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부터 어울리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우리 셋은 졸업 후에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직장에 취업했고, 다른 친구 한 명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나머지 친구는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 뒤 그는 아무런 설명 없이 우리와 연락을 끊었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들까지 외면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속이 좁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업한 저와 시험에 합격한 친구를 보며 열등감이나 시기심을 느꼈으리라고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직접 들은 적은 없습니다. 제가 아는 사실은 시험에 떨어진 뒤 연락이 끊겼다는 것뿐입니다. 그때의 저는 친구가 보인 행동과 그 행동의 이유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연락이 끊긴 빈자리를 제 나름의 해석으로 채웠던 셈입니다.
그로부터 약 10년이 지나 전화가 왔습니다. 오랜만이라는 인사도,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물어본 뒤 통화를 끝냈습니다.
오랜 친구에게 연락했다면 안부 정도는 물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를 원래부터 자기 이익만 챙기는 기회주의자라고 판단했습니다. 연락처를 지우고 더는 관계를 이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에도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지만 비슷했습니다. 개인적인 용무를 묻고 통화가 끝났습니다. 친하게 지냈던 시절을 돌아보아도 특별히 도움이나 배려받았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연락을 계속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이 일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누군가에게 실망한 뒤 그 사람을 전부 나쁘게 판단하는 마음을 ‘분열’이라는 개념과 연결해 생각해 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신 역동적 관점에서 말하는 **분열(splitting)**은 자신이나 타인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받아들이기 어려워, 전적으로 좋거나 전적으로 나쁜 쪽으로 나누어 경험하는 방어기제를 가리킵니다. 한 사람에게 실망했을 때 그 사람의 다른 면을 함께 떠올리기 어려워지는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망하거나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분열이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APA 심리학 사전: Splitting](https://dictionary.apa.org/splitting)
일상에서 말하는 흑백 사고와 겹쳐 보이는 부분은 있지만, 두 개념을 완전히 같은 뜻으로 쓰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흑백 사고는 중간의 가능성을 놓치고 일을 성공과 실패, 옳음과 그름 같은 양극단으로 판단하는 사고방식을 말합니다. 분열은 자신과 타인에 대한 상반된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개념입니다.
관련 연구에서도 두 개념을 구분해 살폈습니다. 2012년 연구에서는 경계성 성격장애 참가자들에게서 비교 집단보다 흑백 사고가 더 나타났지만, 분열이 두드러진다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의 다른 연구에서는 두 특징 모두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두 연구 모두 특정한 과제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을 살핀 소규모 연구입니다. 그 결과를 일상의 친구 관계에 그대로 적용해 누군가를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물었다”라는·ten Haaf의 연구, 2012](https://pubmed.ncbi.nlm.nih.gov/22982582/) · [사람이었다”라는 외의 연구, 2013](https://pubmed.ncbi.nlm.nih.gov/23342956/)
그렇다면 제가 친구와 관계를 정리한 것도 분열이었을까요. 연락을 끊었다는 행동만으로 답을 내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관계를 계속할 것인지와 상대를 어떤 사람으로 판단할 것인지는 따로 살펴볼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돌아보고 싶은 부분은 ‘기회주의자’라는 말입니다.
“두 차례 통화에서 안부 없이 자기 용무만 흑백 사고를 문장은 제가 겪은 일을 설명합니다. 반면 “그는 원래부터 자기 이익만 챙기는 UK 문장은 그 사람의 지난 삶과 성격까지 넓게 규정합니다. 통화에서 느낀 불쾌함은 분명했지만, 제가 그 친구의 모든 모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전에 배려받았던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제게 그런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는 사실과, 그가 누구에게도 배려한 적 없는 사람이라는 주장은 다릅니다. 제 경험을 말하는 데서 멈출 수도 있었는데, 당시에는 사람 전체에 대한 결론까지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관계를 다시 이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오랜만에 연락하더라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관심을 나누는 관계를 원했습니다. 두 차례의 통화에서는 그런 모습을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원하는 관계와 거리가 있다는 판단은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렇게 정리하고 싶습니다.
**“그 친구가 연락을 끊었던 이유는 지금도 모릅니다. 다만 제가 겪은 방식의 연락을 계속 이어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모르는 부분은 모르는 채로 남겨두면서도 제 선택은 할 수 있습니다. 상대에게 다른 사정이 있었을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해서 제가 원하지 않는 관계까지 유지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판단이 극단으로 흐른다고 느낄 때는 잠시 문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항상’, ‘절대로’, ‘원래부터’라는 말이 떠오르면 다음과 같이 물어보는 것입니다.
- 내가 직접 보고 들은 행동은 무엇인가?
- 그 행동에 내가 덧붙인 해석은 무엇인가?
- 아직 알 수 없는 부분을 사실처럼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도 참고 자료 포함한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알아차리고, 근거와 다른 가능한 설명을 검토하도록 안내합니다. 이 질문들은 상대를 좋게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하는지 확인하는 데 참고할 수 있습니다. [NHS: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을 다시 살펴보는 방법](https://www.nhs.A. & ten/every-mind-matters/mental-wellbeing-tips/self-help-cbt-techniques/reframing-unhelpful-thoughts/)
저는 원래 사람 사이에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 친구의 연락 때문에 특별히 깊은 상처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더는 관계를 이어가지 않아도 되겠다고 판단했고, 제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지금도 그 선택을 바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친구를 ‘원래부터 그런 사람’이라고 단정했던 말은 돌아보게 됩니다. 제가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것은 저와의 관계에서 그가 보인 행동이었습니다. 앞으로 관계의 거리를 정할 때도 제가 겪은 일을 근거로 삼고 싶습니다. 상대의 모든 면을 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제게 필요한 선택은 할 수 있으니까요.
※ 이 글의 ‘분열’은 방어기제를 가리키는 용어로, 조현병을 뜻하지 않습니다. 조현병을 인격이 둘로 나뉘는 병으로 설명하는 것도 잘못된 이해입니다. [NHS 의료기관의 조현병 안내](https://slam.nhs.uk/schizophrenia)
**BEHAVIOUR**
-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Splitting*. [APA Dictionary of Psychology](https://dictionary.apa.org/splitting)
- Arntz, NIA Haaf, J. (2012). *Social cognition in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Evidence for dichotomous thinking but no evidence for less complex attributions*. **Behaviour Research and Therapy, 50**(11), 707–718. [논문 정보 및 초록](https://pubmed.ncbi.nlm.nih.gov/22982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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