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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짐과 다시 일어섬. 21화 | 부모님께 받은 돌봄을 아들에게 이어주는 것이 나의 효도였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9. 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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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짐과 다시 일어섬. 21화 | 부모님께 받은 돌봄을 아들에게 이어주는 것이 나의 효도였다 부모님께 받은 돌봄을 똑같이 갚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 그 사랑을 아들의 안전한 하루로 이어 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효도였습니다. 오늘 꺼내는 이유 나는 오랫동안 효도란 부모님께 받은 것을 부모님께 그대로 돌려드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 편안하게 해 드리고, 아프실 때 곁을 지키며, 더는 걱정하지 않게 사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고로 몸을 다치고 결혼 생활이 끝난 뒤 내 형편은 그런 생각과 멀어졌다. 부모님께 무언가를 충분히 드리기는커녕 다시 도움받아야 했다. 내가 아이를 직접 키우기 어려웠던 시기에는 부모님이 손자의 생활을 지켜 주셨고, 다시 양육을 시작한 뒤에도 생계와 치료가 겹칠 때 곁을 내주셨다. 고맙다는 말보다 미안하다는 말이 먼저 나왔다. 나이가 든 부모님께 계속 받기만 하는 자식 같았다. 아이의 아버지가 된 뒤에도 부모님의 손을 빌리는 내 모습은 효도와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날 생각이 달라졌다. 부모가 된 뒤에도 나는 부모님의 돌봄을 받아야 했다. 어른이 되면 더는 부모에게 기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아이가 생긴 뒤에는 내가 보호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부모님께 걱정을 드리지 않고, 오히려 필요한 것을 챙겨 드리는 자식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내가 정한 순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이혼 뒤에는 몸을 회복하는 일과 생계를 이어가는 일, 아이를 돌보는 일이 한꺼번에 놓였다. 내가 아이를 다시 직접 키우기 전에도 부모님은 손자의 일상을 지켜 주셨다. 다시 양육을 시작한 뒤에는 내가 일을 하거나 치료받는 동안 생활의 빈자리를 이어 주셨다. 그 도움 덕분에 아이의 하루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효도를 받은 만큼 되갚는 계산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효도라는 말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 부모님의 생활비를 드리거나 병원에 동행하는 일을 떠올릴 수도 있고, 자주 연락하고 마음을 살피는 일을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효도는 모든 사람이 따라야 할 정답이 아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 경제 상황과 건강, 과거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모와 안전하게 연락할 수 없는 사람에게 화해나 돌봄을 의무로 요구해서도 안 된다. 나의 경우에는 부모님께 받은 돌봄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그것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형편에서 큰돈이나 완전한 편안함을 드리겠다는 약속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할 수 없는 보답을 상상하며 죄책감만 키우는 대신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보았다.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큰돈만이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으면 효도할 수 없다고 느끼기 쉽다. 나도 부모님께 넉넉한 생활비나 좋은 선물을 드릴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마음이 작아질 때가 있었다. 하지만 부모님께 필요한 것이 언제나 돈으로만 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이 필요한지 묻지 않은 채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한 선물을 고르는 것보다, 부모님의 실제 생활을 듣는 일이 먼저였다.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을 기억하고, 처리하기 어려운 서류나 기기 사용을 도울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에 연락하고, 내가 약속한 일을 미루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 아이를 돌봐주신 뒤에는 부모님이 쉬실 수 있도록 예정된 시간에 돌아왔다. 부모님 앞에서 괜찮은 척만 하지 않고 내 치료와 생활 계획을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일도 필요했다. 다만 내 감정과 문제를 모두 부모님이 해결해야 할 책임으로 넘기지는 않았다. 좋은 부모와의 기억이 없는 사람에게도 돌봄은 시작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부모에게서 안전하고 따뜻한 돌봄을 받은 것은 아니다. 폭력과 방임, 중독이나 지속적인 모욕을 경험한 사람에게 부모를 이해하고 효도하라는 말은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세대 간 돌봄을 이어간다는 이유로 위험한 관계에 다시 들어갈 필요는 없다. 연락을 제한하거나 끊는 것이 자신과 아이를 지키는 데 필요할 수 있다. 화해와 용서는 개인의 선택이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이 아니다. 받은 돌봄이 거의 없다고 느끼는 사람도 새로운 돌봄의 방식을 만들 수 있다. 믿을 수 있는 친척과 친구, 교사와 상담자, 지역 사회의 안전한 어른에게서 배운 존중을 아이에게 전할 수 있다. 전문적인 치료와 부모 교육을 통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양육을 연습할 수도 있다. 돌봄의 시작은 혈연만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효도는 오늘의 생활을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 부모님께 받은 것을 모두 갚았다고 말할 수 없다. 앞으로도 그렇게 계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모님의 시간과 마음을 돈이나 횟수로 바꾸어 같은 크기로 돌려드릴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대신 받은 돌봄이 어디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말할 수 있다. 부모님이 지켜 주신 아이는 다시 아버지와 아침을 시작하고 있다. 나는 몸이 불편해도 치료받으며 아이의 식사와 학교생활을 살피고, 술을 마시지 않는 오늘을 선택한다. 부모님의 도움을 당연하게 사용하지 않고 그분들의 건강과 시간을 묻는다. 큰돈을 드리지 못하는 날에도 연락하고, 약속을 지키며, 가능한 일을 찾는다. 아이에게는 조부모의 사랑을 빚으로 설명하지 않고 받은 친절을 기억하는 방법을 보여주려 한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효도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에게는 분명한 효도였다. 부모님께 받은 돌봄이 미안함 속에서 멈추지 않게 하는 것. 그 돌봄을 내 삶의 회복과 아들의 안전한 하루로 이어 주는 것. 그리고 언젠가 아들이 그 사랑을 갚아야 할 의무가 아니라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힘으로 기억하게 하는 것이었다. 부모님께 받은 돌봄을 정확히 되갚을 수는 없지만 아들의 오늘을 지키는 방식으로 그 사랑을 다음 세대에 건넬 수 있었다. ※이 글은 개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입니다. 치료·복약·양육·복지 이용은 의료진과 관계 기관의 최신 안내를 우선해 주세요. 오늘의 작은 실천 부모님께 받은 도움을 오늘 가족의 안정으로 이어 줄 수 있는 행동 하나를 실천해 보세요. 당신에게 묻습니다.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하고 있나요? 다음 편 예고 | 22화 장애 이후 고정 출퇴근 대신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세대 간 돌봄 #조부모 육아 #부모님 효도 #가족 돌봄 #한부모가족 #아빠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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