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580명 중 560등이래 성적표 밖에서 다시 읽은 나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10. 20. 08:47

본문

작은 지역 학교에서 전교 일 등을 하던 저는 고등학교의 첫 성적표 앞에서 크게 흔들렸습니다. 오백팔십 명 가운데 오백육십 등대였습니다. 숫자가 낮아진 충격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저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게 해주던 근거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성적이 좋다는 사실과 제 존재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제대로 나누어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진학 과정에는 제 뜻과 다른 선택도 있었습니다. 저는 기술을 배워 일찍 취업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길을 생각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를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로 갔습니다. 어른들을 기쁘게 하고 싶은 마음과 제 생활을 빨리 책임지고 싶은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어느 한쪽만 제 진심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새로운 환경에서 어려움을 만났을 때, 왜 이 길을 가는지 저만의 관심과 엮어서 제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비교하는 집단이 바뀌자 나를 보는 눈도 바뀌었습니다
이전 학교에서 잘하던 제가 더 큰 학교에서는 뒤처지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점수는 특정한 시험에서의 결과인데 제 해석은 사람 전체를 향했습니다. 공부가 부족했던 부분을 찾아야 할 시간에, 저는 제가 원래 별것 아닌 사람이었는지를 확인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결과에 따라 자기 가치가 크게 흔들리는 경험은 조건부 자존감이라는 개념으로 돌아볼 수 있습니다. 크로코와 울프는 사람이 자신의 기치를 걸어두는 영역에 따라 성패가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는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제 경우 그 영역이 성적에 지나치게 몰려 있었던 셈입니다. 이 개념은 과거의 저를 진단하는 이름보다, 왜 성적표 한 장이 그렇게 무거웠는지 이해하는 틀로 도움이 됩니다. 비교 집단이 달라졌다는 설명이 실제 공부의 어려움까지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새로운 학교에는 적응해야 할 수업과 학습량이 있었고, 그에 맞는 공부 방법도 필요했습니다. 다만 실력의 부족을 확인하는 일과 저를 무가치하다고 규정하는 일은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 구별을 당시에는 몰랐다는 점이 지금도 아쉽습니다.
등수는 올랐지만 남지 않았습니다
저는 성적을 만회하기 위해 친구 관계와 휴식을 뒤로 미루고 공부에 매달렸습니다. 일 년 뒤에는 육십오 등까지 올랐습니다. 결과만 보면 큰 변화였습니다. 제가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험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의 중심에는 배우고 싶은 마음보다 더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높아진 등수는 안도감을 주었지만,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어디에 쓰고 싶은지까지 알려주지는 않았습니다. 멈추면 다시 밀릴 것 같아 공부하면서도 쫓기는 기분이었습니다. 이후 성적은 이백 등, 삼백 등으로 내려갔습니다. 저는 그 변화를 다시 의지가 약한 제 탓으로 돌렸습니다. 한 번 해냈으니 계속해 내야 한다는 기대가 이전보다 더 가혹한 기준이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아도 성적 변화의 원인을 단 하나로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공부 방법이나 생활 환경처럼 함께 살펴야 할 조건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분명하게 기억하는 것은 목표가 제 것이 아니라는 감각과,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죄책감입니다. 과거를 이해하려면 당시 알지 못했던 사정도 남겨두어야 합니다. 게으름이나 탈진이라는 말 하나로 모든 과정을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기술을 배우는 길을 택했다면 무조건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조심합니다. 가지 않은 길에는 경험하지 않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완벽한 선택지가 있었다고 가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선택에서는 제가 원하는 이유를 말하고 현실의 조건을 확인할 기회를 조금 더 갖는 일입니다.
결과를 고치는 일과 나를 벌주는 일을 나눕니다
성적과 존재 가치를 구별한다고 해서 노력할 필요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시험에서 틀린 부분이 있다면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살펴야 합니다. 다만 문제를 틀렸다는 사실에서 곧장 저는 못난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넘어가면, 정작 수정할 부분은 흐려집니다. 비난의 문장을 길게 쓰기보다 다음에 물어볼 질문 하나를 찾는 편이 배움에 가깝습니다. 시험지 밖의 능력을 보는 일도 필요했습니다. 조리 기술을 익히거나 현장에서 선박 구조물의 오차를 살피는 일에는 다른 집중과 숙련이 필요합니다. 이후 심리학과 사회복지를 공부하며 사람의 사정을 듣는 시간 역시 성적표와는 다른 질문을 제게 주었습니다. 이 경험을 떠올리는 이유는 공부보다 현장이 더 가치 있다고 순위를 뒤집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저를 이해할 자료가 한 장의 시험지보다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과거의 성과를 찾아 새 점수표를 만드는 일도 경계하려 합니다. 저는 손재주가 있으니 가치 있다거나, 남을 도우니 사랑받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조건만 바뀔 뿐입니다. 잘하는 것이 없는 날에도 한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준은 남아 있어야 합니다. 능력을 기르는 일과 존중받을 자격을 증명하는 일을 조금씩 떼어놓는 연습입니다. 평가받은 날에는 사실을 적는 방식부터 바꾸어볼 수 있습니다. 시험 결과나 업무 평가가 좋지 않았다는 문장 뒤에, 그래서 저는 언제나 실패한다는 해석을 붙이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이 부족했고 어떤 자료가 더 필요한지 기록하면 결과가 다음 행동을 위한 정보가 됩니다. 감정을 억지로 좋게 바꾸지 않아도, 실망한 마음과 수정할 과제를 나란히 놓을 수 있습니다.
성적이 잘 나온 날에도 같은 기준이 필요합니다. 기뻐하고 노력을 인정하되 그 결과가 제 전부라고 확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한 날의 저는 모든 것을 해결할 사람이 되고, 못한 날의 저는 아무것도 못 하는 사람이 된다면 흔들림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도 저를 대하는 기본적인 존중은 남겨두고 싶습니다. 평가에 대한 아쉬움을 충분히 느끼되 그 마음으로 제 인생 전체를 판결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그날의 결과에서 배울 부분을 찾은 뒤에는 다음 날의 생활로 돌아올 자리를 남겨두겠습니다. 자리를 지켜야 다시 공부할 마음도 생깁니다.
아이의 점수 앞에서 제가 배워야 할 것
아이를 대할 때에는 제가 겪은 일을 떠올립니다. 배움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것과 점수에 따라 사랑의 크기를 달리하는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시험이 끝난 날 먼저 듣고 싶은 것은 그날 아이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입니다. 어려웠던 문제를 함께 살필 수는 있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가 제 표정부터 살피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상처받았으니 마음을 다 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에게는 저와 다른 성향과 상황이 있습니다. 제 학창 시절을 기준으로 조언을 서두르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제 과거를 다시 말하게 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말하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묻는 일이 먼저입니다. 성적표는 공부를 돌아볼 자료로 남아도 좋습니다. 다만 식탁에서 존중받을 자리와 부모에게 마음을 말할 권리까지 그 숫자에 걸어두지 않으려 합니다. 예전의 저는 순위가 내려가면 제가 작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이제는 결과가 달라져도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경험을 일상에서 쌓고 싶습니다. 제 아이에게도, 오래전 그 숫자 앞에 서 있던 저에게도 필요한 경험입니다.
참고: Cocker, J.·Wolfe, C. T.(2001), 「Contingencies of self-worth」. https://pubmed.ncbi.nlm.nih.gov/11488379/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