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서 일하던 시절, 나에게 5mm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었다. 나는 삼성중공업 1차 협력업체에서 선박 구조물 제작 업무를 맡았다. 당시 내가 담당하던 작업에서는 5mm라는 허용오차 기준을 지키는 일이 중요했다. 거대한 구조물을 몇 밀리미터의 오차 안에서 맞추려면 경험과 집중력이 필요했다. 나는 끊임없이 확인하고 기술을 익혔다. 일을 잘하고 싶었고, 누구보다 능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문제가 생기면 원청의 질타가 내려왔다. 당시 책임자 자리까지 비어 있었기에 나는 이때가 내 능력을 보여 줄 기회라고 생각했다.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달성해야 직성이 풀렸다. 기준을 맞추지 못한 직원과 아래도급 업체 사람들에게 “무조건 해내야 한다”라고 몰아붙였고, 때로는 고성이 오갔다.
그때의 나는 그것을 책임감이라고 믿었다. 내가 강하게 다그쳐야 품질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왜 어려움을 겪는지 묻기보다 결과부터 요구했다. 사람을 이해시키는 일보다 사람을 움직여 성과를 내는 일이 더 급했다.
### 직함을 얻는 동안 잃어버린 것들
결과만 보면 나는 목표를 이뤘다. 실력을 인정받아 책임자가 되었다. 그러나 직함을 얻는 동안 직원들과의 관계는 멀어졌고, 업체 사람들과도 사이가 나빠졌다. 일을 해냈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살피지 못했다.
회사에서 받은 압박과 분노는 퇴근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스트레스를 견디려고 술을 많이 마셨고 계속 피웠다. 몸은 지쳐 갔지만 책임자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더 열심히 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자신을 몰아붙였다.
돌이켜 보면 내게 품질 기준은 작업의 기준이면서 동시에 나를 평가하는 잣대였다. 5mm를 지키지 못하는 일이 내 능력 전체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직원들은 함께 방법을 찾아야 할 동료였지만, 당시 내 눈에는 내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정당한 기준을 지키는 일과 사람을 몰아붙이는 방식은 분명 달랐다. 그러나 그때는 두 가지를 구분하지 못했다.
###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은 어떻게 하면 다를까?
심리학에서 연구하는 자기애는 일상에서 말하는 ‘나를 사랑하는 마음’과 뜻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특히 과 대적 자기애에는 자신이 남보다 특별하다는 생각, 우월함을 인정받으려는 욕구, 특별한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기대 등이 포함된다.
11개 표본, 4,711명의 자료를 분석한 연구에서는 과대적 자기애와 자기 존중감이 적극성 같은 특징을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양상을 보였다. 자기애는 특권 의식과 타인을 낮춰 보는 태도에도 연결됐다. 자신을 높게 평가하는 모습이 모두 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Hyatt 외, 2018](https://doi.org/10.1371/journal.pone.0201088)
다만 성취욕이 강하거나 업무 압박에 화를 냈다는 사실만으로 자기애적 성향을 판단할 수는 없다. 내 경험에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뿐 아니라 과도한 업무 부담과 조직의 압박도 얽혀 있었다. 내가 돌아보려는 것은 하나의 성격 이름보다, 능력을 증명하는 데 몰두하면서 나와 타인의 어려움을 놓쳤던 태도다.
자기애와 공격성의 관계를 살핀 메타분석은 437개 연구, 123,043명의 자료에서 두 특성의 관련성을 보고했다. 도발이 있을 때 관련성이 더 강했지만, 도발이 없는 상황에서도 나타났다. 이 결과가 내 행동의 원인을 확정하거나 나를 진단해 주는 것은 아니다. [KJæRik·Bushman, 2021](https://pubmed.ncbi.nlm.nih.gov/34292012/)
이 연구를 보며 나는 상부의 질타를 받았을 때 무엇을 했는지 떠올렸다. 능력을 부정당했다고 느낀 분노를 직원과 업체 사람들에게 쏟아내지는 않았는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내가 받은 압박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있지는 않았는가.
### 사고 뒤에 다시 보게 된 책임
그 시기 나는 무리하게 일하던 중 사고를 당했고, 그 사고로 장애가 남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후회가 크다. 책임자가 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너무 함부로 다뤘고, 힘들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당시에는 공석인 책임자의 부담이 내게 쏠렸다. 지금 돌아보면 내 성취욕과 책임감이 그 부담을 떠안게 하는 데 이용됐다고 느낀다. 나는 능력을 인정받고 싶었고, 더 버티면 그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선택을 돌아보는 일과 사고의 책임을 모두 내게 돌리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성격이나 성취욕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당시의 작업 조건과 안전관리, 책임이 배분된 방식도 함께 살펴야 한다.
사고 이후의 삶은 내가 살아내야 했다. 책임자라는 직함은 내 몸을 회복시켜 주지도, 달라진 일상을 대신 감당해 주지도 못했다. 그제야 나는 일에서 인정받는 것만큼 나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느꼈다.
이 경험만으로 나 자신에게 자기애성 성격장애라는 이름을 붙일 수도 없다. 성격장애는 장기간 이어지는 경직된 양상과 그로 인한 고통이나 기능 손상을 전문가가 평가해야 한다. 한 시기의 성취욕과 분노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미국정신의학회 안내](https://www.psychiatry.org/patients-families/personality-disorders/what-are-personality-disorders)
### 다시 책임자가 된다면
지금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품질 기준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고함부터 지르지 않고, 왜 그 기준이 필요한지 설명할 것이다. 기술이 부족한지, 일정이 무리한지, 인력과 장비가 충분한지부터 듣겠다.
직원들과 해결 방법을 찾고 필요한 지원을 회사에 요구하겠다. 책임을 나눈다는 말도 누군가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뜻으로 쓰지 않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결정하고 지원해야 하는지 분명히 하면서,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에는 선을 긋겠다.
기준을 지키는 책임과 사람을 지키는 책임은 함께 가야 했다. 화를 내는 힘보다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협력을 끌어내는 능력이 내게 더 필요했다.
이 경험 이후 내가 생각하게 된 자기 사랑은 부족하거나 실패한 순간에도 나를 함부로 버리지 않는 태도다. 쉬어야 할 때 쉬고, 혼자 할 수 없는 일에는 도움을 구하며, 성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끝없이 소모하지 않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에게도 그런 사정과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책임자가 되었다는 성취까지 부정하지 않는다. 목표를 향해 노력했던 힘은 내 장점이다. 다만 그 힘을 쓰는 과정에서 나와 주변 사람을 힘들게 했다는 사실도 인정한다. 후회가 앞으로 다른 선택을 하게 하는 기억이 된다면, 과거를 돌아보는 일에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고 자신을 몰아붙이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몸과 관계가 무너지고 있다면 잠시 멈춰 살펴도 된다. 높은 기준을 갖는 것과 자신에게 잔인해지는 것은 다르다. 능력은 다른 사람을 눌러야만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자기 사랑은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몸을 지키며, 함께 일하는 사람의 사정에 귀 기울이고 존엄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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