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스라는 말을 들으면 흔히 사랑이나 성적인 끌림을 떠올린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이트의 후기 정신분석에서 에로스는 더 넓은 뜻을 가진다. 성적 충동과 자기보존의 충동을 포괄하며, 생명을 유지하고 결합을 이루려는 ‘삶 충동’을 가리킨다.
이는 정신분석의 이론적 개념이다. 삶의 의욕을 측정하는 의학적 수치도, 개인의 회복을 설명하는 확정된 원인도 아니다. 나는 이 개념에 비추어 내가 다시 삶과 연결되었던 시간을 돌아보려 한다.
한때 나는 살아가는 의미를 잃었다고 느꼈다. 그런 내가 다시 사람을 만나고 몸과 마음을 돌보게 되기까지는 여러 경험이 있었다. 그 안에는 아들을 향한 사랑도, 친구들이 건넨 말도, 나 자신을 조금씩 돌보기 시작한 선택도 있었다.
### 사고 이후, 내 세상이 좁아졌다
사고를 당하고 목등뼈 수술을 받은 뒤 장애를 갖게 되었다. 이전에는 당연하게 하던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면서 크게 낙담했다.
몸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고,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멀어졌다. 가족 행사에도 가지 못했다. 우울과 공황장애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받았다. 몸의 고통에 마음의 어려움까지 겹치면서 내 생활은 점점 좁아졌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다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졌다. 몸이 아프다는 사실뿐 아니라 세상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도 견디기 힘들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를 단순히 의지가 약했던 시절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갑작스러운 변화와 고통 속에서 도움이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진료받았던 일도 그 어려움을 돌보기 위한 과정의 일부였다.
### 다시 살아갈 이유를 생각하게 한 아들
다시 삶을 생각하게 해준 존재는 아들이었다.
아직 어린 아들을 보면서 계속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은 아니었다. 몸이 갑자기 좋아지거나 마음의 어려움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다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속에서 다시 살아갈 이유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만 머물러 있던 시선이 사랑하는 존재에게로 향했다. 그 관계는 내 삶에 여전히 소중한 것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나는 술과 담배를 끊기로 작정했다. 다시 내 삶을 돌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결심에서 중요했던 것은 생활 습관을 바꾸겠다는 목표만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끼던 내가 내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사고와 장해를 없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앞으로 나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었다.
### 친구들은 내가 잊고 있던 나를 기억했다
다음으로 마음먹은 것은 사람을 다시 만나보는 일이었다. 대학 시절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을 찾아 만났다. 오랫동안 관계에서 멀어져 있던 나에게는 그 만남 자체가 하나의 시작이었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혼자 견딜 때와는 다른 마음이 들었다. 특히 친구들이 해준 말이 오래 남았다.
**“너는 대학 다닐 때 다른 사람들을 잘 챙기고 잘해주었잖아. 지금 힘들지만 힘내라.”**
당시 나는 사고 이후의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픈 몸,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 사람들과 멀어진 모습이 나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친구들은 다른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람을 챙기고 함께 시간을 보내던 대학 시절에 나였다. 내가 잊고 있던 모습을 누군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돌아보니 사고 이전의 시간도 내 삶이었다. 누군가와 웃고 어울렸던 관계도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현재의 고통이 크다고 해서 내가 살아온 모든 시간이 그 고통 하나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들의 말은 내가 과거에 잘했으니 이제 위로받아도 된다는 뜻으로 남지 않았다. 지금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포함해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힘이 되었다.
관계는 그렇게 내가 혼자 내렸던 가혹한 평가를 다시 살펴보게 했다.
### 사랑과 도움을 함께 받아들이는 일
이 경험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에로스의 ‘연결하고 이어가려는 방향’을 생각한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 친구를 찾아간 행동, 나를 돌보기 시작한 선택이 내게는 다시 삶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었다.
그렇다고 이 경험을 에로스가 회복을 일으켰다는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 내 삶을 이해하기 위해 이론의 언어를 빌리는 것이다.
또한 우울과 공황장애를 사랑이나 의지만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이런 어려움에는 상태에 맞는 전문적인 평가와 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주변의 지지와 생활의 변화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치료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았다. 사람들과의 만남이 힘이 되었던 기억과 진료를 받았던 경험은 내 이야기 안에 함께 있다.
지금 돌아보면 도움받는 일 역시 내 삶을 소중하게 대하는 행동이었다.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 이제는 내 마음도 가꾸며 살아간다
지금 나는 운동하고 책을 읽고 문화예술 공연에도 참석한다. 몸을 단련하는 것과 함께 마음도 가꾸며 살아가려고 한다.
운동은 내 몸을 살피는 시간이 되고, 독서와 공연은 세상에 다시 관심을 두는 시간이 된다. 한때는 하루를 어떻게 견뎌야 할지 막막했는데, 이제는 무엇을 읽고 무엇을 경험할지 생각한다.
내게는 그 변화가 소중하다. 삶에서 다시 궁금한 것이 생겼다는 사실, 나를 위해 시간을 써보고 싶어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과거의 나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 너를 사랑해라.”**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삶을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사랑 안에 나 자신도 함께 두고 싶다. 누군가를 위해 애쓰는 나뿐 아니라 아프고 지쳐 도움이 필요한 나도 소중하게 대하고 싶다.
사고와 장애가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관계는 이어졌고, 새로운 경험은 생겼으며, 나를 돌볼 방법을 배워왔다.
나는 그 시간을 지나며 삶의 의미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람을 만나고, 몸을 움직이고, 책을 읽고, 마음에 남는 경험을 쌓는 동안 오늘을 살아갈 이유도 조금씩 생겨났다.
**다시 사람을 만나고, 다시 세상을 궁금해하고, 다시 나를 사랑해 보려는 마음.**
**나에게 에로스는 그렇게 삶과의 연결을 이어가려는 힘으로 다가온다.**
### 참고 자료
1. 미국심리학회(APA). [삶 충동의 정의](https://dictionary.apa.org/life-instinct).
2. 국제 정신 분석학회(IPA). [에로스와 결합에 관한 이론 해설](https://online.flippingbook.com/view/544664/141/).
3. 미국 국립 정신건강 연구소(NIMH). [우울증](https://www.nimh.nih.gov/health/publications/depression)·[공황장애와 치료](https://www.nimh.nih.gov/health/publications/panic-disorder-when-fear-overwhel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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