여 주었다. 지시를 받은 사람이라는 이유는 당시의 행동을 설명해 줄 수 있지만 모든 책임을 없애 주지는 않는다. 표정을 보고 미안함을 느꼈다면 그 감정을 외면하지 말고 다른 선택이 가능한지 더 생각했어야 했다.
지금이라면 먼저 관찰한 사실과 내 해석을 구분해 말할 것이다. “표정이 굳어 보여서 이 지시가 불편한 것처럼 느껴진다”라고 말한 뒤, 실제 마음이 어떤지 물어볼 수 있다. 이어서 지시가 내려온 경위를 설명하고 가능한 방법을 함께 찾을 것이다. 상대가 말할 시간을 주고 내가 잘못한 부분은 변명 없이 인정해야 한다. 설명과 설득은 상대를 억지로 따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정보를 나누고 선택 가능한 범위를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때 후임은 나중에 자신의 기분이 나빴다고 말하면서도 나의 처지를 이해해 주었다. 만약 끝까지 표정만 보고 추측했다면 나는 후임이 나를 계속 미워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후임의 굳은 얼굴을 단순한 버릇으로 넘겼다면 그 사람이 받은 상처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당시의 감정과 상황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었다. 표정을 잘 읽는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고 자신하는 일이 아니다. 말로 표현되지 않은 불편함을 조금 일찍 알아차리고, 상대에게 물어볼 기회를 만드는 일이다. 표정에서 신호를 발견했다면 판단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관찰은 질문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관계에 도움이 된다. 지금 같은 상황을 다시 만난다면 모르는 척하지 않을 것이다. 지시가 내려온 배경과 내가 처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상대가 왜 불쾌한지 듣고 설득하려 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내 태도에 대해 먼저 사과할 것이다. 얼굴은 마음의 일부를 보여 주지만,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솔직한 설명과 대화다. 군대 후임의 굳은 표정은 그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참고자료
Barrett, L. F., Adolphs, R., Marsella, S., Martinez, A. M., & Pollak, S. D. (2019). Emotional Expressions Reconsidered: Challenges to Inferring Emotion From Human Facial Movements. Psychological Science in the Public Interest, 20(1), 1–68. https://doi.org/10.1177/152910061983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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