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 나는 인생의 첫 번째 큰 갈림길에 서 있었다.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에 갈 것인지,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우리 집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에서 기술을 익힌 뒤 빨리 사회생활을 시작해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 드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고치는 일을 좋아했고, 손재주도 상당히 좋다고 생각했다. 기술을 배우는 길이 내 적성에도 맞고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생각은 달랐다. 당시 우리 주변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면 포항고에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포항고는 경북에서 가장 좋은 학교로 평가받았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주로 진학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은 내가 반드시 포항고에 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좋은 일반고에 진학해 공부하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기고 미래도 안정될 것이라고 믿으셨을 것이다. 나는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뜻을 밝혔지만 컸다. 결국 내 생각을 접고 가족이 권한 길을 따랐다. 포항고에 입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후회가 시작됐다. 중학교에서는 공부를 제법 잘했지만 모인 학생들은 대부분 성적이 우수했다. 전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업과 성적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동안에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노력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2학년과 3학년이 되면서 성적은 오히려 떨어졌다. 내가 원해서 선택한 학교가 아니었다는 생각과 노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다는 좌절이 겹쳤다. 갈등하고 방황했던 고등학교 시절은 지금도 내 인생의 암흑기로 남아 있다. 후회한다고 해서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학교를 다시 선택하기도 어려웠고,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 나는 최상위권에 들어야 한다는 목표 대신 중간 정도의 성적이라도 유지하자는 생각으로 버텼다. 당시에는 그것이 적극적인 선택이라기보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선택에 가까웠다. 원하는 길로 가지 못한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부모님께 더 큰 걱정을 드리지 않겠다는 마음이 나를 학교에 붙잡아 두었다. 심리학에서 욕구 불만은 원하는 상태와 현재 상태 사이에 차이가 생기고, 그 차이를 쉽게 줄일 수 없을 때 느끼는 긴장과 좌절을 뜻한다. 단순히 불평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고, 피곤하면 잠을 자고 싶어지는 것처럼 사람은 부족한 것을 채워 균형을 되찾으려 한다. 그러나 진로와 인정처럼 복잡한 욕구는 배고픔처럼 곧바로 해결되지 않는다. 외부의 기대와 현실적인 조건이 자신의 바람을 막으면 답답함, 분노, 무기력, 후회가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친화 욕구, 자존 욕구, 자기실현 욕구로 설명했다. 생리적 욕구는 음식과 수면처럼 생존에 필요한 것이고, 안전 욕구는 경제적·신체적으로 안정되고 싶은 마음이다. 친화 욕구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사랑받고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며, 자존 욕구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가치 있는 존재로 느끼고 싶은 마음이다. 자기실현 욕구는 자신이 가진 가능성과 적성을 펼치려는 욕구다. 돌이켜 보면 중학교 3학년의 선택에는 여러 욕구가 한꺼번에 얽혀 있었다.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던 나는 기술을 익혀 빨리 일하고 싶었다. 여기에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부모님의 부담을 덜고 싶은 안전 욕구가 있었다. 동시에 손재주라는 강점을 살려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살아가고 싶은 자기실현 욕구도 있었다. 부모님과 선생님 역시 나를 힘들게 하려고 일반고를 권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좋은 학교에 진학하면 안정된 직업과 사회적 인정을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같은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서로 중요하게 여긴 욕구와 방법이 달랐던 셈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자존 욕구까지 흔들렸다. 우수한 학생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예전에 가졌던 자신감은 약해졌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성적이 내려가자 능력 자체가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다. 기술을 배웠다면 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수록 현재의 학교생활은 더 답답하게 다가왔다. 욕구 불만이 사람을 무조건 성장시키는 것은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도전은 행동의 힘이 되지만,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 좌절이 오래 지속되면 의욕과 자신감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내 고등학교 생활은 욕구 불만의 두 얼굴 가운데 어두운 면에 더 가까웠다. 졸업 후 나는 금융권에서 2년 동안 근무했다. 좋은 직장으로 보일 수 있었지만 내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결국 금융권을 떠나 요리와 조선소 같은 기술직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돌고 돌아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원했던 방향으로 살아온 것이다. 기술직이라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 기술이 최고 수준에 이르면 주변에서는 실력을 인정해 주었다. 말보다 내가 만든 결과와 축적한 기술로 능력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손재주와 현장 감각이 단순한 어린 시절의 생각이 아니라 실제 강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매슬로의 단계는 아래 욕구가 완벽하게 충족돼야만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절대적인 계단은 아니다. 현실의 사람은 경제적으로 불안할 때도 사랑을 나누고,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꿈을 향해 움직인다. 나 역시 가족에 대한 마음, 안정되고 싶은 욕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적성을 펼치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안고 살았다. 이 이론은 사람을 다섯 칸에 가두기보다 지금 나를 움직이는 부족함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틀로 활용할 때 의미가 있다. 이 경험 이후 나는 진로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라졌다. 성적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같은 학교와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상에서 배우는 데 강한 사람이 있고, 만지고 반복하며 기술을 익힐 때 능력이 살아나는 사람도 있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어른이 대신 정한 정답보다 여러 길의 장단점을 알고 자기 적성을 시험해 볼 기회다. 가족의 조언은 필요하지만, 선택의 주인이 누구인지까지 빼앗아서는 안 된다. 선택권은 자유가 아니라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결정하는 힘을 키우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 기술계 고등학교를 선택했다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생각한다. 더 일찍 적성을 살려 기술을 익혔을 수도 있고, 그 길에서도 다른 어려움과 후회를 만났을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의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느 선택이 완벽하게 옳았는지가 아니다.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을 내가 내렸는가가 더 중요하다. 다시 중학교 3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가족과 선생님의 의견을 충분히 듣되 마지막 결정은 직접 내리고 행동하고 싶다. 결과가 기대와 달라 후회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그 후회를 받아들이고 다음 방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결정한 길에서 생긴 후회는 오랫동안 원망과 미련으로 남기 쉽지만, 내가 내린 선택의 결과는 책임지는 과정에서도 배울 수 있다. 욕구 불만은 무조건 없애야 할 감정도, 저절로 사람을 성장시키는 힘도 아니다. 그것은 지금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을 진정으로 원하는지 알려 주는 신호다. 그 신호를 억누르기만 하면 방황이 길어질 수 있지만, 정확히 들여다보면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는 단서가 된다. 내 고등학교 시절의 좌절은 오랫동안 암흑기로 남았지만, 결국 나는 기술을 통해 나의 강점을 확인하고 인정받는 길을 찾았다. 이제는 남들이 좋다고 정해 준 길보다 내 적성과 마음을 살피고, 선택의 결과까지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정한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참고 자료: Maslow, A. H. (1943). A Theory of Human Motivation. Psychological Review, 50(4), 370–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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