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원서를 쓰던 때, 제 마음 한쪽은 사회복지학으로 향했습니다. 사람을 돕고 돌보는 일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선택한 것은 법학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남들이 알아주는 학과의 이름이 중요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흔들린 자존심을 다시 세우고 싶었고, 제 선택이 괜찮다는 확인을 바깥에서 받고 싶었습니다. 학과의 이름이 제 마음까지 지켜줄 수 있을 것처럼 여겼습니다.
지금 그 선택을 돌아본다고 법학을 잘못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제가 왜 그 길을 택하는지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법을 배우며 실제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보다, 그 학과에 들어간 저를 남들이 어떻게 볼지가 앞섰습니다. 공부할 내용과 살고 싶은 생활을 묻기 전에 명칭의 무게로 저를 설명하려 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제 마음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를 허영심 많은 청년이라고 간단히 꾸짖을 수는 없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는 이전의 좌절을 만회하려는 조급함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책임을 지울 수도 없습니다. 제 사정을 이해하되, 그 선택이 남긴 결과까지 살펴보는 일이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정직한 회고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선택에 하나의 동기만 들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을 돕고 싶으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원할 수 있고,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서 부모님의 기대도 의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순수한 진심 하나를 찾아야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 마음 가운데 무엇이 결정을 주도하고 있으며,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아는 편이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됩니다.
자기 결정성 이론은 자율성과 유능감, 관계성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자율성은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는다는 뜻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스스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과 관련됩니다. 제 지난 선택을 이 관점에서 보면 외적 평가가 사라졌을 때도 남을 이유가 충분했는지를 묻게 됩니다. 이론이 제 삶의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지만, 놓친 질문을 다시 꺼내게 합니다.
자유가 생겼을 때 방향이 더 필요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자 엄격한 생활과 다른 시간이 열렸습니다. 누가 매일의 일과를 정해주지 않는 자유가 생겼습니다. 저는 그 자유를 잘 다루지 못했고 흡연, 밤을 보내는 생활 속에서 방황했습니다. 외부의 통제가 줄어든 것만으로 생활이 주체적으로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제 시간을 무엇에 쓰고 싶은지 고르는 연습은 따로 필요했습니다. 이 시절을 단순히 의지 부족으로만 읽으면 제가 어떤 조건에서 흔들렸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반대로 환경의 탓만 하면 생활을 바꿀 주체도 사라집니다. 공부에 마음이 가지 않았던 이유, 쉬는 방법을 몰랐던 사정, 다음 날을 어떻게 계획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당시의 저를 설명하는 말이 오늘의 저를 무력하게 만드는 판결문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법학에는 정해진 답만 있고 마음에는 답이 없다는 식으로 학문을 나누고 싶지도 않습니다. 법을 다루는 일에도 해석과 맥락이 필요하고, 사람을 돕는 일에도 근거와 책임이 필요합니다. 제가 뒤늦게 알게 된 것은 어느 학문이 더 따뜻하다는 결론이 아닙니다. 공부의 이름이 제 관심과 생활의 방향을 대신 정해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꺼내지 못했던 말이 보여주는 것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직접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친구를 통해서만 뜻을 전했던 첫사랑의 기억도 있습니다. 그 마음은 제 안에서 컸지만 상대에게 충분히 닿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거절당할 가능성이 두려웠고 서툴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과 관계 안에서 의사를 전하는 행동 사이에는 제가 연습해야 할 거리가 있었습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이 반드시 병이 되거나 평생 쌓여 남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제 경우에는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침묵하던 아버지에게도, 힘들어하던 저 자신에게도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돌아봅니다. 그 질문은 제 안에 변하지 않는 정답이 숨어 있다는 뜻보다, 현재의 마음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피려는 시도입니다. 표현한다고 원하는 답을 얻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는 제 마음과 다를 수 있고, 제가 설명한 관심이 현실의 조건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말할 기회를 스스로 없애지 않는 것은 중요합니다. 저는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버거운지, 어떤 도움을 원하는지 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 뒤의 조정은 혼자 짐작하는 대신 실제 대화 속에서 할 수 있습니다.
제 마음을 살피는 데에도 타인의 관점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혼자 생각하면 좋아하는 모습만 상상하거나 익숙한 두려움만 반복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 분야의 실제 업무와 필요한 준비를 알아보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제 선택의 이유를 설명해 볼 수 있습니다. 의견을 듣는 일과 결정권을 넘기는 일을 구별한다면 조언도 제 선택을 돕는 자료가 됩니다. 당장 직업을 바꾸기 어렵더라도 관심을 확인할 길은 남습니다. 생활을 유지하며 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거나 지금 맡은 일에서 관련된 질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큰 결정을 해야만 제 진심에 충실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관심을 이어가는 선택 역시, 남에게 보일 이름보다 제 생활의 내용을 돌보는 방법입니다.
돌아온 길에서 다음 선택의 이유를 찾습니다
사회복지와 심리학을 다시 공부하는 지금, 처음의 관심을 늦게 만났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젊은 날의 모든 관심이 세월을 기다렸다가 반드시 소명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흥미가 이어지는지, 어떤 공부가 필요한지, 제 몸과 생활이 감당할 수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오래 품었다는 이유만으로 적성이나 능력까지 보장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법학을 공부한 시간과 여러 일터를 거친 경험도 현재의 질문에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제도를 읽어보려는 시선, 사람마다 처한 조건이 다름을 알게 된 경험은 사람을 돕는 공부와 연결할 여지가 있습니다. 다만 모든 우회로에 반드시 뜻이 있었다고 억지로 결론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아쉬운 시간은 아쉽다고 인정하면서, 지금 쓸 수 있는 배움을 골라 가져 오면 됩니다.
다음 선택을 앞두면 남에게 설명하기 멋진 이유보다 실제로 반복할 수 있는 행동을 살펴보려 합니다. 관련된 책을 읽는 일이 계속 궁금한지, 그 일을 하는 사람의 하루를 알아보고 싶은지, 작은 공부를 생활의 속도에 맞춰 이어갈 여건이 있는지 묻습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고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이름 안의 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앞으로도 생길 것입니다. 그 마음을 부끄럽다고 숨기기보다 다른 바람들과 나란히 놓고 보려 합니다. 저는 무엇을 알고 싶고 누구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어떤 생활을 지키며 일하고 싶은지 함께 묻겠습니다. 스무 살의 선택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 선택의 이유는 조금 더 제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제게 방향을 되찾는다는 것은 그만큼의 구체적인 변화입니다. 지금의 관심이 달라진다면 이유를 다시 살피면 됩니다. 제가 고른 길도 삶에 맞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참고: Ryan, R. M.·Dec, E. L.(2000),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 https://pubmed.ncbi.nlm.nih.gov/11392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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