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자란 저는 비교적 수월한 형태의 복무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입대를 자원했습니다. 소극적인 제 모습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두렵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입대 전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서도 낯선 곳에 가야 한다는 불안이 컸습니다. 당시의 저는 자신을 바꾸려면 더 엄격한 환경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방법이라고 여기지는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적응 속도가 느렸지만 지나면서 모임의 진행을 맡고 사람들 앞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당한 일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그 분노대로 행동했을 때의 위험도 마주했습니다. 제게 군 생활은 자신감을 얻은 시간인 동시에 힘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배워야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적응이 느린 날에도 참여는 시작되어 있었습니다
새 부대에 들어갔을 때 저는 곧바로 편안해지지 못했습니다. 주변의 규칙과 사람을 익히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남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자리에 저만 머뭇거리는 듯하면, 부족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긴장만으로 이후의 역할을 모두 예측할 수는 없었습니다. 환경을 알게 된 뒤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조금씩 보였습니다. 지금 낯선 자리에 들어갈 때는 적응을 너무 성급하게 평가하지 않으려 합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알고, 맡은 작은 일을 마치는 과정도 참여입니다. 처음부터 분위기를 이끌어야 인정받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적응이 늦다는 사실을 언제나 신중한 성격의 증거로 좋게 포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설명이 부족한지, 역할이 불분명한지, 제게 더 필요한 지원이 있는지 실제 조건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조용히 관찰하는 시간과 계속 뒤로 물러나는 시간은 겉으로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지금 무엇을 익히고 있는지 묻습니다. 관찰한 내용이 쌓이고 질문할 수 있다면 준비가 진행되는 중입니다. 반대로 두려운 상황을 계속 피하고만 있다면, 감당할 만한 작은 역할을 고르거나 도움을 청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속도를 존중한다는 것은 아무 변화도 필요 없다고 결론 내리는 일이 아닙니다.
부당함에 화가 나는 것과 해치는 행동은 다릅니다
상급자가 약한 병사를 심하게 괴롭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그 장면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제 행동을 모두 옳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비슷한 상황에서 폭력을 썼다가 갇힌 사례를 나중에 접하며, 동기와 행동의 결과를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습니다. 부당함 앞에서 화가 났다는 이유를 지워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그 감정이 가리키는 일을 실제로 줄일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하는가입니다. 제가 상대를 공격한다면 보호하려던 사람도 또 다른 위험에 놓일 수 있습니다. 분노를 참느냐 터뜨리느냐의 두 선택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안전을 확보하고 주변의 도움을 부르며 상황을 전달하는 길도 검토해야 합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는 분노의 초기 신호를 알아차리고 반응하기 전 시간을 두는 방법을 안내합니다. 제게 이 안내의 의미는 화가 나면 잠깐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이미 위험한 상황이라면 먼저 거리를 확보해야 합니다. 평소에는 제가 격해질 때 몸과 말투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 선택할 여유를 조금 일찍 만드는 연습으로 받아들입니다. 십 초만 생각하면 누구나 충동을 멈출 수 있다고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갈등이 반복되거나 자신과 타인을 해칠까 걱정될 정도라면 전문적인 도움도 필요합니다. 분노를 다루는 일을 의지의 시험으로만 만들면, 조절이 어려운 사람이 어려움을 숨기게 될 수 있습니다. 책임을 진다는 말에는 혼자 버티기보다 안전하게 도움받는 행동도 포함되어야 합니다.
최우수상의 의미를 너무 넓히지 않기
약 백 명이 모인 분대장 교육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경험은 제게 큰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학창 시절의 좌절 뒤에 저도 집중하고 배워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느낌을 되찾았습니다. 그때 기울인 노력과 몰입은 제 기억에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버틴 방식을 지금의 누군가에게 본받으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취와 그 과정의 부담을 따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 하나가 제 가능성을 보여주었지만, 제가 모든 일을 잘한다는 증명은 아니었습니다. 낯선 시험이나 사업에는 각각 다른 지식과 시간,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 차이를 놓치면 한 번의 자신감이 다음 도전의 규모를 작게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해낼 수 있다는 마음과 아직 무엇을 모르는지 묻는 태도가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결과를 되돌아볼 때도 혼자만의 의지로 설명하지 않으려 합니다. 주어진 교육과 역할, 함께한 사람들, 평가 기준이 있었기에 제 노력도 특정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의 조건을 살피면 다음 과제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더 잘 보입니다. 자신감을 기억하는 목적은 제 능력을 과시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배울 수 있었던 방식을 다음 생활에 옮기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취를 볼 때도 같은 여유가 필요합니다. 누구는 빨리 적응하고 누구는 상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각자의 책임감까지 순위를 매길 수는 없습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역할을 꾸준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가 인정받았던 기쁨을 기억할수록, 드러난 결과 하나로 주변의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이 앞설수록 당사자의 뜻도 확인해야 합니다. 제 분노를 보여주느라 정작 그 사람이 원하는 도움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전을 먼저 살피고, 가능한 범위에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듣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도움의 중심에는 제 정의로움보다 위험에 놓인 사람의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이 기준을 기억하면 강하게 나서는 행동만을 용기라고 부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분노가 가라앉은 뒤에는 선택한 행동이 실제로 도움이 되었는지도 돌아보겠습니다. 그 확인까지도 제 책임으로 남겨두려 합니다.
돌아갈 집이 달라진 뒤에도 남은 것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어린 시절의 고향집은 사라졌고 낯선 도시로 옮겨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남겨두었던 귀가의 풍경과 실제의 풍경이 달랐습니다. 군대에서 자신감을 얻었으니 그 변화도 씩씩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익숙한 장소가 없어진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남습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이 상실을 아무렇지 않게 견디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새 환경에서 역할을 해본 기억은 제 안에 남았습니다. 지금의 공간이 낯설어도 차례로 익혀볼 수 있고, 두려움이 있어도 작은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자료였습니다. 예전의 집을 대신할 완벽한 안전감을 찾기보다, 오늘 머무는 자리에서 어떤 관계와 생활을 만들지 물을 수 있었습니다.
제게 필요한 힘은 두 종류였습니다. 해야 할 일 앞에서 한 발 나아가는 힘과, 격한 마음이 올라올 때 멈추어 행동을 고르는 힘입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책임을 다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도 부당한 일에 무뎌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이 누구를 지키려는지 잊지 않고, 서로의 안전을 살피며 상대와 제 삶에 덜 위험한 행동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참고: NHS, 「Get help with anger」. https://www.nhs.uk/mental-health/feelings-symptoms-behaviours/feelings-and-symptoms/a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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