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과 한소희가 한 작품에서 이렇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줄은 몰랐다. 두 배우는 나이 차이도 크고 그동안 보여 준 이미지도 달랐다. 그런데 〈인턴〉을 보고 나니 그 차이가 두 사람의 관계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배우들의 만남이 궁금했지만,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내가 앞으로 어떤 어른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생각하고 있었다.
2026년 9월 16일 개봉한 한국판 〈인턴〉은 로버트 드 니로와 앤 해서웨이가 출연했던 2015년 동명 영화를 김도영 감독이 다시 만든 작품이다. 최민식은 37년의 직장 경력을 가진 노년 인턴 기호를, 한소희는 패션 회사를 성장시킨 젊은 대표 선우를 연기한다.
##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회사의 막내가 된다면
영화의 출발점부터 재미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고 은퇴한 사람이 다시 회사에 들어오는데, 이번에는 인턴이다. 젊은 직원들에게 일을 배우고 자신보다 훨씬 어린 대표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 살아온 세월과 회사 안의 직급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최민식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묘한 재미가 있었다. 〈올드보이〉나 〈악마를 보았다〉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가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새로운 업무 환경에 적응한다. 익숙한 얼굴이 낯선 자리에 들어가니 작은 표정과 행동에도 눈길이 갔다.
기호에게 풍부한 경험이 있다고 해서 모든 일이 쉬운 것은 아니다. 컴퓨터와 달라진 업무 수행 방식 앞에서는 다시 초보가 된다. 과거의 경력만으로 지금의 일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이 인물을 더 가깝게 느끼게 했다. 누구든 새로운 곳에서는 모르는 것이 생기고, 배워야 하는 순간을 만난다.
기호는 그때 나이를 앞세우지 않는다. 어린 동료의 말을 듣고 필요한 일을 찾으라 한다. 서툰 모습을 감추려고 권위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나는 그 태도가 좋았다. 살아온 시간이 길다는 사실과 지금 배워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함께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반면 선우는 빠르게 성장한 회사의 대표다. 자신의 능력으로 사업을 키웠지만, 그만큼 판단하고 책임져야 할 일도 많다. 영화는 경험 많은 인턴과 젊은 대표를 한 공간에 놓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 가는지 보여 준다.
## 대표와 인턴에서, 마음을 나누는 사람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좋았던 이유는 함께 보내는 평범한 시간에 있었다. 남산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대표와 인턴이라는 직급이 잠시 뒤로 물러난다. 회사에서 업무를 주고받던 두 사람이 한 사람과 한 사람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쌓여야 마음도 열리는 것 같다. 이 장면 덕분에 선우가 기호에게 더 깊은 속마음을 꺼내는 모습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선우가 회사에서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일에 몰두하는 대표에게도 긴장을 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얼굴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늘 결정하고 지시해야 하는 자리에서 잠시 벗어난 모습이 반가웠다.
한소희의 연기에서도 그런 여러 얼굴이 보였다. 내가 기억하던 강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에 더해, 일을 해내려 애쓰는 마음과 지친 감정이 함께 느껴졌다. 선우가 자신의 어려움을 드러낼수록 성공한 대표라는 설명만으로는 알 수 없던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는 믿었던 사람과 경영 문제로 갈등하고, 가정에서는 남편과의 문제를 마주한다. 회사의 성장은 분명한 성취지만 그것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선우는 여러 곳에서 생긴 부담을 혼자 끌어안으며 자신에게도 가혹해진다.
## 일본 출장 장면에서 만난 좋은 어른
내가 가장 좋아한 장면은 일본 출장 중 두 사람이 술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대목이다. 선우가 그동안 참아 왔던 마음을 털어놓고 자신을 탓하자, 기호는 단호한 태도로 그 말을 붙잡는다.
정확한 대사를 옮기기보다 내게 남은 뜻을 적고 싶다. 잘못은 다른 사람이 저질렀는데 왜 그 책임까지 자신에게 돌리느냐는 것이었다.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기호의 말은 선우를 몰아세우는 꾸중으로 들리지 않았다.
