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도시의 주방을 거치며 월급 오십만 원으로 시작했던 저는 백팔십만 원을 받는 기술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익힌 기술을 믿고 감자탕집을 열었습니다. 제가 모은 일억 원에 형제들에게 빌린 일억 원을 더한, 이억 원 규모의 창업이었습니다. 돈의 무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간판 아래에는 저를 믿어준 가족의 기대와 제 손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함께 걸려 있었습니다. 처음 여섯 달은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방송국에서 출연 제안이 올 만큼 음식의 맛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동안 주방에서 버틴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잘 만들면 손님은 계속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당시의 결과가 가게의 미래까지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었는데, 좋은 흐름을 보면서 그 차이를 충분히 살피지 못했습니다.
손님이 줄어드는 가게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일
개업 여섯 달 무렵 바로 옆에 큰 고깃집이 들어섰습니다. 큰 자본과 새로운 유행을 앞세운 가게로 손님들의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매출은 떨어졌고 저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놓였습니다. 음식의 맛을 관리하는 일은 해봤지만, 주변의 경쟁과 상권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잘 만드는 기술과 가게를 운영하는 판단 사이의 차이가 드러났습니다. 직원을 줄이고 스물네 시간 영업하던 방식도 바꾸었습니다. 야간 영업을 멈추고 주간만 운영하다가, 마지막에는 약혼자와 어머니, 저까지 세 사람이 가게를 지켰습니다. 함께 버텨주는 가족은 고마웠지만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은 무거웠습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도 가족의 노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가게를 살리는 일과 가족의 수고에 보답하는 일을 같은 문제처럼 붙잡았습니다. 하지만 더 버틴다는 행동이 언제나 가족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쓴 돈과 기울인 노력이 아까울수록 멈추기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당시의 제가 정확히 언제 문을 닫아야 했는지 지금 쉽게 판정할 수도 없습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손실이 늘어나는 동안에도 이전에 들인 비용이 다음 결정을 무겁게 만들었다는 경험입니다.
문을 닫는 일은 숫자를 정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북적이던 가게가 조용해지고, 제가 만들려던 생활도 함께 멀어졌습니다. 아쉽고 미안한 마음을 곧바로 교훈으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실패를 통해 성장했다고 말하기 전에 잃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긍정적인 의미가 빨리 떠오르지 않는다고 그 슬픔까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제 책임을 살피되 원인을 하나로 만들지 않습니다
당시의 실패를 전부 옆 가게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경쟁점이 생겼다는 조건과 제가 준비하지 못했던 경영의 부분을 함께 봐야 합니다. 반대로 제가 더 성실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이미 가족과 긴 시간을 일하고 있었습니다. 필요한 것은 성실함의 양을 더 계산하는 일이 아니라 어떤 정보와 대응이 부족했는지 나누어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주방에서 칼을 다루고 맛을 일정하게 만드는 능력은 분명 제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금의 흐름을 보고 매출 변화에 대응하며 손실을 제한하는 일은 다른 배움이 필요했습니다. 이 구분은 저를 변명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고 무엇을 더 배워야 했는지 알아야 다음 선택의 준비도 구체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게가 실패했다는 사실에서 저는 일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넘어가면, 검토해야 할 원인이 사라집니다. 반대로 시장이 나빴다는 말로만 끝내도 제가 바꿀 부분은 보이지 않습니다. 계약과 비용, 손님의 변화, 일하는 방식처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돌아가는 편이 고통스럽더라도 더 도움이 됩니다. 가계의 변화도 살피며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과 자신을 끝없이 비난하는 것은 다릅니다.
자존감을 특정한 결과에 걸어두면 그 영역의 실패가 사람 전체의 가치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연구 관점이 있습니다. 제게 창업의 결과는 돈뿐 아니라 능력과 가족에 대한 책임을 한꺼번에 평가받는 일이었습니다. 크로코와 울프의 논의를 떠올리며 저는 그 묶음을 풀어봅니다. 가게의 결과, 가족과의 관계, 제 기술과 인간적인 존중을 각각 따로 살피려 합니다.
갚은 돈과 남은 돈이 각각 말해주는 것
가게를 정리한 뒤 형제들에게 빌린 일억 원을 갚았습니다. 손에 남은 돈은 약 삼천만 원이었습니다. 제가 모아 넣었던 돈이 크게 줄었다는 사실은 쓰라렸습니다. 빚을 갚았으니 괜찮다고 모든 손실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다만 가족에게 빌린 돈을 정리했다는 행동은, 사업이 끝난 뒤에도 제가 지킨 약속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그 경험을 다른 채무자의 도덕성을 재는 기준으로 삼고 싶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같은 자금과 상황을 가진 것은 아니며, 갚지 못했다고 성의가 없다는 뜻도 아닙니다. 상환이 어려울 때는 현실적인 조정과 전문적인 도움을 알아봐야 할 수 있습니다. 제 회고에서 의미 있는 것은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평가하는 일이 아니라,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책임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가족에게도 제 속마음을 짐작하라고만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미안함 때문에 말을 줄이면 관계에는 모르는 부분이 더 늘어납니다. 확인된 상황과 남은 과제, 앞으로 가능한 생활을 설명해야 함께 판단할 여지가 생깁니다. 상대가 실망하거나 걱정할 마음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책임을 다하려는 행동과 상대의 마음이 즉시 풀리는 결과는 같지 않습니다.
후회가 밀려오는 날에는 그때 할 수 없었던 일만 세기보다 실제로 해낸 중요한 행동도 함께 적어봅니다. 상실과 책임의 기록을 같이 놓아야 제 기억이 한쪽으로만 기울지 않습니다.
실패의 기억에서 다음 생활의 기준을 고릅니다
새로운 일터에서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삶은 제 사업보다 작아진 인생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손님 수와 매출에 매달리던 시간에서 벗어나 역할과 수입을 다르게 정리할 수 있는 방식이었습니다. 물론 고용된 일에도 다른 어려움이 있습니다. 창업과 취업 중 어느 쪽이 우월한지를 고르기보다 현재의 몸과 생활에 맞는 조건을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주방에서 익힌 정확성과 기준을 맞추는 습관은 이후 조선소에서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전혀 다른 기술이므로 새로 배워야 했지만, 결과를 확인하고 오차를 살피는 태도는 도움이 될 여지가 있었습니다. 간판을 내렸다고 제가 익힌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동시에 배움이 남았다는 말로 금전적인 아픔을 덮지 않으려 합니다. 잃은 돈을 한 번에 되찾겠다는 마음이 커지면 다음 판단도 조급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손실을 되돌리는 속도보다 현재 지킬 생활의 기준을 먼저 생각하려 합니다. 감당할 지출과 업무량을 살피고, 모르는 분야에는 준비할 시간을 두는 일입니다. 실패의 기억을 되살리는 목적은 저 자신을 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위험을 조금 더 정확히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문을 닫은 가게는 제 삶에서 아픈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사실을 감추지 않되 제 이름으로 삼지는 않으려 합니다. 맛을 배우고 일했던 사람, 가족에게 빌린 돈을 정리한 사람, 경영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던 사람이 모두 저입니다. 하나의 결과가 이 여러 사실을 지워버리도록 두지 않는 것, 그것이 실패 뒤에 제가 이어가고 싶은 생활의 태도입니다.
참고: Cocker, J.·Wolfe, C. T.(2001), 「Contingencies of self-worth」. https://pubmed.ncbi.nlm.nih.gov/11488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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