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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궁금한 심리학 이야기 18편 자기존중 —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학

by 늘파란바다 2026. 9. 19.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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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는 삼성중공업의 1차 협력업체였다. 오랫동안 현장에서 일했던 나에게 회사는 월급을 받는 곳 이상의 의미였다. 일을 한다는 사실, 가족을 책임진다는 사실, 사회에서 내 역할이 있다는 사실이 모두 그 안에 있었다.

그래서 그 협력업체가 갑자기 문을 닫았을 때 충격이 컸다.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회사였다. 믿고 있던 삶의 기반이 사라지자 다시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실직 뒤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술을 마시는 날이 이어졌다. 돈 걱정도 컸지만 나를 더 깊이 짓눌렀던 것은 무능한 사람이 되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인가.’

직장이 사라진 자리에 나 자신을 향한 의심이 들어앉았다.

### 직업을 잃었는데, 나의 가치까지 잃었다고 생각했다

심리학에서 자기 존중감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며 얼마나 가치 있게 느끼는가와 관련된다. 자신의 능력과 성취, 가치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 등이 그 평가에 영향을 준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는 ‘일을 잘하는 나’, ‘돈을 버는 나’, ‘가족을 책임지는 나’에게만 높은 점수를 주고 있었다. 그런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나라는 사람도 쓸모없어진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 아내는 심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아이도 아주 어렸다. 나라도 버텨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가장이니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다시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무기력한지, 왜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지 끊임없이 따졌다. 어려운 상황에 놓인 나를 이해하기보다 그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비난했다.

회사가 문을 닫은 것은 내가 결정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일을 내 능력에 대한 판결처럼 받아들였다. 직장을 잃었다는 사실이 어느새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다’라는 결론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은 그 두 가지를 구분하려 한다. 삶의 기반을 잃으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가진 가치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아이 분윳값이라도 벌자는 마음으로

오랜 현장 생활로 몸도 많이 아팠다. 일을 시작하기에 편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래도 어린아이를 생각하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아이 분유값이라도 벌자.’

그 생각으로 택배 일을 시작했다. 거창한 계획도, 다시 성공하겠다는 확신도 없었다. 당장 가족의 생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었다.

일하는 동안 몸은 고통스러웠다. 일을 시작했다고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거나 마음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도 아니었다. 다만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내가 뭔가 하고 있구나.’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믿었던 나에게 그 작은 느낌은 중요했다. 내게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특정한 상황에서 필요한 행동을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자기효능감이라고 한다. 자기 존중감이 자신에 대한 가치 평가와 관련된다면, 자기효능감은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에 가깝다. 실제로 해낸 경험은 그 믿음을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내게 택배 일은 그런 경험이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 전의 내가 덜 소중했던 것은 아니다. 돈을 벌어야 비로소 존중받을 자격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지금은 그때의 나에게 아파도 더 버티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얼마나 절박했는지 먼저 알아주고 싶다. 일을 할 힘이 없던 날에도 내게는 몸을 돌보고 도움을 구할 자격이 있었다.

### 남과 비교하는 기준을 내려놓으며

시간이 흐른 지금은 삶을 바라보는 기준이 많이 달라졌다. 모든 것을 움켜쥐려고 애쓸수록 마음이 더 불편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래서 욕심을 조금씩 내려놓고 남과 비교하는 일도 줄이려 한다.

누군가 나보다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내가 실패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더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내 삶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내 부족함의 증거로 삼지 않으려고 한다.

술과 담배도 끊었다. 대신 운동을 시작했다. 예전에는 밖에서 인정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지금은 내 몸을 어떻게 돌보고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에도 마음을 쓴다.

그렇다고 운동을 잘하거나 생활을 완벽하게 관리해야만 나를 인정하겠다는 뜻은 아니다. 직업과 소득에 걸어 두었던 조건을 운동과 성실함으로 바꾼다면, 또 다른 기준으로 나를 몰아붙이게 될 것이다.

잘 움직인 날도 있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있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그런 날까지 포함해서 내 삶이다.

### 믿기 어려운 칭찬보다 필요한 말

자기 존중을 위해 늘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내 마음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을 억지로 반복하면 오히려 현실과 더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2009년 연구의 한 실험에서는 자기존중감이 낮은 참가자들이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다”라는 긍정 문장을 반복했을 때, 반복하지 않은 참가자들보다 기분이 나빠지는 결과가 나타났다. 모든 긍정적인 말이 해롭다는 뜻은 아니다. 특정한 실험 조건에서 나타난 결과이므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내게도 믿기 어려운 칭찬보다 당시의 어려움을 알아주는 말이 더 와닿는다. 무조건 잘될 것이라는 약속보다 지금 얼마나 힘든지 함께 바라봐 주는 말이다.

‘지금은 많이 지쳐 있다.’

‘도움이 필요한 때일 수 있다.’

‘오늘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의 나를 인정하면서 감당할 수 있는 다음 행동을 찾는 것. 내가 배우고 있는 자기 존중은 그런 모습에 가깝다.

### 과거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지금의 내가 실직 후 술을 마시며 무너져 있던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예전처럼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지 않을 것이다. 조용히 옆에 앉아 말해 주고 싶다.

**“정말 힘들었지. 그래도 너는 너무 고생했다.”**

가족을 생각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아 괴로웠던 시간을 알아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던 날에도, 그 안에는 두려움과 막막함을 견디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너무 엄격했다. 얼마나 힘든지 묻기도 전에 더 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세상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아꼈다.

이제는 제대로 해주지 못했던 말을 건네고 싶다.

**“사랑한다. 여기까지 살아와 줘서 고맙다.”**

**“이제는 네 행복도 살피며 살자.”**

최선을 다한 날만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쳐서 아무것도 못 한 날, 실수한 날,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날의 나도 버리고 싶지 않다.

어쩌면 자기존중은 그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잘한 일만 세어 보던 시선을 거두고, 내가 지나온 시간을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는 데서 말이다.

나는 이제야 그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다.

**잘하지 못한 날에도 나는 여전히 나다. 그리고 그 나 역시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 참고 자료

1. 미국심리학회(APA). [자기 존중감의 정의](https://dictionary.apa.org/self-esteem).
2. 미국심리학회(APA). [자기효능감과 경험의 역할](https://www.apa.org/research-practice/conduct-research/self-efficacy-human-agency).
3. Wood 외(2009). [긍정적인 자기 진술의 효과](https://pubmed.ncbi.nlm.nih.gov/19493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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