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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인 아이도 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역할과 자기 효능감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10. 20.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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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향적인 아이도 회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역할과 자기효능감
어린 시절 저는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좋았고, 마음을 바로 말하는데도 서툴렀습니다. 그런데 소풍에서는 가족에게 빌린 소품을 걸치고 친구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습니다. 두 장면을 따로 떼어놓으면 서로 다른 아이처럼 보입니다. 제 기억 속에서는 모두 저였습니다. 조용한 성격이라는 설명만으로는 그때의 저를 다 담을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더 분명하게 알려준 경험은 전교 어린이회장이 되었던 일입니다. 친구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고, 저는 맡은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조회를 진행하고 방송실에서 전달 사항을 읽는 시간은 평소의 수줍음과 별개로 찾아왔습니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 사람이 된 뒤에 마이크를 잡은 것이 아닙니다. 떨리는 채로 읽어야 할 말을 끝까지 읽었습니다.
성격 이름보다 구체적인 장면을 살펴봅니다
저는 이 경험을 내향성의 극복담으로 읽고 싶지는 않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성향과 사람들 앞에서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능력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지, 낯선 자리에서 긴장하는지, 맡은 일을 준비할 수 있는지는 구별해서 볼 수 있습니다. 한 단어에 이 모든 것을 묶으면 아직 시도하지 않은 행동까지 미리 포기하게 됩니다.
소풍날의 놀이에는 친구들과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방송실에서는 해야 할 일이 비교적 분명했습니다. 같은 저라도 무엇을 기대받는지와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는지에 따라 다른 모습이 나왔습니다. 누구나 같은 조건에서 같은 변화를 겪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제게는 조용하다는 이유가 앞에 나설 수 없다는 결론으로 곧장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새 역할을 앞두고 위축될 때도 이 차이를 기억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려운지,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지, 실수했을 때의 평가가 걱정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막연히 성격을 고치겠다고 마음먹으면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어려운 장면이 구체적으로 보이면 자료를 읽거나 순서를 연습하는 식의 작은 준비가 가능합니다.
혼자 만든 자신감은 아니었습니다
어린이회장 선거를 돌아보면 저를 도와준 친구의 존재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제 가능성을 충분히 믿지 못할 때 먼저 응원해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지지는 제 능력을 대신하지는 않았지만, 시도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을 해낸 기억만 강조하면 용기를 낼 자리를 함께 만들어준 사람을 놓치게 됩니다.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자전거에도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빠듯한 형편에서 자녀의 통학을 돕기 위해 내어주신 것은 물건 하나만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선택에서 사랑과 기대를 함께 느꼈습니다. 지금은 그 마음을 반드시 훌륭한 결과로 갚아야 하는 빚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미 받은 지지가 제가 다음 걸음을 시도할 수 있는 바탕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자기효능감은 제가 저를 훌륭하다고 평가하는 감정과는 조금 다릅니다. 특정한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보는 믿음에 가깝습니다. 밴듀라의 이론은 실제로 해낸 경험을 그 믿음의 중요한 근거로 설명합니다. 이 관점에서 방송실의 기억은 저는 무엇이든 잘한다는 증명이 아닙니다. 긴장해도 준비한 내용을 전달해 본 적이 있다는, 다음 과제를 위한 구체적인 자료입니다.
왕복 열두 킬로미터와 처음 생긴 나만의 방
학교를 오가던 왕복 열두 킬로미터의 길도 기억에 남습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쌓인 날에도 학교에 가야 했습니다. 그 길은 남보다 일찍 도착하는 경주보다, 오늘도 목적지에 닿아야 하는 생활에 가까웠습니다. 다만 그 고단함을 아이에게 필요한 성장 과정이었다고 미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통학이 덜 힘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마음과, 그때 버틴 제 노력을 인정하는 마음은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훗날 몸을 다쳐 다시 걷는 과정에서 그 기억은 다른 의미로 돌아왔습니다. 과거만큼 움직일 수 없을 때, 빠르지 않아도 한 구간씩 살펴 갈 수 있다는 감각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어린 시절에 먼 길을 걸었으니 통증을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몸에 맞는 속도와 쉬어야 할 지점은 새로 정해야 했습니다. 형제자매가 독립한 뒤 처음 혼자 쓰게 된 작은 방도 제게는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모습을 생각하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공부하며 미래를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방의 크기보다 제 시간을 제가 쓸 수 있다는 감각이 좋았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역할을 하는 저에게, 아무 역할도 수행하지 않는 시간이 함께 필요했던 것입니다. 누구나 독립된 방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집 안의 작은 자리나 방해받지 않는 짧은 시간이 그런 기능을 일부 대신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는 이유로 필요한 관계까지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를 쉬게 하는 고요와 저를 고립시키는 침묵이 어떻게 다른지, 그 시간을 보낸 뒤 제 상태를 살펴보려 합니다. 과거의 성공을 떠올릴 때 현재의 몸과 능력이 반드시 같아야 한다는 조건은 붙이지 않으려 합니다. 예전에는 가능했던 일도 지금은 어렵고, 다른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 변화가 과거의 노력을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기억에서 가져올 것은 예전과 같은 결과를 내야 한다는 명령보다, 준비와 지지를 통해 낯선 일을 배워본 방식입니다.
주변의 조용한 사람에게도 제 경험을 기준으로 앞에 나서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가 회장 역할을 했다고 해서 모든 내향적인 사람이 비슷한 역할을 원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기회가 부족한 것과 그 일을 원하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해보고 싶은지 먼저 묻고, 원한다면 준비할 시간과 실수해도 존중받을 환경을 함께 마련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다음 역할을 위해 기억을 구체적으로 남깁니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 자신이 없을 때 저는 성격을 판정하는 질문을 잠시 미뤄두려 합니다. 대신 비슷한 일을 해본 적이 있는지, 그때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떠올려봅니다. 말을 능숙하게 했는지보다 떨려도 끝까지 읽었는지, 혼자 해결했는지보다 누구의 도움을 받았는지가 다음 준비에 더 유용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꺼낼 때도 결과와 조건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작은 시도는 제 한계를 확정하는 시험이 아니라 현재의 조건을 알아보는 기회입니다. 어렵다면 도움을 보태거나 다른 방식을 고를 수 있습니다. 그 여지를 남겨둘 때 저는 실수할 수 있다는 여유를 안고 실패를 피하는 데서 벗어나 배움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작게 시도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처음부터 여러 사람 앞에 오래 서기보다 전달할 문장 몇 개를 준비하거나 믿을 만하고 익숙한 사람 앞에서 소리 내어 연습할 수 있습니다. 해본 뒤에는 성공과 실패 두 칸으로만 나누지 않고 어떤 부분이 가능했고 어디에 도움이 필요했는지 적어봅니다. 다음 과제가 조금 덜 막막해졌다면 그 경험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감을 쌓는 과정에서 조용한 제 모습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중하게 듣는 시간과 앞에 나서서 책임지는 시간은 한 사람 안에서 함께 자랄 수 있습니다. 방송실에서 마이크를 잡던 아이, 소풍에서 춤추던 아이, 작은 방에서 혼자 생각하던 아이를 모두 제 모습으로 받아들일 때 선택할 수 있는 행동도 넓어집니다. 다음 역할은 다른 성격의 사람이 되어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참고: Bandura, A.(1977), 「Self-efficacy: Toward a unifying theory of behavioral change」. https://pubmed.ncbi.nlm.nih.gov/847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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