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동안 사법시험에 매달렸습니다. 다른 일상을 뒤로 미루고 공부했지만, 책을 볼수록 시험의 크기가 더 선명해졌습니다. 일 차를 지나도 이 차와 삼 차가 남아 있었고, 얼마나 오래 준비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길을 중단했습니다. 책을 덮는 행동은 짧았지만 뒤에 저를 설명할 말을 찾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특정한 시험에 도전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보다, 제가 무능한 사람으로 확정된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이전의 성취를 바탕으로 다시 저를 증명하려 했기에 중단의 의미도 지나치게 컸습니다. 목표 하나를 내려놓았는데 제 가능성 전체를 내려놓은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때 느낀 허무함을 저는 술로 피하려 했습니다.
멈춘 사실과 그 사실에 붙인 판결
시험을 계속할 여력이 있는지 검토하는 일은 필요했습니다. 시간과 생활비, 앞으로 감당해야 할 불확실성은 결심만으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중단한 선택을 지금의 시점에서 완벽하게 합리적이었다고 포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당시에는 두려움과 지침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 사정이 섞인 선택을 정답이나 오답 하나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히 나누고 싶은 것은 선택의 평가와 제 존재에 대한 평가입니다. 준비 방식에 부족함이 있었는지, 더 알아볼 방법은 없었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이 곧 저는 무엇도 해내지 못한다는 결론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중단한 일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살피려면, 먼저 사람 전체에 내려둔 판결을 잠시 거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내려놓고 다른 목표에 참여하는 능력과 안녕감의 관계를 다룬 연구도 있습니다. 비와 동료들의 연구를 읽으며, 끝까지 고집하는 것만이 적응의 유일한 방식은 아니라는 관점을 얻습니다. 다만 그 연구가 제 중단이 옳았음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계속할 수 있는 목표인지, 다른 길에는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는 제 현실에서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안정적인 명함이 제 생활과 같지는 않았습니다
취업 과정에도 긴장이 많았습니다. 한 대기업의 시험과 면접은 새벽 여섯 시부터 열두 시간 이어졌고 저는 마지막에 탈락했습니다. 이후 금융권 대기업에 입사했을 때는 부모님을 안심시킬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안정된 급여와 남에게 설명하기 좋은 직장이 생겼습니다. 바깥에서 보이는 조건만으로는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보낸 이 년 동안 저는 제 생활이 제 것이 아닌 듯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엄격한 규칙과 사무 업무의 시간표가 제게 잘 맞지 않았습니다. 손을 움직이고 결과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에 마음이 가는 저와, 당시의 업무 환경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좋은 직장이라는 평가와 제가 그곳에서 오래 일할 수 있는지는 같은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제게 맞지 않았다고 그 직장이 누구에게나 숨 막히는 곳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안정적인 조직의 규칙에서 편안함을 얻는 사람도 있고, 같은 일도 시기와 조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직업의 서열을 뒤집기보다 어떤 업무 수행 방식과 생활 리듬이 저에게 맞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는 편이 다음 선택에 유용했습니다. 퇴사를 돌아볼 때는 자유를 얻었다는 감정과 이후의 준비를 분리해 봅니다. 저는 지인의 제안으로 충분한 경험 없이 음식점을 시작했다가 손실을 겪었습니다. 그만두고 싶었던 이유가 분명하다고 다음 계획까지 충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현재의 고통을 벗어나는 일과 다음 생활을 꾸리는 일 사이에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다음 길의 이름보다 하루의 내용을 알아봅니다
지금 방향을 바꾼다면 저는 먼저 실제 하루를 그려보려 합니다. 언제 일어나 어디로 출근하고, 어떤 도구를 쓰며 누구와 일하는지, 휴식이 가능한지도 알아봅니다. 일이 끝난 뒤 몸과 생활에 남는 부담도 확인해야 합니다. 좋아 보이는 직함보다 반복해서 감당해야 할 행동을 아는 편이, 제 선택을 더 현실적으로 만들어줍니다.
경제적인 조건도 빠질 수 없습니다. 다음 달 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배우는 동안 수입이 줄면 어떻게 버틸지,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살펴야 합니다. 이런 계산이 꿈을 접으라는 뜻은 아닙니다. 전환의 속도를 조절해 나와 가족의 생활을 지키려는 준비입니다. 당장 떠나지 않고 배우는 시간을 갖는 선택에도 결단이 필요합니다. 기존의 일을 유지하며 작은 경험을 해보는 방법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격이나 기술을 알아보고 관련된 현장을 살펴보면 상상과 실제 사이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여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당장의 건강이나 안전 때문에 빨리 벗어나야 할 환경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전환 방식을 누구에게나 적용하는 대신 제 조건을 정확히 보는 일입니다.
목표를 내려놓은 뒤 곧바로 새로운 목표를 만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빈 시간을 전부 게으름으로 해석하면 무엇이든 붙잡아야 한다는 조급함이 커집니다. 생활의 기본을 유지하면서 흥미와 능력을 다시 살피는 기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방황을 아름답게 꾸밀 필요는 없지만, 아직 정하지 못했다는 상태 자체를 실패의 증거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생활을 바꾸는 이유를 적어두면 나중에 어려움을 만났을 때 처음의 기대와 현재의 조건을 비교할 수 있습니다. 힘들다는 감정만으로 또 다른 이동을 결정하기 전에, 바꿀 수 있는 업무와 견뎌야 할 한계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선택을 미루거나 수정하는 일도 제 삶을 책임지는 과정에 들어갑니다. 중요한 결정의 이유도 제 말로 남기겠습니다.
흩어진 경력을 억지로 하나의 성공담으로 묶지 않기
법학을 공부한 시간, 금융회사에서 보낸 시간, 주방에서 익힌 손기술은 겉으로 멀어 보입니다. 그래도 각 자리에서 배운 것을 현재에 가져올 여지는 있습니다. 제도를 읽는 관점과 조직의 흐름을 본 경험, 기준을 맞추며 결과를 만드는 습관을 구별해볼 수 있습니다. 이전의 경력이 새 일에 그대로 통하지는 않더라도, 다시 배울 때 쓸 질문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경험이 반드시 좋은 자산으로 바뀐다고 장담하지는 않습니다. 후회되는 선택과 잃은 시간도 있습니다. 의미를 찾기 어렵다면 그 아쉬움을 억지로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과거를 모두 성공의 준비 과정으로 만들기보다, 배울 부분과 되풀이하지 않을 부분을 함께 남기려 합니다. 그래야 실제로 일어난 일을 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술로 허무함을 피하려 했던 시간도 그렇습니다. 당시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과 그 방식의 위험을 인정하는 일은 함께 가야 합니다. 술이 없으면 잠이나 일상을 버티기 어려운 상태라면 혼자 참는 문제로 미루지 않고 상담과 진료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목표를 찾는 일이 생활을 무너뜨리는 방식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시험 준비생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았고, 금융회사의 명함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마다 아쉬움이 있었지만 무엇을 배울지 묻는 사람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 길을 멈춘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음 선택의 책임을 맡을 수 있습니다. 포기와 패배를 나누어 본다는 것은 제 선택을 모두 칭찬하는 일이 아니라, 선택 하나로 제 삶 전체를 끝내지 않는 일입니다.
참고: Wrosch, C. 외(2003), 「Adaptive self-regulation of unattainable goals」. https://pubmed.ncbi.nlm.nih.gov/150186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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