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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달리고 싶어서 걷기부터 시작했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9.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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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은 달리고 있었고, 나는 걷고 있었다. 2023년 5월 무렵 양산 중앙체육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오른쪽 다리는 왼쪽보다 약 3센티미터 짧았다. 어깨와 무릎, 목과 허리에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 내게는 잘 걷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는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다시 달려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몸을 쓰는 일에는 자신이 있던 사람이었다. 주방에서는 남보다 먼저 나와 일을 배웠고, 조선소에서는 늦게까지 남아 기술을 익혔다. 시간이 부족하면 수면시간을 줄였고, 실력이 모자라면 더 오래 붙잡았다. 그렇게 노력해서 얻은 성과가 있었다. 그래서 몸이 달라진 뒤에도 예전처럼 밀어붙이면 어떻게든 나아질 것 같은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을 여러 번 받은 몸에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마음이 앞선다고 다리가 같은 속도로 따라오지 않았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 한쪽 다리에 부담이 쏠렸다. 목과 허리, 무릎의 상태도 살펴야 했다.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결심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조건들이 내 걸음에 함께 있었다. 처음부터 많은 것을 하려 하지 않았다. 아주 느리게 걸었다. 걷다가 쉬고, 다시 걸었다. 다른 사람의 운동과 나란히 놓으면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내게는 그날 몸이 허락하는 만큼 움직여 보는 일이었다. 남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보다 내가 지금 어느 정도 걸을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려고 했다. 약 1년 동안 헬스장에 가서 거의 걷기만 했다. 운동을 시작했다고 하면 눈에 띄는 변화를 기대하기 쉽다. 나도 조급할 때가 있었다. 오래 걷기만 하는 시간이 충분한지 의심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수술한 몸으로는 속도를 마음대로 당길 수 없었다. 무리하면 통증이 커지고, 오히려 운동을 오래 쉬게 될 수 있었다. 내가 고쳐야 할 것은 느린 걸음만이 아니었다. 아파도 참는 버릇이 있었다. 일을 할 때는 참고 버티는 사람이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수술 뒤에도 충분히 회복하지 못한 채 현장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있었다. 운동하는 시간까지 같은 방식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인정하는 일이 내게는 낯선 연습이었다. 어제보다 한 걸음을 더 걸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려 했다. 그렇다고 매일 더 걸어야 한다는 새로운 숙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몸이 아픈 날의 나까지 다그치면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래 이어가려면 오늘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쉬어야 할 때를 받아들이는 것도 내가 운동하면서 배우고 싶었던 태도였다.
잘 걷고 싶다는 바람에는 아들과 앞으로도 함께 지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이를 돌보려면 내 몸의 생활도 이어져야 했다. 운동을 내 능력을 증명하는 일로만 생각하면 성과가 더딘 날은 쉽게 실망하게 된다. 지금은 아들과 보내는 하루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려 한다. 그렇게 보면 느리게 걷는 시간도 내 생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눈에 띄는 결과를 보여주지 못해도 내가 왜 이곳에 왔는지는 잊지 않을 수 있었다. 다시 달리고 싶었던 처음의 소원 곁에, 지금의 걸음을 오래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함께 놓였다. 운동할 시간을 마련하는 데에도 도움이 필요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돌봄 선생님께 하루 세 시간씩 아이를 맡겼다. 선생님이 저녁과 생활을 살펴주시는 동안 나는 운동을 했다. 혼자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던 때에는 내 시간을 따로 마련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지친 채로 모든 일을 계속 맡는 생활은 오래 버티기 어려웠다. 돌봄에 드는 돈은 적지 않았다. 그래도 다른 지출을 줄여서라도 필요한 도움을 받기로 했다. 운동을 다녀오면 아들에게 조금 더 여유 있게 대할 수 있었다. 나를 돌보는 시간과 아들을 돌보는 시간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생활 속에서 느꼈다. 내가 잠깐 아이 곁을 비우는 동안에도 우리 하루는 도움받아 계속되고 있었다. 이 기록을 쓰는 동안 운동한 시간은 약 3년이 되었다. 다리 길이의 차이는 여전하고 통증도 남아 있다. 운동 뒤의 변화는 걷는 모습만으로 다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운동을 하면서 마음은 한결 안정되었다고 느낀다. 수술한 몸이 예전처럼 부끄럽지도 않다. 달라지지 않은 부분과 달라진 부분을 함께 말하는 것이 지금의 내 상태에 가깝다. 아침에는 통증약을 챙겨 먹고 아들을 깨워 학교에 보낸다.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받는다. 운동을 한다고 치료가 필요 없어지거나 생활비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도 있다. 그래서 운동 하나로 내 삶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여러 도움과 일상의 노력이 함께 내 생활을 받치고 있다. 예전에는 남에게 보일 만한 결과가 있어야 노력한 시간을 인정할 수 있었다. 지금은 걷고 돌아와 다음 생활을 이어가는 것에도 의미를 둔다. 아이와 이야기하고, 밥을 먹고, 해야 할 일을 하는 하루가 있다. 그 하루를 조금 더 안정된 마음으로 보내고 싶어서 다시 운동하러 간다. 누군가와 비교해서 앞서는 일은 그 시간의 목적에서 조금씩 멀어졌다. 아들과 걸으면 아이가 조금 앞선다. 나는 천천히 뒤따른다. 예전 같으면 그 간격이 내 부족함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지금은 같은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이 좋다. 달리고 싶다는 바람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 바람을 품고도 오늘은 걸을 수 있다. 내 속도로 아들의 뒤를 따라가는 이 시각이 지금 내가 이어가고 싶은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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