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잘되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심하게 미워했다. 시험을 포기하거나 사업에 실패하면 그 일에 대한 실망이나 전체를 향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살피기도 전에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심리학 학위과정을 밟으며 여러 책을 읽은 것은 이런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왜 남의 평가에 쉽게 흔들리고, 실패할 때마다 나를 견디기 어려워지는지 알고 싶었다. 처음부터 그런 질문을 두고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는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들었고, 집에서는 유일한 아들로 사랑받았다. 기대받는 일이 익숙했다. 잘하면 인정받는다는 경험은 힘이 되기도 했다. 다만 기대에 못 미치는 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한 채 자란 것 같다. 칭찬받지 못할 때도 내가 그대로 나라는 사실이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포항고등학교에 들어가 첫 시험을 봤을 때 약 580명 중 560등 대였다. 섬에서는 공부를 잘하던 내가 거의 꼴찌가 되었다. 그 뒤 1년을 공부에 매달려 마지막 시험에서는 65등까지 올랐다. 성적이 오른 것은 분명한 결과였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등수를 올리는 동안 지친 마음까지 함께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성적이 다시 떨어졌을 때는 부모님께 죄책감을 느꼈다. 나를 믿고 공부시켜 주셨는데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었다. 성적표의 숫자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전부 설명하는 것처럼 여겼다. 지금 돌아보면 공부가 힘들어졌다는 사실을 말할 자리가 내 마음 안에도 없었다. 힘들다고 인정하기보다 더 잘했어야 한다며 나를 몰아붙였다. 대학을 고를 때에는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었지만 택했다. 명성이 있는 학과에 들어가면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대 뒤에는 사법시험에 도전했다가 1년 정도 공부한 끝에 포기했다. 공부를 이어갈 자신이 없었지만 내 처지와 마음을 살핀 선택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때 내게 먼저 남은 말은 실패였고, 자신감은 다시 흔들렸다.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엄격했던 어머니와 말이 적었던 아버지, 내게 주어졌던 사랑과 기대를 돌아보았다. 그렇다고 지금의 어려움을 부모님 탓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빠듯한 형편에서 나를 키우고 공부시키셨다. 내가 살펴보고 싶었던 것은 그 안에서 어떤 마음을 익혔고, 그 마음이 이후의 선택과 자기평가에 어떻게 이어졌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술에 기대던 때에도 나는 실패한 내가 부끄러웠다. 건강과 직장, 가정을 잃은 일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술이 깨면 수치심과 죄책감이 돌아왔고 그 감정을 피하려고 다시 마셨다. 이미 벌어진 일을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는 생활을 바꿀 수 없었다. 오히려 지금 해야 할 일을 바라볼 힘까지 소모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었다고 이런 습관이 한 번에 없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는 것과 다음 순간에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거리가 있었다. 지금도 잘못한 일은 인정해야 하고, 상처 준 사람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다만 잘못을 인정한 다음에도 계속 나를 미워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려 한다. 반성하는 마음이 남은 생활까지 포기하는 이유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지금의 마음으로 과거의 선택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이 많다. 그렇다고 그때의 내가 알고 있던 것과 견딜 수 있던 형편을 모두 지워놓고 판단하고 싶지는 않다. 어떤 기대에 이끌렸는지, 무엇이 두려웠는지를 함께 살펴야 같은 방식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버릇을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해하려는 마음을 잘못의 핑계로 쓰지 않으면서도 내게 남겨두고 싶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더 많은 성과를 찾던 때도 있었다. 금융회사에 들어가고, 기술을 배우고, 조선소에서 책임자가 되었다. 노력한 시간과 성취는 내 삶의 일부다. 그러나 몸을 다쳐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그동안의 내가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느꼈다. 내 가치를 일하는 능력을 쌓은 곳에 지나치게 기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은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벌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돈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아들의 생활과 교육을 지켜야 하고 갑작스러운 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으니 있다. 다만 더 많이 버는 일을 위해 무엇까지 내줄 수 있는지는 예전보다 신중하게 생각한다. 몸이 감당할 수 있는지, 아이와 보낼 시간이 남는지도 함께 살핀다. 조선소에서 많이 벌 때는 가족을 잘 책임지고 있다고 믿었다. 정작 가족과 보낼 시간은 부족했고 상해 갔다. 이제는 아들과 이야기할 시간, 운동하고 책을 읽을 시간이 필요하다. 부모님께 안부를 묻고 봉사도 하고 싶다. 그런 시간을 벌이가 끝난 뒤 남으면 쓰는 것으로만 둘 수는 없었다. 내가 지키고 싶은 생활 안에 처음부터 포함해야 했다. 아들에게도 성적과 평가만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기억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 공부할 기회는 마련해 주되, 힘든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아이가 잘될 때 기뻐하는 것만큼 잘되지 않을 때 곁에 있는 일도 필요하다. 나 자신에게 그렇게 대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아들을 대하는 태도와도 닿아 있다고 느낀다. 나는 아직 마음을 다 이해한 사람이 아니다. 통증과 생활의 어려움이 남아 있고 정신적으로 힘들 때는 진료를 받는다. 공부는 그런 생활 속에서 내 마음을 조금 더 살펴보게 해주었다. 실패했던 과거를 지우려고 하기보다 그 일을 겪은 내가 오늘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 나를 벌주는 데 쓰던 힘을 아들과 살아갈 하루에 조금 더 보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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