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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절창》 독서 후기|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

책 영화 공연으로 마음 읽기

by 늘파란바다 2026. 9. 21.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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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의 《절창》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기 생각을 존댓말로 들려주는 방식이었습니다. 내면을 드러내는 문장인데도 누군가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했습니다. 그 정중한 목소리에 담긴 거친 감각과 상처에 관한 생각이 함께 마음에 남았습니다.

《절창》은 2025년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장편소설입니다. 제목의 ‘절창(切創)’은 베인 상처를 뜻하며, 타인의 상처에 접촉해 마음을 읽는 여성이 등장합니다. [출판사 제공 작품 소개](https://books.google.com/books/about/% EC % A 0% 88% EC % B0 % BD.html?id=문 오언의)

상처를 읽는 아가씨와 비밀스러운 저택

이야기는 독서 선생님이 문 오언에게 저택에 들어오면서 시작됩니다. 그곳에는 ‘아가씨’라고 불리는 젊은 여성이 살고 있습니다. 보육원에서 자란 그녀는 성인이 된 뒤에도 생계를 꾸리기 어려웠고,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아는 문 오언은 의지하게 됩니다.

받지만 그녀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범죄에 이용합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아가씨가 그 상처를 통해 기억과 정보를 읽게 합니다. 물질적인 대접을 문 오언에 외부 접촉이 제한되는 삶입니다.

저는 이 관계에서 보호받는다는 사실만으로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머물 곳이 있다는 것과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다릅니다.

그런 일상에 책과 독서 선생님이 들어옵니다.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가씨는 자신의 과거와 요구하지만 관한 생각을 털어놓습니다. 상처를 내어 정보를 얻는 공간에서, 상대가 들려주는 말을 듣는 시간이 생기는 것입니다.

문오언은 자신의 마음도 읽어달라고 일인칭 거부합니다. 저는 그 거부에서 자신을 지배하는 사람의 내면까지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저항을 읽었습니다. 누구를 읽을지는 스스로 선택하고 싶은 마음처럼 느껴졌습니다.

자기 생각을 존댓말로 들려주는 사람

제가 특히 좋아한 것은 선생님의 있습니다 서술입니다. ‘자기 내면을’, ‘겁니다’와 같은 어미로 자기 생각을 전하니, 독백을 엿듣기보다 한 사람의 내밀한 고백을 듣는 느낌이었습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높이는 말이 아닙니다. 누구의 눈으로 보고 느끼는가와 그 이야기를 어떤 태도로 전하는가는 다른 문제입니다. 생존 본능 말하면서도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를 의식하는 방식입니다.

존댓말은 화자와 독자 사이에 거리를 남깁니다. 그런데 그 거리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 더 또렷해지기도 했습니다. 말하는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그 안의 마음까지 평온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소설은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아가씨가 선생님에게 전하는 이야기를 교차시킵니다. 독자는 그들의 말을 따라가면서, 어떤 부분이 드러나고 어떤 부분이 감춰지는지도 살피게 됩니다.

감정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문장

제가 옮겨 적은 “내장을 강타하는 껍질을 벗긴다는”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무섭다는 설명보다 강하게 다가왔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몸 안쪽이 먼저 충격을 받는 듯합니다.

상식의 바늘귀에 끼우고 표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존의 생각이 달라지는 정도를 넘어, 자신을 보호하던 막이 벗겨지는 감각을 전합니다. 상식은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이면서 낯선 현실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보호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문장들에서 감정은 추상적인 설명에 머물지 않습니다. 몸을 때리고 표면을 벗겨내는 사건이 됩니다. 어려운 단어를 썼다는 사실보다, 그 단어가 어떤 감각을 일으키는지가 중요했습니다.

목소리가 실이 되어 공기에 자수를 놓을 때

목소리를 첼로에 빗대는 표현에서는 소리의 울림과 질감을 상상하게 됩니다. 소리를 실로 삼아 점화 공기에 자수를 놓는다는 묘사는 더욱 섬세했습니다.

들리는 것이 눈앞에서 형태를 얻습니다. 소리는 실이 되고, 말을 이어가는 행위는 바느질이 됩니다. 하나의 비유가 문장 안에서 계속 펼쳐진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 뒤에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놓입니다. 목소리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상황입니다. 아름다움과 무방비 상태가 함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반대로 방언에 빗댄 낯선 소리, 악취를 마지못해 맡는 듯한 표정에는 불편한 감각이 담깁니다. 마음을 표현하는 ‘착화’와 ‘도살’의 대비는 감정이 시작되었다가 거칠게 끊기는 충격을 전합니다. 제가 주목한 문체는 고운 말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의 비밀과 마지막 선택

선생님은 단순히 독서 지도를 하러 온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아가씨를 구하려다 죽은 기타 선생님의 아내이며, 남편의 죽음과 연결된 사람들에게 접근하려는 목적을 품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정중한 서술도 다르게 보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듣는 듯했던 사람에게 자신의 상처와 복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녀의 말이 전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심을 말하면서도 어떤 사실은 감출 수 있다는 점이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듭니다.

선생님은 총으로 아가씨를 겨누며 문오언에게 자수를 요구합니다. 세 사람이 함께 차에 오른 뒤 치명적인 사고가 발생합니다. 의식이 흐려지는 선생님의 눈에 아가씨가 문오언의 상처를 만지며 무언가 속삭이는 모습이 들어옵니다.

문오언은 죽고, 살아남은 아가씨는 저택을 떠나 섬마을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녀가 마지막에 무엇을 읽었고 어떤 말을 했는지는 분명하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 행동을 사랑이나 용서 중 하나로 단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해하려는 마음인지, 연민인지, 작별인지 여러 가능성이 남습니다.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등장하는 소설인데도 독자는 마지막 마음을 완전히 읽을 수 없습니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라는 말

제가 책의 핵심이라고 느낀 표현은 ‘상처는 사랑의 누룩’입니다. 누룩은 재료를 다른 상태로 변화시키는 데 관여합니다. 이 비유를 통해 상처를 겪고 바라보는 동안 사랑을 이해하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많이 다칠수록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는 뜻으로 읽지는 않았습니다. 상처가 저절로 사랑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생긴 아픔을 어떻게 마주하고, 그 이후 상대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가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상처를 ‘원경’으로 삼는다는 표현도 같은 맥락에서 남았습니다. 사람의 현재 뒤에는 그가 지나온 시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배경이 그 사람의 전부는 아닙니다. 상처를 이해하는 일과 상대를 상처 입은 존재로만 보는 일은 다릅니다.

용서는 선택으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라는 구절에서는 ‘선택’이라는 단어가 중요했습니다. 관계 속에서 상처의 가능성을 없애기 어렵다고 해도, 상처받은 사람이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의 사정을 이해하는 일과 용서하는 일은 다릅니다. 용서하는 것과 이전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도 반드시 같지는 않습니다. 사랑을 말하는 문장이 상처받은 사람에게 또 다른 요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그녀의 선생도 무엇도 아니기에 오히려 말을 전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대목도 기억에 남습니다. 상대를 가르치는 위치에서 내려와, 자신 역시 다 알지 못하는 한 사람으로 말을 건네는 가능성처럼 읽혔습니다.

상처를 들여다보고 만짐으로써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문장은 단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망설임 속에서 저는 자신이 아직 모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태도를 보았습니다.

《절창》은 제게 존댓말로 들려주는 내면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소설이자, 상처와 사랑을 쉽게 단정하지 않게 하는 작품입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말하기 전에,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더 생각하게 하는 책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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