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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공부와 돌봄을 맡기기로 했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9. 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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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교육을 생각하면 부모님이 나를 대학까지 보내 주신 일이 먼저 떠오른다. 빠듯한 형편에서 그 돈을 마련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을까. 학생이던 나는 내가 공부하는 일에 마음을 썼지만,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배움 뒤에 있는 생활비와 시간을 생각한다. 저축하고 앞으로의 생활을 계획할 때도 아들의 교육이 먼저 떠올랐다. 나도 가능한 만큼 배울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방과후학교에 15만 원, 국어와 영어, 수학 교육에 41만 원을 썼다. 내 형편에서 교육비는 가볍게 생각할 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누렸던 배움의 기회를 아이에게도 가능한 만큼 주고 싶었다. 얼마를 쓰는지가 곧 부모의 마음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생활 안에서 아이의 배움에 어떤 자리를 내줄지 고민했다. 돈을 쓰기로 한 뒤에도 그 선택이 우리 생활에 맞는지 살펴야 했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가르쳐 볼 생각도 했다. 법학과 심리학, 사회복지를 공부했으니 해볼 만하다고 여겼고 교육 계획도 세세하게 세웠다. 공부해 본 경험이 있으면 아이를 가르치는 일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계획을 세우는 일과 아들의 공부를 매일 함께하는 일은 달랐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닐 수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공부가 어떤 자리를 차지할지도 생각해야 했다. 세세한 계획에는 내가 바라는 순서가 담겨 있었다. 그 순서를 아들도 같은 마음으로 따라올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계획 밖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공부를 가르치다가 아들과 사이가 나빠질지 걱정되었다. 문제를 검사하고 잔소리하는 아버지보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공부를 챙기려는 마음이 앞서면 아이의 하루에서 내가 먼저 찾는 것이 틀린 문제나 부족한 점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아이가 배울 기회를 갖기를 바랐지만, 집에서 나를 대할 때까지 평가받는 기분이 들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무엇을 직접 맡아야 할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공부는 학교와 학원에 맡겼다. 나는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 주고 그날 힘든 일은 없었는지 물었다. 모든 교육을 내가 해내려던 계획에서 조금 물러난 것이다. 맡겼다고 아들의 배움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자리에서 찾았다. 공부하는 아이를 살피는 일도 필요하지만,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아들의 말을 듣는 일은 아버지인 내가 계속하고 싶었다. 아들은 질문이 많고 자기 생각을 분명히 말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날도 있지만 생활 습관 때문에 세게 부딪히는 날도 있었다. 마음을 나누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다짐이 있다고 늘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기 의견을 말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버릇없다고 여기지는 않으려고 했다. 내 말에 바로 따르는 모습만을 좋은 관계의 기준으로 삼으면 아이의 생각을 듣겠다는 바람과 멀어질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 성적과 평가 때문에 공부가 싫어졌다. 순위가 내려가면 나 자신도 작아지는 것 같았고 죄송한 마음이 컸다. 아들에게는 같은 기억을 주고 싶지 않았다.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성적 때문에 아이가 자신을 미워하거나 아버지에게 말을 걸기 어려워지는 일은 바라지 않았다. 내가 겪은 일을 생각하면 공부를 챙기는 마음과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따로 살필 필요가 있었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하루 세 시간씩 돌봄 선생님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선생님이 아이의 저녁과 생활을 살피는 동안 나는 운동을 했다. 아버지인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돌봄을 맡기고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처음부터 편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아이와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육아 스트레스가 심했고, 혼자 있을 시간도 필요했다. 몸을 돌보는 일을 계속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돌봄 비용은 적지 않았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형편에서 지출을 더하기로 하는 결정에는 무게가 있었다. 그래도 내게는 필요한 돈이었다. 다른 지출을 줄이더라도 교육과 돌봄, 건강에는 돈을 쓰기로 했다. 무조건 덜 쓰는 것이 우리 생활을 더 오래 지켜 주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지친 상태로 모든 일을 붙잡고 있는 데에도 부담이 따랐다. 그 부담은 나에게만 머물지 않고 아이를 대하는 여유에도 영향을 주었다. 아들을 위해 쓰는 돈과 나를 위해 쓰는 돈을 완전히 갈라 생각하기 어려웠다. 내가 몸을 돌볼 시간을 얻는 일도 결국 우리가 함께 살아갈 생활에 필요한 지출이었다. 돌봄을 맡기고 운동을 다녀오면 아들에게 조금 더 여유 있게 대할 수 있었다. 하루 세 시간은 내 몸을 보살피는 시간이면서 아이와 다시 마주할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생긴 시간이기에 그 의미를 가볍게 여기고 싶지 않다. 직접 돌보는 시간이 줄었다고 아버지의 역할이 줄어든 것으로만 볼 수는 없었다. 내가 돌아온 뒤 아이의 말을 들을 힘이 조금 더 남는다는 사실도 우리 생활에서는 중요했다. 학교와 학원, 돌봄 선생님에게 맡기기로 한 뒤에도 나는 아들의 아버지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이의 생활을 살피고 이야기를 듣고, 부딪힌 뒤에는 내 태도도 돌아봐야 했다. 다른 사람이 맡을 수 있는 일을 나누니 내가 아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더 분명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는 아버지보다 아이가 편안하게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돌볼 시간도 생활 안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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