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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열흘 뒤 현장으로 돌아간 날 책임감의 기준을 다시 묻습니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10. 21.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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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에 처음 들어갔을 때 저는 여덟 평 남짓한 신혼집에서 살았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하고 왕복 한 시간 사십 분을 오가며 낯선 기술을 배웠습니다. 선박 구조물의 위치와 오차를 살피는 정도 업무였습니다. 남들이 석 달이면 배운다는 일을 여섯 달 붙잡고도 처음 부서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시 시작한 자리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후 다른 부서에서 기준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반장을 만났습니다. 질문하고 배울 수 있는 방식이 달라지자 배움도 달라졌습니다. 새벽 네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일하고 복습하던 시기였습니다. 일 년 만에 남들은 십 년 걸릴 것을 배웠다는 과한 칭찬도 들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기쁨과 함께 너무 큰 부담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잘 가르쳐준 사람과 끝없이 증명하려던 저
처음에는 뒤처진 사람이었다가 다른 환경에서는 빠르게 배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변화는 제 능력을 의지 하나로 설명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듣고, 모르는 부분을 수 있었기에 노력도 방향을 찾았습니다. 저는 혼자 버텨 성공한 이야기보다 어떻게 배울 기회를 얻었는지 함께 기억하고 싶습니다. 나이 많은 신입이라는 조급함도 있었습니다. 사업 실패 뒤에 다시 제 쓸모를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칭찬은 단순한 격려보다 제가 제자리를 찾았다는 확인처럼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그 확인을 잃지 않으려고 계속 더 일해야 한다고 생각한 데 있었습니다. 어제 인정받았으니 그만큼 해내야 한다는 명령이 제 안에서 커졌습니다. 좋은 평가를 기뻐하는 일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다만 일이 필요해서 하는지, 멈추면 가치가 떨어질까 봐 붙잡는지 구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성과가 좋을수록 쉬기 어려워진다면 칭찬이 생활을 지지하기보다 생활의 양을 정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저에게는 잘하고 있다는 말과 이제 쉬어도 된다는 말을 함께 받아들일 연습이 부족했습니다.
오백 명의 공정과 한 사람의 몸
신설된 세 번째 파트의 반장을 맡으며 약 오백 명과 연결된 공정의 최종 오차 판단을 책임졌습니다. 몇 밀리미터를 놓치면 큰 구조물을 다시 작업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금융회사에서 일할 때 수준으로 급여도 회복되었습니다. 책임과 보상이 커졌지만, 저는 그 책임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약 일 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밤에는 술을 마셔야 잠들 수 있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을 보내고 몸을 돌볼 여유는 점점 줄었습니다. 오늘의 공정을 지키는 동안 다음 날의 제 몸을 얼마나 쓸 수 있을지는 계산에서 빠졌습니다. 그때의 저는 오래 일하는 것을 책임감의 눈에 보이는 증거로 삼았습니다. 장시간 노동은 성격이나 태도만의 문제로 볼 수 없습니다. 인력과 공정의 운영, 역할을 나눌 수 있는 구조도 살펴야 합니다. 세계보건기구와 국제노동기구는 장시간 노동과 뇌졸중 및 허혈 심장질환 위험의 관련성을 추정한 연구를 발표했습니다. 이 결과가 제 어깨 질환의 원인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래 일하는 생활을 개인의 성실함으로만 칭찬할 수 없다는 점을 돌아보게 합니다. 제가 없어도 확인과 판단이 이어질 수 있어야 하는데, 저는 제 몸을 계속 투입하는 것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기준을 공유하고 질문을 남기며 역할을 나누는 일도 숙련자의 책임일 수 있었습니다. 혼자 감당한 시간이 길었다고 더 좋은 체계를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한 판단이 필요한 현장일수록 쉬고 회복할 수 있는 조건까지 업무의 일부로 보아야 했습니다.
수술 뒤에 먼저 돌아간 것은 불안이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오른쪽 어깨가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진료와 수술이 필요했습니다. 그때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총괄책임자의 질책을 들었습니다. 현장을 위해 애썼다고 생각한 제게는 아픈 몸의 책임마저 혼자 떠안는 말로 남았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뒤에도 저는 치료와 회복의 시간을 충분히 지키지 못했습니다. 수술 열흘 만에 통증이 심한 채 현장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자리를 잃을지 두려웠고 짐을 남기는 것 같아 미안했습니다. 당시에는 그 선택을 책임감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은 담당 의료진과 복귀 시점과 업무 범위를 충분히 상의해야 할 문제를, 불안과 미안함으로 대신 결정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때의 저를 어리석었다고 꾸짖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생계와 관계의 두려움은 실제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정을 이해한다고 같은 선택을 반복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음에는 어떤 업무를 얼마나 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회복 기간과 조정할 일을 설명하는 쪽으로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해는 면책보다 다음 선택을 돕는 데 쓰고 싶습니다. 술을 잠드는 방법으로 삼았던 생활도 따로 살펴야 했습니다. 술은 수면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어 불면을 해결하는 안정적인 방법이 아닙니다. 오래 많이 마셔 의존이 생긴 경우에는 갑자기 끊는 과정도 의료상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일의 종료 시각을 조정하는 문제와 함께, 수면과 음주 상태를 진료에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멈춰도 이어질 수 있는 책임을 만듭니다
경계를 세우는 말은 추상적인 다짐보다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복귀 조건을 상의하며 현재 통증 때문에 어려운 동작이 무엇인지, 어떤 도움이나 시간 조정이 필요한지 알릴 수 있습니다. 상대가 곧바로 받아주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회사의 절차와 진료 기록처럼 실제 조정에 필요한 자료도 확인해야 합니다. 용기만 가지면 모든 일터에서 쉴 수 있다는 말로 현실의 어려움을 덮고 싶지는 않습니다.
후배를 가르칠 기회가 있다면 제가 좋은 반장에게 배웠던 방식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빨리 배우라고 압박하기 전에 판단 기준을 설명하고,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저처럼 오래 남아야 성실하다는 기준을 물려주기보다, 정확하게 일하고 필요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태도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받은 가르침을 이어가는 방식도 제 노동관을 바꿀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도 열심히 살라는 말에 몸을 아끼라는 말을 함께 건네고 싶습니다. 부모가 자신을 소모하는 모습만 보여주면 아이는 아파도 견디는 것이 사랑이라고 배울 수 있습니다. 쉬어야 할 때 설명하고 치료받는 모습을 보이는 일도 책임의 한 형태입니다. 가족을 위해 일한다면 가족과 생활할 사람을 남겨두는 일도 계산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제 생활에서도 한 부분에만 힘을 주고 있지 않은지 묻습니다. 일의 정확함과 제 몸의 회복, 가족과의 시간이 함께 지속될 수 있는지 확인하려 합니다. 수술 열흘 뒤의 복귀를 자랑으로 남기기보다, 다음에는 멈출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참고: WHO·ILO(2021), 「Long working hours increasing deaths from heart disease and stroke」. https://www.who.int/news/item/17-05-2021-long-working-hours-increasing-deaths-from-heart-disease-and-stroke-who-ilo
참고: NHS, 「Insomnia」. https://www.nhs.uk/conditions/insom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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