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거울 속 얼굴이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은 마지막으로 크게 화를 낸 때가 선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들과 곤충과 거미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날들이 익숙해졌습니다. 이 변화가 어느 한순간의 깨달음에서 시작되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친 몸을 돌보고 지난 관계를 돌아보며, 아이에게 했던 사과를 생활 속에서 이어온 시간이 있었습니다.
화가 났다는 사실과 어떻게 행동했는지는 다릅니다
분노는 억울함이나 위협을 느꼈을 때 생길 수 있는 감정입니다. 공격성은 다른 사람에게 해를 주려는 행동과 관련됩니다. 둘을 구분해야 화가 난 마음을 알아차리면서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에는 분명한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감정을 없애야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화가 났다는 이유가 위협이나 폭력을 허용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조선소에서 일하던 시절,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오는 생활은 몹시 고됐습니다. 나도 힘들다는 것을 배우자가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정작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설명하는 데 서툴렀습니다. 나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말하지 않은 채 상대가 먼저 이해해 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그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는 고단함을 설명하는 대신 화를 내곤 했습니다.
이혼 전후 아이의 돌봄을 둘러싼 일은 특히 큰 분노로 남았습니다. 당시 아내가 키우겠다며 데려간 아이가 한 달도 되지 않아 내 부모님 댁에 맡겨졌습니다. 아이가 겪었을 혼란을 생각하면 마음이 격해졌습니다. 이혼 뒤 내가 양육하면서 전처가 찾아올 때는 폭력으로라도 방문을 막고 싶다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그때의 마음을 정직하게 돌아보지 않고서는 지금의 평온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나는 그 생각을 마음이라는 말로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아이의 안정을 걱정하는 일과 상대를 위협하려는 충동은 구분해야 합니다. 내 사정이 힘들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상대의 안전과 아이가 지켜보는 관계를 함께 생각했어야 합니다. 분노의 이유를 이해하는 목적은 행동을 허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위험에 다시 가까워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잠과 피로를 살피는 것은 책임을 피하는 일이 아닙니다
크리 잔과 휘슬러의 수면 제한 실험에서는 수면시간을 줄인 사람들이 불쾌한 소음에 노출되었을 때 더 큰 분노를 보고했습니다. 이 결과는 감정의 문제를 볼 때 몸의 상태도 살펴야 한다는 근거가 됩니다. 다만 실험에서 나타난 집단의 경향만으로 내 과거 행동의 원인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수면이 부족했다고 모든 사람이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잘 자면 화를 내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보다, 지친 상태에서 관계의 어려움까지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지 않는 판단입니다. 피로가 쌓였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차리면 말을 멈추거나 쉬어갈 여지가 생깁니다. 수면을 살피는 일과 이미 상처 준 말에 책임지는 일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몸을 돌보는 행동이 사과를 대신할 수는 없지만 다음 행동을 바꾸는 바탕은 됩니다. 헬스를 4년째 이어오고 약 1년 전부터 하루 한 시간가량 달리는 습관도 내 생활에 활력을 주었습니다. 금주와 금연을 유지하고 체중을 관리하며 하루의 리듬을 찾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평소 운동에서 얻은 도움을 화가 치솟는 순간 더 격하게 움직이면 해결된다는 뜻으로 넓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2024년 셰르 비 크기와 부시먼이 154개 연구를 종합한 메타분석에서는 호흡과 명상처럼 각성을 낮추는 활동이 평균적으로 분노와 공격성을 줄였습니다. 흥분을 높이는 활동은 전체적으로 같은 효과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구마다 활동과 참여자가 달랐다는 한계는 있지만, 분노를 세게 쏟아내면 풀린다는 통념을 그대로 따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충분합니다. 일상의 운동과 당장의 진정에는 서로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눈물의 사과 이후에 중요해진 평범한 시간
시간이 흐르면서 전처와의 관계도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서로 용서하고 화해했으며 전처가 집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영화와 연극, 공연을 보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을 취득한 뒤 봉사활동에 참여한 경험도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 하나가 분노를 없앴다고 하기보다 생활의 여러 변화가 오랜 성찰과 함께 작용했다고 느낍니다. 그 가운데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아이에게 사과했던 순간입니다. 화가 많았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 눈물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내가 많이 울었다는 사실이 아이의 마음까지 회복되었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사과받은 아이가 곧바로 괜찮아져야 할 의무도 없습니다. 내 감정이 얼마나 절실했는지보다 그 뒤 아이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요즘 아들은 곤충과 거미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는 매일 그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서 거미도 함께 키우며 키즈카페에도 자주 갑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앞세우던 자리에서 이제는 아이가 아는 세계를 듣습니다. 그 대화가 지난 일을 지우지는 못합니다. 다만 아버지와 함께 있는 시간이 편안할 수 있도록 하루하루 다른 경험을 쌓을 기회가 됩니다.
아이의 설명이 길어져도 기다리고, 내 예상과 다른 이야기를 해도 바로 결론을 내리지 않는 일은 작아 보입니다. 하지만 관계에서의 변화는 이런 행동을 통해 전달됩니다. 오늘 대화가 잘되었다고 내일도 저절로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과의 진심을 증명하려고 아이의 반응을 확인하기보다, 내가 지켜야 할 태도를 꾸준히 이어가고 싶습니다.
다시 화가 날 때를 위한 여유 남기기
평온한 날이 이어져도 앞으로 화가 전혀 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이 격해지면 우선 말을 늦추고 호흡을 가다듬으려 합니다. 자리를 잠시 벗어날 때는 대화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뒤 돌아오려는 뜻을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를 혼내기 위한 침묵과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한 쉼은 다르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내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말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이제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전에 피로와 필요한 도움부터 먼저 알리는 연습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다시 이야기할 때는 실제 있었던 일과 내가 느낀 감정, 필요한 도움을 나누어 말하려 합니다. 상대의 성격 전체를 비난하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사라지고 방어만 남기 쉽습니다. 무엇을 바라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되 그 요구가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화는 내 감정을 전달하는 시간인 동시에 상대의 사정을 듣는 시간입니다.
이런 노력에도 위협하거나 다치게 할 것 같은 충동이 커지면 대화의 해결보다 안전을 먼저 확보해야 합니다. 반복되는 분노로 관계가 흔들릴 때는 혼자 버티는 대신 전문가와 구체적인 상황을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내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 도움받는 선택은 가족에게 책임을 지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거울 속 얼굴이 달라졌다는 사실보다 내가 더 소중히 여기는 것은 아들이 말을 이어갈 수 있는 시간입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작은 생물을 함께 바라보며 듣는 아버지로 살고 싶습니다. 그날의 사과를 과거의 감동으로 남겨두지 않고, 오늘의 말투와 기다림으로 계속 옮겨가려 합니다.
참고 자료
His ler·KJ(2019), Sleepy anger. https://pubmed.ncbi.nlm.nih.gov/30359072/
RikæCPR. 2024·Bushman(2024), 분노 조절 활동 메타분석. https://doi.org/10.1016/j.cpr.2024.10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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