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사람에게 잘 맞춰주는 편이었다. 어색한 분위기도, 누군가와 사이가 나빠지는 것도 싫었다. 의견이 달라도 내가 한발 물러서면 관계가 편안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맞춰주다 보면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상대가 불편해할까 봐 마음을 접고, 내가 조금 더 참으면 된다고 여겼다.
살다 보니 나에게도 조금은 ‘뻔뻔해지는’ 연습이 필요했다. 남의 눈치를 살피느라 내 생각과 한계를 계속 뒤로 미루지 않는 연습이었다.
심리학에서 이런 태도와 가까운 개념은 자기주장(assertiveness)이다. 상대를 존중하면서 자기 생각과 필요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의사소통 방식이다. 나에게는 그 당연해 보이는 일이 쉽지 않았다.
### “우리 정말 잘해보자”라는 마음이었다
예전에 친한 선배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선배는 사장이었고, 나는 직원이면서 현장을 총괄했다. 선배에게는 처음 시작하는 사업이었다.
나는 정말 잘해보고 싶었다. 친한 선배와 함께하는 일이었기에 마음도 더 많이 썼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할 정도로 일하면서도 내가 조금 더 힘을 내면 사업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힘든 것도 견딜 만했다. 함께 잘해보자는 마음이 있었고 내가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주변에 규모가 큰 경쟁업체가 생기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업이 점점 어려워졌고 예민해졌다.
내가 겪은 선배는 자기주장이 강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편이었다. 현장에서 직원들을 지켜보던 나는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직원들이 너무 힘들어합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선배와 부딪히는 것도, 친했던 관계가 어색해지는 것도 싫었다.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에 선후배 사이의 마음까지 겹쳐 있었다.
그때의 침묵을 단순히 소심한 성격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나는 일도 잘하고 싶었고 관계도 지키고 싶었다. 다만 그 두 가지를 위해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지는 제대로 생각하지 못했다.
### 말하지 못한 한계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직원 수를 줄였다. 내가 일해야 하는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수면시간까지 줄여가며 일했지만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줄어들었다.
어느 순간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희망이 없겠구나.’
지금 돌아보면 나는 갈등을 피하려고 말을 아꼈지만, 그동안 내 몸과 마음이 힘들다는 사실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말하지 못한 어려움은 그대로 내 몫으로 남았다.
선배의 사정은 이해하려고 했다. 사업이 잘되지 않아 얼마나 답답할지도 생각했다. 그런데 나의 피로와 직원들의 어려움에는 같은 무게를 두지 못했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끝없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사업의 어려움을 일하는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모두 해결할 수도 없었다.
내가 조금 더 일하는 것이 당장은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계속할 수 있지 않다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 명절에 처음 꺼낸 말
결정적인 순간은 명절이었다.
주변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으니 오히려 그때 장사를 하자고 했다. 예전 같았다면 또 참고 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날은 분명하게 말했다.
**“나는 못 하겠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갔다.
후련했다. 동시에 걱정도 됐다. 선배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앞으로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마음 한쪽에서는 계속 신경이 쓰였다.
거절했다고 해서 눈치를 보는 마음까지 곧바로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내 입장을 말로 꺼냈다. 내가 더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가 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그 일을 계기로 이제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후련함과 걱정이 함께 생각난다. 내게는 두 감정이 모두 진짜였다. 관계가 걱정되면서도 나의 한계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경험했다.
### 거절은 내 입장을 알리는 말이다
서호주 보건당국의 Centre for Clinical Interventions는 자기주장을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표현하면서 다른 사람도 존중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자기주장은 내 요구를 무조건 받아들이게 만드는 기술이 아니다. 상대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조율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가 그때 배우지 못했던 것은 바로 그사이의 말이었다.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더는 견디지 못해 떠나기 전에, 지금 어떤 점이 어렵고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전하는 말이다.
지금 돌아간다면 더 일찍 이렇게 말해보고 싶다.
“직원이 줄어든 뒤로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지금 방식은 계속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근무시간과 인력을 다시 이야기했으면 합니다.”
명절 근무에 대해서도 내 입장을 미리 분명하게 전하고 싶다.
“명절에는 일하기 어렵습니다. 그 기간의 운영은 미리 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 말들은 그때 실제로 했던 말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생각해 보는 표현이다. 당시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사업이나 관계가 달라졌을지는 알 수 없다. 그래도 내 어려움과 원하는 변화를 더 분명하게 전달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일하는 관계에서는 맡은 책임과 서로의 약속도 함께 살펴야 한다. 그 안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을 이야기하고 조정을 요청하는 일까지 포기할 필요는 없다.
상대를 존중하는 말투와 내 입장의 분명함은 함께 갈 수 있다.
### 그때의 나를 다그치고 싶지는 않다
다시 그 시절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싫으면 싫다고 말해도 괜찮아. 네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려줘. 네 생각도 대화 안에 있어야 해.”**
그렇다고 당시의 나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때 정말 최선을 다했다. 사업을 잘되게 만들고 싶었고 관계도 지키고 싶었다. 잠까지 줄여가며 애썼던 마음은 지금도 이해한다.
다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는 만큼 내 생각도 존중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상대가 실망할 가능성은 크게 생각하면서 내가 계속 지쳐가는 일은 뒤로 미뤘다.
결국 나는 선배와 함께 일하던 시간을 마무리한 뒤 직접 창업했다. 그 경험에서 오래 남은 것은 내 입장과 한계를 말하는 일이었다.
거절하면 상대가 서운해할 수도 있다. 내 말을 듣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내 표현을 돌아보고 필요한 설명을 할 수 있지만, 상대의 평가까지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이제는 관계가 잠시 어색해질까 봐 내 마음을 무조건 접어두고 싶지 않다. 가능한 일에는 기꺼이 힘을 보태고, 어려운 일에는 어렵다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선택한 배려도 오래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
내게 필요한 ‘뻔뻔함’은 그렇게 내 생각을 존중하는 용기였다.
**싫은 것은 싫다고,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말해도 괜찮다.**
**상대방의 생각도 존중하자. 하지만 내 생각도 그만큼 존중하자.**
### 참고 자료
1. 서호주 보건당국 CCI. [자기주장의 의미](https://www.cci.health.wa.gov.au/Resources/Looking-After-Yourself/Assertiveness).
2. CCI. [명확하고 존중하는 거절 방법](https://www.cci.health.wa.gov.au/~/media/CCI/Consumer-Modules/Assert-Yourself/Assert-Yourself---06---How-to-Say-No-Assertively.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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