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아빠의 지난 시간을 글로 적다 보니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남았다. 함께 살면서도 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다. 아빠는 여러 일을 했고 여러 번 다시 시작했다. 법학을 공부하고 금융회사에 다녔으며 주방과 조선소에서 일했다. 잘하고 싶었고 책임지고 싶었다. 그 마음이 있었어도 잘못된 선택을 했고, 가까운 사람들을 아프게 한 시간도 있었다. 네 곁을 지키지 못했던 일은 지금도 미안하다. 몸을 다치고 생활이 무너졌을 때 아빠는 술에 기대었고, 어린 너를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맡겼다. 내 고통이 너무 크게 보여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팠다는 사실만으로 그때의 일을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빠가 돌아보며 책임져야 할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놓고 싶었던 때 네가 떠올랐다. 아빠 없이 살아갈 너를 생각하자 살아 있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순간 모든 문제가 풀리거나 희망이 가득해진 것은 아니었다. 통증은 남았고 벌 방법도 막막했다. 그저 네 곁에 다시 있고 싶었다. 그 마음을 붙잡고 술과 담배를 끊기로 했고, 힘들 때는 진료를 받으며 견뎠다. 너를 다시 데려온 뒤에는 아침에 깨우고, 먹이고, 유치원과 학교에 보내는 생활을 배웠다. 안아주고 같은 말을 거듭 설명하고 함께 놀아야 했다. 아빠도 지쳐서 마음의 여유를 잃는 때가 있었다. 너를 사랑하면 모든 일을 저절로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생각은 실제 생활과 달랐다. 사랑하는 마음을 하루의 돌봄으로 옮기는 데에도 도움과 시간이 필요했다. 아빠의 몸과 형편 때문에 다른 부모들만큼 경제적으로 도와주지 못할 수도 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모두 마련해 주지 못할 때면 미안하다. 그래서 가능한 일을 배우고 생활비를 아끼며 교육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려고 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빠듯한 형편에서 아빠를 대학까지 보내주셨듯이, 아빠도 가능한 만큼 네게 배울 기회를 주고 싶었다. 하지만 네 공부를 생각하면서 아빠의 어린 시절도 함께 떠올랐다. 성적이 떨어지면 내 가치도 작아진 것처럼 느꼈던 때가 있었다. 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나를 미워하느라 공부하는 이유를 놓쳤다. 너에게 그런 기억을 그대로 주고 싶지는 않다. 성적을 챙기는 마음 때문에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묻는 일을 잊고 싶지 않다. 공부는 학교와 학원에 맡기고 아빠는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고 그날 힘든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늘 대화가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생활 습관 때문에 서로 부딪히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네가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을 무조건 버릇없다고 여기고 싶지는 않았다. 아빠와 생각이 다를 때에도 네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사이이고 싶다. 네 인생은 네 것이다. 네가 아빠를 살려야 할 의무는 없다. 아빠가 술을 끊고 일하고 공부하고 운동한 일에 보답하려고 네 삶을 정할 필요도 없다. 네가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었다는 아빠의 말이 네 어깨에 짐으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앞으로의 아빠 생활은 아빠가 책임져야 한다. 필요한 도움도 아빠가 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네가 앞으로 어떤 길을 고를지 아빠가 미리 정해둘 수는 없다. 아빠는 어린 시절 기술을 배워 일찍 독립하고 싶었지만 다른 학교에 갔고, 대학에서는 관심 있던 사회복지보다 법학을 택했다. 그 선택을 모두 잘못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생각하고 이야기할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아빠가 인정받고 싶었던 마음이 너의 선택까지 대신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아빠는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잘 해내는 날이 많으면 좋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때 일이 잘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너 자신까지 미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잘못한 일은 돌아보고 고칠 수 있다. 그 일을 겪은 너에게 다시 하루를 살아갈 자리도 남겨두었으면 한다. 아빠는 그 마음을 배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들 때는 도움을 청했으면 한다. 아빠도 혼자 해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도움을 구하는 일을 부끄러워했다. 그런데 할머니와 할아버지, 고모들, 치료와 돌봄의 자리에서 만난 분들의 도움이 있어야 다시 생활할 수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너는 어려움을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좋겠다. 성공하려고 너 자신을 너무 몰아붙이지도 않았으면 한다. 아빠는 오래 일하고 많이 벌면 가족을 잘 책임지는 것이라고 믿었다. 몸이 아파도 쉬지 못했고 보낼 시간은 부족했다. 지금은 함께 밥을 먹고 하루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지키고 싶다. 네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네 몸과 마음, 소중한 사람들과 지낼 자리를 함께 생각했으면 한다. 아빠는 아직 통증이 있고 생활비 걱정도 한다. 다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쓴다고 해서 어려움이 모두 지난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지금은 너와 함께 살고 있다. 아침이면 너를 학교에 보내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운동하고 책을 읽는다. 어떤 날에는 봉사도 한다. 별일 없어 보이는 그 생활이 아빠에게는 오래 이어가고 싶은 시간이다. 함께 걸을 때면 네가 조금 앞서고 아빠는 천천히 뒤따른다. 걸음이 느리다고 예전처럼 부끄럽지는 않다. 네 곁에 다시 돌아와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다. 아빠는 네가 아빠의 속도에 맞추느라 너의 길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너는 네 삶을 살아가면 된다. 아빠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무엇을 이루었는지와 상관없이, 그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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