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자녀를 다 키운 부모님께 어린 아들을 맡겼던 때가 있다. 몸과 생활이 무너지고 술에 기대던 시기였다. 나는 내 고통을 감당하지 못했고, 부모님은 다시 아이를 돌보셔야 했다. 지금 아들을 키우면서 그 일을 돌아보면, 손자를 잠시 맡아주셨다는 말로는 부모님의 수고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 하루가 멈춰 있는 동안에도 아이의 하루는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세 누나와 한 여동생 사이에서 자랐다. 다섯 남매 가운데 넷째였지만 유일한 아들이라는 이유로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 울릉도의 집은 넉넉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바다와 밭으로 일을 나가셨고, 집에 남은 아이들은 심부름과 집안일을 나누었다. 그런 형편에서도 내게 필요한 것은 웬만하면 마련해 주려 하셨다. 어린 나는 그 마음의 무게를 잘 몰랐다.
텔레비전이 없어서 이웃집에 보러 다니다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다. 그 뒤 부모님은 빠듯한 살림에 텔레비전을 사 주셨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비싼 물건이었던 자전거도 마련해 주셨다. 그때 내 기억에 먼저 남은 것은 갖고 싶던 물건이 생긴 기쁨이었다. 그 돈이 어떤 일을 하고 얼마나 아껴서 마련된 것인지는 한참 뒤에야 생각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일을 나가시면 누나들이 나를 업고 달래며 돌보았다. 나는 혼자 힘으로 자란 사람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돌봄을 받던 기억은 오래전부터 내 생활 안에 있었다. 그런데 성인이 되어 도움받아야 했을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돈을 벌고 가족을 책임져야 할 내가 다시 기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미 받은 사랑보다 내가 이루지 못한 일만 크게 보였다. 아버지는 조용한 분이었다. 따뜻했지만 마음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셨고, 나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둘이 긴 대화를 나눈 기억은 많지 않다. 성인이 된 뒤 함께 오징어잡이를 나갔던 시간이 남아 있다. 같은 배에 앉아 바다를 보며 아버지 곁에 있었다. 지금도 아버지를 떠올리면 많은 말보다 그렇게 함께 있었던 장면이 먼저 생각난다. 어머니는 엄격했고 쉴 틈 없이 일하셨다. 어린 나에게는 무섭기도 하고 때로는 싫기도 한 분이었다. 아들을 키운 뒤에는 그 기억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한 아이의 밥과 옷, 학교생활을 챙기는 데에도 많은 힘이 든다. 다섯 아이를 먹이고 공부시키면서 밭일과 집안일까지 맡았던 어머니의 생활은 어땠을까. 이제야 그 수고를 헤아려 보게 된다. 술을 끊고 다시 생활을 꾸리며 부모님이 계신 양산 가까이로 돌아왔다. 살 집을 마련하고 맡겼던 아들을 데려왔다.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며 울었고, 아이를 키워주신 데 감사드렸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 했다. 그 말로 부모님이 겪은 걱정과 고생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이후의 생활을 내가 다시 맡아가는 일이 남아 있었다. 아들을 데려왔다고 모든 일을 혼자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일을 해야 하는 시간과 아이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겹쳤다. 내 몸이 아픈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다시 손자를 돌봐 주셨다. 또 부탁드리는 일이 죄송했지만, 그 도움 덕분에 일을 하고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감사하는 마음과 도움을 구하는 일이 함께 있어야 하는 때였다. 부모님은 내가 다시 술을 마시거나 양육을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하셨을 것이다. 내가 한 다짐만으로 곧바로 안심하실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걱정을 많이 끼쳤기 때문이다. 아침에 아이를 보내고, 일을 하고, 다시 데려오는 생활이 이어져야 했다. 나도 그 시간을 하루씩 살아내면서 내가 맡은 일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어느 때 부모님은 내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깊이 감동했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보다 달라진 생활을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돈을 드리거나 큰일을 이루어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술 없이 지내고 아들을 돌보는 지금의 생활을 이어가는 일이 내게는 먼저였다.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안심하실 수 있기를 바랐다. 형제들에게도 진 빚이 있다. 음식점을 할 때 돈을 빌려주었고, 사업이 무너지고 장애를 안게 된 뒤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빌린 돈을 갚는 일은 중요했다. 그렇지만 고마움까지 돈으로 다 정리되는 것은 아니었다. 잘될 때뿐 아니라 어려울 때도 내 편이 되어준 사람들이었다. 다시 같은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지금의 생활에도 이어져 있다. 어릴 때 받은 돌봄과 어른이 되어 다시 받은 돌봄을 함께 돌아본다. 그사이에는 나 혼자 잘 살아보겠다고 애쓴 시간도 있었고, 가족을 책임지고 있다고 믿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내 생활이 남의 손길과 떨어져 온전히 혼자 서 있던 적은 없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지금은 덜 부끄럽다. 내가 받은 도움을 기억해야 가족의 수고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도움을 돌아보며 모든 가족이 이렇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군가의 돌봄은 시간과 힘이 드는 일이다. 내가 받았다는 이유로 당연한 의무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어릴 때는 그 수고를 잘 몰랐지만 키우며 조금씩 알아간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은 내가 그 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부모님께 큰 효도를 해드렸다고 말할 만한 것은 없다. 여전히 손을 빌릴 때가 있고 미안한 일도 남아 있다. 그래도 예전처럼 부끄러움 때문에 내 생활에서 눈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나는 지금 아들과 함께 살고 있고, 술을 마시지 않으며 하루를 꾸려간다.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은 것은 그 하루가 내일에도 이어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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