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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후회하기 전 그때 내가 지키려 했던 것을 돌아봅니다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학

by 늘파란바다 2026. 10. 2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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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고를 때와 대학 학과를 정할 때, 사법고시 공부를 멈출 때의 나는 서로 다른 기준 앞에 서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과 장래성, 부모님의 기대와 집안 형편이 늘 같은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았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다른 길이 궁금한 순간도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보지 않은 삶을 정답으로 삼아 지나온 선택을 채점할 수는 없습니다. 후회를 줄이는 데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상상보다, 그때 중요했던 조건을 정직하게 다시 보는 일입니다.
손재주를 살리고 싶었던 마음과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금호공업고등학교에 가고 싶었습니다. 손재주가 있었고, 당시 성적이면 장학생으로 입학해 부모님의 부담도 덜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과 부모님의 권유를 받아 포항고등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처음 원했던 길은 아니었어도, 명문고로 불리던 학교에 합격했을 때 솔직히 뿌듯했습니다. 적성을 살리고 싶었던 마음과 좋은 학교에 갔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마음이 나의 안에 함께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권유를 따랐다는 사실만으로 내 의사가 전혀 없었던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합격이 기뻤다는 이유로 처음의 바람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없습니다. 과거의 나는 여러 욕구 사이에서 하나의 길을 골랐습니다. 서로 다른 마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 결정을 억지로 성공이나 실패 중 하나에 넣지 않아도 됩니다. 대학 진학 때는 부산대 사회복지학과와 동아대 법학과 사이에서 고민했습니다. 내가 택한 곳은 당시 취업과 장래성에 유리해 보였던 법학과였습니다. 선택지가 두 개뿐이어도 고민은 깊었습니다. 학교와 학과의 이름을 비교하는 문제에 앞으로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지, 준비에 얼마나 시간을 쓸 수 있을지 같은 질문들이 함께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멈춘 선택을 패배로만 남겨두지 않기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한 뒤에는 예상보다 방대한 공부량과 높은 합격의 벽을 체감했습니다. 조금 더 도전하고 싶은 미련이 있어 부모님께 말씀드렸지만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취업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당시의 아쉬움과 별개로, 지금 돌아보아도 취업을 택한 일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내 실력과 준비 여건을 고려하면 이어갈 수 있는 현실적인 길이었습니다. 이 결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개념이 허버트 사이먼의 제한된 합리성입니다. 사람은 미래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없고 모든 대안을 끝까지 비교할 시간과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조건 안에서 받아들일 만한 기준을 충족하는 대안을 찾습니다. 이것을 만족 화라고 부릅니다. 아무렇게나 타협한다는 뜻보다, 실제 사람이 어떻게 복잡한 결정을 내리는지 설명하는 관점에 가깝습니다. 그때의 내가 취업한 뒤의 삶까지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시험을 계속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릅니다. 결과를 모른다는 이유로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 공부할 수 있는 자원과 감당해야 할 생활이 분명히 있었고, 나는 그 조건 안에서 판단했습니다. 지금 가진 정보로 과거의 나를 꾸짖기 전에 당시 알 수 있었던 것과 없었던 것을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우자를 선택할 때는 결혼 적령기를 넘겼다는 조급함과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조용하고 착해 보이는 사람이니 함께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지금 다시 묻는다면 좋은 성품에 더해 서로 생각을 나누고 다른 의견을 편안히 말할 수 있는 관계인지 살피고 싶습니다. 이는 상대를 평가하는 조건을 하나 더 늘리는 일보다, 함께 살아갈 방식을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일입니다.
선택지가 많으면 언제나 결정이 어려워질까
아이엔 가와 래퍼의 잼 실험은 많은 선택지가 관심을 끌더라도 구매로 이어지는 비율은 낮아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잼을 고르는 장면을 진학이나 결혼의 원리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습니다. 사람의 선호가 얼마나 분명한지, 비교가 얼마나 어려운지, 결정에 어떤 책임이 따르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집니다.
2010년 수줍은 베게 너와 동료들의 메타분석에서도 선택 과부하의 평균 효과는 거의 없었고 연구 사이의 차이가 컸습니다. 선택지를 줄이면 누구나 행복해진다는 결론을 뒷받침한 결과는 아닙니다. 나의 대학 선택이 어려웠던 이유도 후보의 수보다는 비교 기준이 충돌했기 때문입니다. 연구는 내 결정을 대신해 주는 정답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어려운지 더 정확히 묻게 하는 자료입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지칠 때는 후보를 줄이는 일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필요한 정보를 보기도 전에 무조건 세 개만 남기는 규칙을 적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을 원하는지 몰라서 막막한지, 원하지만 부담되는지, 주변의 기대와 내 바람이 다른지 먼저 구분해야 합니다. 어려움의 이유에 따라 해야 할 일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선택에 남겨두고 싶은 기준
나는 결정 앞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조건과 있으면 좋은 조건을 나누어 적고 싶습니다. 물건을 살 때는 예산과 필요한 기능을, 진로를 생각할 때는 일의 내용과 준비 시간, 생활비를 먼저 살피는 방식입니다. 모든 조건에 점수를 매겨 계산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중요하지 않은 장점 하나에 마음이 쏠려 필수 조건을 잊는 일은 줄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들을 때는 그 말이 왜 나를 움직이는지도 생각합니다. 내 적성과 맞아서인지, 현실적인 도움이 되어서인지, 인정받거나 미안함을 덜고 싶어서인지 묻습니다. 인정욕구가 섞였다는 이유로 그 선택이 곧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 동기를 알면 어느 조건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는지 더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결정의 무게에 따라 들일 시간도 달라야 합니다. 다시 바꾸기 쉬운 작은 선택이라면 탐색을 끝낼 시점을 정해도 됩니다. 진로나 관계처럼 영향이 오래가는 일에는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고 직접 대화할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돌이킬 수 있는 부분과 돌이키기 어려운 부분을 따로 살피면, 모든 것을 한 번에 완벽히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도 조금 덜 수 있습니다.
결정한 뒤에는 결과만이 아니라 판단 과정을 돌아보고 싶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을 확인했는지, 내 한계를 숨기지 않았는지, 두려움 때문에 중요한 질문을 피하지 않았는지 살핍니다. 결과가 좋았어도 우연이 도왔을 수 있고, 결과가 아쉬워도 당시의 판단은 충분히 성실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돌아보아야 후회가 자책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결정에 쓸 수 있는 배움이 됩니다. 공고에 가고 싶었던 어린 나를 떠올리면 손재주를 살리고 싶었던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다른 학교를 갔다고 그 관심까지 틀렸던 것은 아닙니다. 선택하지 않은 길에서 중요했던 것을 지금의 생활에 담을 여지도 있습니다. 과거를 전부 되돌려야만 내 바람을 존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앞으로도 충분한 확신 없이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다만 그때마다 남의 기준을 빌려 나를 재촉하기보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완벽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 삶을 실패로 남겨두지 않으면서, 오늘은 내 기준을 조금 더 분명하게 말하는 쪽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참고 자료
Simon(1955), A behavioral model of rational choice. https://doi.org/10.2307/1884852
ScheibehenneGreifenederTodd2010. pdf 외(2010), 선택 과부하 메타분석. https://scheibehenne.de/ScheibehenneGreifenederTodd2010.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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