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실하게 일하고 생활비를 마련하면 좋은 남편의 몫을 다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내가 힘들어할 때는 어떻게든 보호하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함께 산다는 일은 책임을 수행하는 것만으로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나도 지쳤다고 말하고 싶었고, 아내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이혼 뒤 그 시간을 돌아보며, 사랑 안에는 해주는 일뿐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묻고 듣는 일도 필요했음을 배웠습니다.
조용한 첫인상 너머에 있던 서로의 사정
경제적인 사정으로 결혼을 포기하고 지내던 때, 부모님의 권유와 중학교 친구의 소개로 아내를 만났습니다. 말수가 적고 나의 이야기에 호응해 주는 모습이 착하게 느껴졌습니다. 울릉도에서 다섯 남매를 키우며 강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와 다른 조용한 성향에도 끌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상대를 알아가는 마음에 내가 바라던 가정의 모습도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결혼 전 아내가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닌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함께 들어가 보지는 않았습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야 조현병이라는 병명과 환청, 자살 시도를 마주했습니다. 처음의 조용한 모습이 모두 병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것과 상대의 어려움을 이해하며 생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었습니다. 신혼 때 운영하던 음식점에서 아내가 갑자기 사라져 문을 닫고 친정으로 찾아간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아내는 불안해져 친정으로 갔다고 했지만, 당시 나는 그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습니다. 당장의 장사와 생활을 수습하는 마음이 앞섰고,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지 답답했습니다. 아내의 경험을 충분히 알지 못한 채 내 상식만으로 해결하려 했던 한계가 있었습니다.
가게를 정리한 뒤에는 경남 고성의 조선소에 취업했습니다. 경제적인 형편은 나아졌지만, 일하는 중에도 힘들다는 전화가 이어지자 여유는 점점 줄었습니다. 서로 기대는 부부를 원했는데 어느새 혼자 보호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부담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버지 같은 역할을 떠맡았다고 느꼈던 것은 당시 나의 소진을 설명하는 말입니다. 아내를 미성숙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헌신과 친밀감을 따로 바라보게 한 이론 로버트 스턴버그는 사랑을 친밀감, 열정, 결정과 헌신이라는 세 측면으로 설명했습니다. 친밀감은 서로 가깝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는 마음이고, 열정은 끌림과 욕구, 헌신은 관계를 선택하고 유지하려는 뜻을 가리킵니다. 이 이론은 사람의 사랑을 점수로 판정하는 공식보다, 관계에서 어떤 경험이 충분했고 부족했는지 돌아보는 틀로 읽을 때 도움이 됩니다. 나는 헌신을 위해 애썼지만 노력이 친밀감으로 저절로 이어진다고 여겼습니다. 돈을 벌고 문제를 해결해 주면 내 마음을 알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내는 내 한계를 알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반대로 아내의 불안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매달릴수록 그 마음을 듣기보다 행동부터 바꾸려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대화만 잘했으면 모든 어려움을 해결했을 것이라는 결론도 경계합니다. 질환과 생계, 돌봄이 겹친 관계에는 가족의 의지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 있습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함께 치료에 관한 정확한 정보, 돌보는 사람의 휴식, 외부의 지원이 필요했습니다. 당시의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더 오래 참는 능력만이 아니었습니다. 관계를 바꾸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생기면 아내의 어려움도 줄고 내 책임감도 커질 것이라 기대한 적이 있습니다. 아들이 태어난 뒤 아내의 자살 시도가 사라졌고 나는 큰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을 출산이 질환을 치료한다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조현병에 약물치료와 심리·사회적 개입, 가족 지원을 포함한 돌봄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아이에게 부부의 회복을 맡길 수는 없습니다.
이혼을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하지 않기
우리에게는 양육의 부담에 더해 나의 알코올 의존, 추락사고 뒤의 대수술과 경제적 고립이 겹쳤습니다. 결국 결혼은 끝났습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하나의 사건만을 원인으로 지목하면 그 시간을 설명하기는 쉬워집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고통도, 아내가 견뎌야 했던 어려움도 그보다 복잡했습니다. 이혼 뒤 아들을 키우며 정신분석을 통해 지난 시간을 돌아본 것은 그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습니다. 내가 화를 냈던 일과 술에 의존했던 행동은 내 책임입니다. 아내의 질병이나 생활고를 이유로 그 책임을 지울 수 없습니다. 동시에 관계의 모든 결과를 나 혼자 막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책도 사실을 너머에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행동을 반성하는 일과 한 사람으로서의 나 전체를 실패로 판정하는 일은 달랐습니다. 그 차이를 인정한 뒤에야 후회를 앞으로의 태도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나를 이해한다고 아내가 받은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의 사정을 이해한다고 내가 힘들었던 경험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고통을 견주어 누가 더 억울한지 가리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면서, 아내도 그 상황에서 자기 나름대로 살아내려 애썼다는 사실이 보였습니다. 그 이해는 당시의 모든 선택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용서와 함께 남겨두어야 할 경계
내가 말하는 용서는 상처를 잊거나 다시 함께 살겠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나와 전처를 오직 미움의 대상으로만 남겨두지 않으려는 선택에 가깝습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용서의 속도를 요구할 수 없고, 관계를 회복할 의무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관계에서든 안전과 생활의 경계는 별도로 살펴야 합니다. 마음이 누그러졌다는 이유로 감당할 수 없는 역할까지 다시 떠맡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 내가 얼마나 해주었는지만 세지 않으려 합니다. 내가 원하는 도움을 구체적으로 말했는지, 상대의 말에 내 결론부터 덧붙이지 않았는지 살피고 싶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일과 문제를 대신 해결하는 일도 구분하려 합니다. 한계를 먼저 알리는 말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고백이 아니라, 가능한 관계를 함께 찾기 위한 정보가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힘들다고 말할 때 그 말의 뜻을 짐작만으로 정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위로가 필요한지, 실제 도움이 필요한지, 지금은 혼자 쉴 시간이 필요한지 서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충분히 하지 못했던 과거가 아쉽지만, 그 아쉬움이 당시의 나와 아내를 비난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가 몰랐던 것을 인정하는 일은 늦게라도 배울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모르는 마음을 함부로 채우지 않으려 합니다. 지난 결혼을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나를 벌주기 위해 기억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때의 소진을 인정하고 내 행동의 책임을 지면서, 지금 아들과 살아가는 일상을 더 세심하게 돌보고 싶습니다. 나에게 용서는 끝난 관계를 아름답게 꾸미는 말보다, 지나온 고통을 안고도 오늘의 사람을 정직하게 대할 수 있게 하는 여유입니다.
참고 자료
Sternberg(1986), A triangular theory of love. https://doi.org/10.1037/0033-295X. 93.2.119
세계보건기구, Schizophrenia. https://www.who.int/news-room/fact-sheets/detail/schizophrenia
| 불안해서 피했던 사람들 환경을 바꾼 뒤에도 마음을 살펴야 했습니다 (0) | 2026.10.20 |
|---|---|
| 실직 뒤 나를 탓하던 시간적인 역할에서 다시 시작한 하루 (0) | 2026.10.20 |
| 아이에게 사과한 뒤 분노가 머물던 자리에 대화를 쌓았습니다 (0) | 2026.10.20 |
| 선택을 후회하기 전 그때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을 돌아봅니다 (0) | 2026.10.20 |
| 내 마음을 다 알지 못해도 반복되는 반응은 돌아볼 수 있습니다 (0) | 2026.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