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많이 마시고 마음이 몹시 힘들었던 시절, 가족은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라고 권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술을 많이 마실 뿐 정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왜 병원에 가야 하지.’ 진료받는 순간 이상한 사람으로 판정받을 것 같았습니다. 치료해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까지 더해져, 절대 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병원을 피하는 동안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분노는 커졌습니다. 힘든 마음을 견디는 방법은 술이었습니다. 마시는 순간에는 긴장이 풀리고 잠도 쉽게 오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날 몸이 피곤하고 또 마신 자신을 자책하면서도, 저녁이면 다시 술을 찾았습니다.
심리학에서 회피는 불안이나 고통이 예상되는 상황이나 대상을 피하는 행동을 말합니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문제를 직접 다루기보다 관심을 돌리는 ‘회피적 대처’에는 술로 불편한 마음을 덮는 모습도 포함될 수 있습니다. 제게는 진료를 거부하는 일과 술을 찾는 일이 함께 있었습니다. [APA: 회피](https://dictionary.apa.org/avoidance) · [회피적 대처](https://dictionary.apa.org/avoidance-coping)
피한 뒤 찾아오는 안도감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가지 않으면 평가받을 두려움을 당장은 마주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처럼 행동의 결과로 불편한 자극이 줄거나 피해져 그 행동이 반복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을 ‘부적 강화’라고 합니다. ‘부적’은 나쁘다는 평가가 아니라 자극이 제거되거나 예방된다는 뜻입니다. [APA: 부적 강화](https://dictionary.apa.org/negative-reinforcement)
제게 술은 잠깐의 안도감을 주었지만, 불안과 생활의 어려움까지 해결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피로와 자책이 쌓여도 당장 편해지는 방법을 먼저 찾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는 괜찮아서 병원에 가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괜찮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이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술을 마신 동안의 기억이 끊기는 일시적 기억상실이 반복되었고, 아침에 출근하는 것마저 힘들어졌습니다. 미국 국립 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일시적 기억상실만으로)는 음주가 일이나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는지, 기억의 공백을 겪고도 계속 마시는지 등을 평가에서 살핍니다. 도움받아도 진단을 내릴 수는 없지만, 이런 변화는 진료를 받아볼 신호입니다. [NIAAA: 음주 문제와 치료](https://www.niaaa.nih.gov/publications/brochures-and-fact-sheets/treatment-alcohol-problems-finding-and-getting-help)
그래도 병원에 가기는 두려웠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볼지 걱정했고, 알코올 사용 장애와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참고 자료 음주 문제에 대한 낙인이 부끄러움과 부정적인 평가에 대한 걱정을 키워 도움을 구하기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NIAAA: 낙인과 도움 요청](https://www.niaaa.nih.gov/publications/brochures-and-fact-sheets/treatment-alcohol-problems-finding-and-getting-help)
마침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고, 의료진에게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았습니다. 제 경우에는 약물치료를 받은 뒤 수면과 불안 등 여러 증상이 상당히 나아졌습니다.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예상과 실제 경험은 달랐습니다. 병원에서 제 어려움을 설명하고 치료 방법을 상의하면서, 진료를 바라보는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음주와 불안·우울·수면 문제는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NIAAA는 알코올사용장애와 이런 어려움이 함께 나타날 수 있으며, 증상이 시작된 시점과 술을 마시지 않는 기간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평가에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혼자 단정하기보다 음주와 증상의 흐름을 의료진에게 알리는 편이 좋습니다. [NIAAA: 음주와 동반 정신건강 문제](https://www.niaaa.nih.gov/health-professionals-communities/core-resource-on-alcohol/mental-health-issues-alcohol-use-disorder-and-common-co-occurring-conditions)
모든 회피가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위험에서 벗어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잠시 쉬는 선택도 필요합니다. 불안장애 치료에서 회피의 역할을 검토한 논문도 그 행동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따라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제 경우에는 피하는 동안 필요한 진료가 늦어지고 일상이 더 힘들어졌다는 점을 돌아보게 됩니다. [Hofmann·Hay, 2018](https://pubmed.ncbi.nlm.nih.gov/29550689/)
진료가 두렵다면 최근의 수면 상태, 음주량, 기억이 끊긴 경험, 일상에서 어려워진 일을 적어볼 수 있습니다. 혼자 가기 어렵다면 가족에게 예약이나 동행을 부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약물치료와 심리치료 등 치료 방법은 자신의 상태와 필요에 맞춰 전문가와 상의해야 합니다. 진료가 두렵다는 마음도 의료진에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치료를 왜 권하는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물어보면서 제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듣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NIMH: 치료 선택 안내](https://www.nimh.nih.gov/health/topics/psychotherapies)
오랫동안 많은 양의 술을 마셨다면 갑자기 끊을 때 위험한 금단이 생길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의료진과 안전한 중단 방법을 상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NIAAA: 금단과 안전한 치료](https://www.niaaa.nih.gov/publications/brochures-and-fact-sheets/treatment-alcohol-problems-finding-and-getting-help)
과거에는 병원에 가지 않는 것으로 제게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활은 이미 힘들어져 있었습니다. 생각이 달라진 것은 직접 도움을 받아본 뒤였습니다. 이제는 두렵다는 마음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함께 인정할 수 있습니다. 제게 회피를 돌아보는 일은, 잠깐 편해지는 선택이 다음 날의 나에게 무엇을 남기는지 묻는 일입니다.
**참고자료**
1. APA. [Avoidance](https://dictionary.apa.org/avoidance) · [Avoidance coping](https://dictionary.apa.org/avoidance-coping).
2. APA. [Negative reinforcement](https://dictionary.apa.org/negative-reinforcement).
3. NIAAA. [Treatment for Alcohol Problems: Finding and Getting Help](https://www.niaaa.nih.gov/publications/brochures-and-fact-sheets/treatment-alcohol-problems-finding-and-getting-h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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