선우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감당할 필요 없는 책임을 구별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기호는 선우가 해 온 노력과 지금 겪는 어려움을 바라보며, 자신을 무너뜨리는 자책에서 잠시 벗어나도록 돕는다. 나는 그 장면에서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신뢰를 느꼈다.
그렇다고 기호가 모든 답을 가진 인물인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새로운 회사와 젊은 동료들에게 배운다. 선우 또한 자신의 능력으로 회사를 일군 사람이다. 두 사람은 각자 가진 경험을 나누며 조금씩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들의 관계를 더 오래 바라보고 싶었다.
## 내 인생 영화 〈명량〉과 어린 시절의 이순신
기호를 보면서 최민식의 다른 얼굴이 떠올랐다. 내 인생 영화로 꼽는 〈명량〉의 이순신이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어린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아주 시골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는 읽을 책이 많지 않았다. 그때 이순신 장군에 관한 책을 스무 번도 넘게 읽었다. 같은 이야기를 읽고 또 읽는 동안 관심은 동경이 됐다.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그렇게 내 마음에 깊이 들어왔고,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어릴 때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싸워 이기는 장군의 모습이 먼저 보였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가 좋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 승리를 만들어 낸 사람의 마음이 더 궁금해졌다. 두렵지 않았을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이 자신의 판단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견뎠을까.
〈명량〉에서 최민식이 연기한 이순신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과 깊은 고뇌가 함께 있었다. 어린 시절 동경하던 인물이 스크린에서는 아프고 흔들리는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영화 속에서 군율을 어긴 병사를 처형하는 장면은 무겁게 남았다. 군령의 엄정함을 세우는 지휘관의 냉철함이 드러나지만, 그 결정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생사가 걸린 전장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자리가 얼마나 가혹한지 생각하게 했다.
죽은 이들의 원혼을 마주하는 듯한 장면도 잊히지 않는다. 내게는 떠나보낸 사람들의 무게를 안고 다음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인간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영화적 표현을 통해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면을 더 가까이 느꼈다.
냉철하게 판단해야 하는 순간과 홀로 고뇌하는 시간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있었다. 나는 그 모습 때문에 〈명량〉을 오래 기억한다. 책을 읽던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내가 최민식의 얼굴을 통해 다시 만나는 느낌이었다.
## 책임을 지는 사람, 곁을 지켜 주는 사람
내가 이순신에게서 크게 영향받은 부분은 책임을 대하는 자세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마음에는 준비가 따라야 한다. 상황을 살피고 거듭 훈련하며 자신의 판단을 돌아보는 시간을 견뎌야 한다. 나는 승리라는 결과와 함께 그 뒤에 있었을 성실함과 고뇌를 생각하려 한다.
그런 최민식이 이번에는 회사의 막내 인턴으로 나타났다. 전장의 장군과 회사의 인턴이 짊어진 책임은 다르지만, 기호의 조용한 행동에서도 사람을 향한 책임감이 보였다. 상대의 말을 듣고, 필요한 순간에는 자신의 경험을 건네며 다시 일어설 힘을 보탠다.
두 영화를 함께 떠올리니 좋은 어른이 된다는 말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어려운 일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과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알아보는 눈이 함께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모르는 것을 물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젊은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내 경험이 필요할 때 건넬 수 있으면 좋겠다. 따뜻하게 대화면서도 해야 할 말은 피하지 않고, 그 말을 한 뒤에는 상대의 어려움도 함께 살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 이순신을 읽으며 품었던 동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있다. 〈명량〉은 그 동경에 인간의 고뇌와 책임의 무게를 더했고, 〈인턴〉은 내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을 생각하게 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쌓이지만 시간을 어떤 태도로 드러낼지는 내 몫일 것이다. 더 많이 살아왔다는 이유로 앞서 말하기보다 먼저 귀를 기울이고, 어려운 순간에는 내가 감당할 일을 찾는 사람.
**나는 그렇게 멋있고 품격 있게 나이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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