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억눌린 감정을 돌보는 법 바다가 들어주었던 말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10. 20. 08:43

본문

제 어린 시절의 바다는 한 가지 얼굴을 가진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놀이터였고, 부모님이 생계를 이어가는 일터였으며, 때로는 두려움이 남은 곳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수영하다 힘이 빠져 물에 빠질 뻔한 기억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언제나 평온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곳에는 즐거움과 공포가 함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은 한 가지 감정으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사춘기에는 답답한 마음을 설명할 말을 잘 몰랐습니다. 바닷가에서 돌을 던지거나 나무 막대기로 자갈을 내리치며 마음을 달래려 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그 안에 외로움은 없었는지 당시에는 분명히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말 대신 움직임이 앞섰던 장면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 그 모습을 돌아보면, 거친 행동보다 마음을 말할 통로가 부족했던 아이가 먼저 보입니다.
침묵이 언제나 평온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말수가 적다고 속마음까지 조용한 것은 아닙니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이 오가는데 입 밖으로 꺼낼 문장이 없는 때가 있습니다. 힘들다는 말을 시작하면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지 모르고, 설명하다가 유난스럽다는 평가를 들을까 봐 멈추기도 합니다. 그렇게 입을 다물면 주변에서는 별일이 없는 줄 압니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과 알아주지 못한 관계 사이에 거리가 생깁니다. 다만 어린 날 감정을 잘 말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제게 특정한 심리적 장애가 있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감정을 알아차리는 능력과 표현하는 방식은 상황과 경험에 따라 다릅니다. 침묵은 두려움일 수도, 신중함일 수도, 쉬고 싶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제 기억을 돌아볼 때에도 이름을 서둘러 붙이기보다 어떤 자리에서 말이 막혔는지를 살피는 편이 정확합니다. 몸의 긴장도 그때 함께 살필 수 있는 단서입니다. 어깨가 굳거나 숨이 짧아지고 가슴이 답답할 때, 마음에 부담이 있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통증이 모두 억압된 감정의 결과라는 뜻은 아닙니다. 신체 증상이 지속되거나 갑자기 심해지면 진료가 필요합니다.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몸의 원인을 확인하는 일을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같은 바다에 두 마음을 놓아두기
제가 바다를 다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두려웠던 기억이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해 질 무렵 수평선을 보는 고요와 물속에서 힘이 빠졌던 공포가 같은 풍경에 남아 있었습니다. 한쪽을 지워야 다른 쪽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장소를 좋아하면서 경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니, 제 마음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자책도 덜어낼 여지가 생겼습니다.
부모님의 바다는 또 달랐을 것입니다. 제게는 뛰어놀던 공간이었지만 부모님에게는 먹고살아야 하는 현장이었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았어도 걱정의 무게와 바라보는 방향은 달랐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부모님의 속마음을 제가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 기억 하나로 그분들의 침묵을 설명하지 않게 된 것은, 뒤늦게 얻은 변화입니다. 바다는 제 이야기를 해석하거나 빨리 결론 내리라고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서는 답을 구하지 않아도 잠시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마음이 숨을 고르는 자리로 기억합니다. 물론 자연이 상담자처럼 치료를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풍경이 마음을 돌아볼 여유를 주었다는, 제 경험의 표현입니다.
감정을 없애기보다 다룰 자리를 만들기
지금의 저는 감정이 올라왔을 때 곧바로 이유를 따지지 않으려 합니다. 너무 격해져 있다면 주변의 사물과 발바닥의 감각처럼 현재 확인할 수 있는 것에 주의를 돌려봅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스트레스 대처 안내도 현재의 감각에 주의를 두고 어려운 생각과 거리를 두는 연습을 소개합니다. 목적은 불편한 마음을 즉시 지우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마음이 있는 동안에도 다음 행동을 고를 여유를 찾는 것입니다. 숨을 무리하게 조절하거나 억지로 편안해지려 할 필요는 없습니다. 편한 자세로 앉아 주변을 살피거나 조용히 걷는 방식이 더 맞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자신을 해치지 않는 방법을 고르는 일입니다. 돌을 던졌던 과거를 회상하더라도, 그것을 분노를 푸는 권장 방법으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 일과 현재의 선택을 책임지는 일은 함께 가야 합니다. 조금 진정된 뒤에는 감정의 이름을 그날의 상황에 맞추어 짧게 붙여볼 수 있습니다. 화라고 생각했는데 억울함이 더 클 수 있고, 불안 속에 외로움이 섞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정답을 맞히는 시험은 아닙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는 말도 자기 상태를 표현하는 한 방식입니다. 감정 단어를 많이 아는 것보다, 짐작한 이름을 다시 고칠 수 있게 열어두는 태도가 제게는 더 필요했습니다.
글로 적는다면 사건과 해석을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먼저 적고, 그 일을 보며 무엇을 걱정했는지 이어서 씁니다. 그러면 상대가 한 행동과 제가 두려워한 결과가 늘 같은 것은 아님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기록이 모든 갈등을 해결하지는 않지만, 뒤섞인 마음을 한 덩어리로 껴안고 있는 대신 차례로 살펴볼 공간을 줍니다.
감정을 이해했다고 곧바로 행동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억울하다는 마음은 제가 존중받고 싶었다는 단서가 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거친 말을 할 권리를 주지는 않습니다. 감정은 인정하고 행동은 고르는 사이에 잠깐의 틈이 필요합니다. 그 틈을 만드는 연습이 마음을 억누르는 것과는 어떻게 다른지, 생활 속의 작은 장면에서 확인하고 싶습니다.
상대에게 말을 꺼낼 때는 마음 전체를 증명하려 애쓰기보다 지금의 상황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말에 서운했는지, 혼자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지, 해결책보다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라는지 알려주는 것입니다. 상대가 제 의도를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다시 설명할 수 있다는 여유도 안전한 관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머무는 시간과 사람에게 닿는 시간
고요한 시간이 언제나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혼자 있을수록 같은 생각이 맴돌고 고립감이 커진다면 사람에게 연결되는 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믿을 만한 이에게 잠깐 들어달라고 부탁하거나, 감정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워질 때 상담과 진료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혼자 견디는 능력만 늘리는 것이 감정을 돌보는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저도 배워야 했습니다.
누군가 제게 속마음을 꺼낼 때에는 바다 앞에서 느꼈던 여유를 떠올립니다. 말을 재촉하거나 제 경험과 같다고 단정하지 않고, 지금 무엇이 힘든지 듣고 싶습니다. 조용한 사람에게 숨은 상처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공감은 상대의 마음을 미리 알아맞히는 능력보다 그 사람이 말할 자리를 남겨두는 태도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날의 바다로 언제나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판단을 잠시 미루고 마음이 머물 자리를 만드는 방식은 오늘의 생활에 가져올 수 있습니다. 책상 앞의 짧은 기록, 안전한 길을 걷는 시간, 설명이 서툴러도 들어주는 사람과의 대화가 그 자리가 됩니다. 마음을 단숨에 맑게 만들겠다는 기대보다, 흐린 마음도 함부로 몰아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제게 먼저 건네고 싶습니다. 더디게 말을 고르느라 시간이 걸리는 마음도 기다려주고 싶습니다.
참고: WHO(2020), 「Doing What Matters in Times of Stress」. https://www.who.int/publications/i/item/978924000392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