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서 품질검사를 맡았을 때 나는 규정에서 벗어난 작업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삼성중공업에서 요구하는 허용 기준이 있었고, 한 사람의 사정을 봐주기 시작하면 예외가 계속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번 기준이 무너지면 다음 작업에서도 같은 요구가 이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기준에 맞지 않게 작업한 사람들을 강하게 몰아세우곤 했다.
당시 현장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가 맞부딪치고 있었다. 작업자들은 많은 물량을 처리할수록 수입이 늘어났기 때문에 작업 속도가 곧 생계와 연결됐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물량을 끝내느냐가 중요했으니, 작업을 멈추고 다시 수정하라는 요구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반면 품질을 검사하는 나에게는 규정을 지키는 일이 가장 중요했다. 불량이 발견되면 삼성중공업으로부터 질타받았고, 내가 소속된 회사는 수정에 필요한 비용까지 부담해야 했다. 나는 불량을 통과시키는 순간 그 책임이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일하던 현장에서는 물량보다 품질을 우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했다. 나도 품질을 지키는 것이 회사와 현장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었다. 문제는 그 믿음이 점점 “품질을 지키려면 조금도 물러서서는 안 된다”, “강하게 다그쳐야만 사람들이 움직인다”라는 확신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작업자가 자신의 사정을 말해도 나는 기준을 피하려는 변명으로 받아들였다. 물량을 맞춰야 한다는 말은 품질보다 돈을 앞세우는 태도처럼 들렸고, 현장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책임을 회피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설명을 새로운 정보로 듣지 않았다. 이미 내린 결론에 맞춰 해석했다. 규정을 지키지 못한 결과는 크게 보면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와 내가 설명하고 교육할 책임은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
확증편향은 자신이 이미 믿는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단순히 고집이 세거나 일부러 사실을 외면하는 행동만을 뜻하지 않는다. 정보를 찾고 해석하며 기억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일어날 수 있다. 충분한 경험과 책임감을 가진 사람도 자신의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보에 치우치면 다른 가능성을 놓칠 수 있다.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은 1960년 참가자들에게 ‘2-4-6’을 제시하고, 이 세 수가 따르는 규칙을 찾게 했다. 참가자들은 새로운 세 수의 조합을 제시하고 그 조합이 규칙에 맞는지 확인받을 수 있었다. 많은 참가자는 자신이 추측한 규칙에 맞는 조합을 중심으로 시험했다. 예를 들어 ‘2씩 증가하는 수’라는 가설을 세웠다면 8-10-12를 제시하는 식이다. 하지만 조합이 규칙에 맞는다는 답만으로는 반드시 2씩 증가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2-4~5도 규칙에 맞는지 물어보면 그 가설의 한계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 규칙은 ‘크기가 증가하는 세 수’였다.
이 실험이 보여 주는 핵심은 내가 믿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사례만 찾으면 그 생각이 맞는지 제대로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확증편향 연구를 폭넓게 검토한 심리학자 레이먼드 네 코슨 도사 사람이 기존 신념이나 기대에 유리한 방향으로 증거를 찾고 해석하는 현상이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난다고 정리했다. 확증편향은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일부 사실에 근거한 타당한 믿음도 반대 증거와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면 편향된 확신으로 굳어질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당시의 나도 내 방식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받아들였다. 불량이 생기면 “역시 강하게 관리해야 한다”라는 증거로 여겼고, 강하게 지적한 뒤 수정이 이뤄지면 내 방식이 옳았다고 확신했다. 반면 작업자의 수입 구조와 작업량, 현장의 어려움은 품질과 별개의 문제이거나 핑계라고 생각했다. 품질을 중요하게 생각한 판단 자체는 잘못이 아니었다. 문제는 품질을 지키는 방법이 오직 질책과 압박뿐이라고 단정한 데 있었다.
결국 갈등은 크게 폭발했다. 현장 책임자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웠고, 화를 참지 못해 안전모를 바닥에 던져 깨뜨리기까지 했다. 대화로 해결해야 할 품질 문제가 감정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그러나 그 직후에도 나는 “품질을 우선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라며 나 자신을 정당화했다. 상대방이 규정을 따르지 않은 사실만 붙잡았을 뿐, 내가 대화와 설득 대신 분노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 행동을 돌아보기보다 그 행동이 필요했다는 증거만 찾았다.
회사를 그만둔 뒤에야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장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과 싸우며 갈등을 키웠는지 후회가 남았다. 작업자들에게는 물량이 곧 밥줄이었다. 기준을 양보할 수 없더라도 그들이 처한 조건은 들어야 했다. 어느 단계에서 어려움이 생기는지 함께 살피고, 그 조건 안에서 기준을 지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기준을 지키는 것과 사람을 몰아붙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다.
지금 가장 아쉬운 점은 불량이 나온 뒤 화부터 냈다는 것이다. 작업 전에 허용 기준과 자주 발생하는 오류를 알려 주고, 작업자가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교육이 필요했다. 중간 과정에서 품질을 점검했다면 완성된 뒤 전부 수정해야 하는 부담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장의 의견을 들어 작업 방식에서 불량을 유발하는 부분을 찾는 일도 품질관리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사전 품질관리와 교육은 기준을 더 안정적으로 지키려는 방법이다. 나는 당시 강하게 화를 내는 것이 책임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를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불량이 반복되지 않도록 작업 과정을 함께 살피는 데까지 내 책임이 이어져야 했다.
확증편향을 줄이려면 “내 판단이 틀렸다면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 상대의 반론을 변명으로 규정하기 전에 그 말속에 내가 살펴야 할 조건이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내 생각을 지지하는 사례뿐 아니라 반대되는 사례도 같은 기준으로 살피고, 필요하다면 다른 검사자나 제삼자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결정을 내리기 전 “어떤 증거가 나온다면 나는 생각을 바꿀 것인가?”라고 묻는 것도 도움이 된다.
나는 이제 확신이 강할수록 한 번 더 멈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칙은 필요하지만 지키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 판단을 의심하는 것은 더 나은 판단을 위해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품질을 지키면서도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고, 화를 내지 않고도 기준을 설명할 수 있었다. 그 가능성을 보지 못한 채 내 판단만 확인하려 했던 것이 내가 경험한 확증편향이었다.
## 참고 자료
1. Nicker son, P. C. (1960). On the failure to eliminate hypotheses in a conceptual task. *Quarterly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12*(3), 129–140. [논문 링크](https://doi.org/10.1080/17470216008416717)
2. Nickerson, R. S. (1998). Confirmation bias: A ubiquitous phenomenon in many guises. *Review of General Psychology, 2*(2), 175–220. [논문 링크](https://doi.org/10.1037/1089-2680.2.2.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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