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던 어느 시기, 나는 누군가가 나에게 해를 끼칠 것이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막연히 ‘그럴 수도 있다’라고 걱정한 정도가 아니었다. 실제로 누군가가 나를 해치려 한다고 믿었고, 머릿속에서는 위험한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나는 단순한 불안을 넘어 망상에 가까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은 직장 스트레스가 심해질수록 강해졌다. 마음은 늘 주변을 경계했고 좀처럼 편안해지지 않았다. 잠이 부족해지면서 만성두통도 겪었다. 몸무게는 약 20킬로그램 늘었고 만나는 일도 피하게 되었다. 불안이 생각과 수면, 몸, 관계까지 좁혀 가고 있었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을 피하면 당장은 긴장이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만날 수 있는 사람과 할 수 있는 일이 함께 줄어들었다. 심리학에서는 위험이 낮은 상황을 반복해서 피하면 두려움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실제 위협을 피하는 행동과 불안 때문에 안전한 일상까지 포기하는 것은 다르다. 당시에는 그 차이를 판단할 여유가 없었다.
불안과 망상은 같은 것이 아니다
불안은 현재 눈앞에 없는 위험을 예상할 때도 나타날 수 있으며, 스트레스가 심할 때 더 커지기도 한다. 그러나 불안한 상상과 망상은 같지 않다. ‘혹시 누가 나를 해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하면서도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과, 실제로 누군가 해치려 한다고 확신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미국 국립 정신건강 연구소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잘못된 믿음을 망상의 한 예로 설명한다.
그렇다고 이 기록만으로 당시 나에게 어떤 질환이 있었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망상과 비슷한 경험은 여러 정신질환이나 신체 상태, 수면 부족, 약물이나 물질 사용 등 다양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다. 정확한 원인은 전문가가 증상의 시작과 지속 기간, 수면과 건강 상태 등을 종합해 평가해야 한다. 당시 나는 진료를 받지 않았기에 지금도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내게 필요했던 것은 누군가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확답을 끝없이 구하는 일이 아니었다. 잠과 두통을 점검하고 스트레스에서 잠시 떨어져 내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먼저였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생활의 문제와 혼자 판단하기 어려운 증상을 나누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잠을 자고 산을 오르며
결국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한 달 정도 쉬면서 밀린 잠을 많이 잤고 시작했다. 일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는 동안 불안과 두통, 누군가 나를 해칠 것 같다는 생각은 많이 줄었다. 나에게 휴식과 등산이 회복의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하다. 다만 증상이 줄어든 것이 휴식이나 등산만의 효과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직장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일과 수면, 시간의 흐름 등 여러 변화가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창업 뒤 다른 모습으로 돌아온 불안
증상이 나아진 뒤에는 다시 직장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덜 만나는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그래서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을 취득하고 고깃집을 열었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내 일을 시작했다는 점에서는 큰 변화였다. 하지만 창업은 불안을 완전히 없애 주지 않았다.
가게가 생각처럼 잘되지 않자 생계에 대한 걱정이 커졌다. 직장에서는 사람과 스트레스가 두려웠다면, 가게에서는 실패와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웠다. 피하고 싶었던 불안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찾아온 셈이었다. 그때 나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술을 마시는 동안에는 긴장이 잠시 흐려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마시는 술은 불편한 감정을 일시적으로 무디게 할 수 있어도, 음주 사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더 키우는 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내 경우에도 술은 가게의 어려움을 해결하지 못했고 이해하거나 치료하는 방법도 아니었다.
회복은 한 번에 끝나지 않았다. 좋아졌다가 창업의 어려움 앞에서 또 흔들렸고, 술에 기대기도 했다. 그 과정도 내가 지나온 회복의 일부였다.
시간이 흐른 지금 알게 된 것
이 경험을 돌아보며 알게 된 것은 불안을 피하려고 환경을 바꾸는 것만으로 마음속 어려움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를 떠난 선택과 기술을 배운 노력까지 잘못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당시에는 살아남기 위해 거리를 두고 쉴 시간이 필요했다. 다만 사람을 만나지 않는 삶만 찾기보다, 내 상태를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받는 일도 함께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그때처럼 누군가 나를 해칠 것이라는 느낌이 없다. 생활도 마음도 많이 좋아졌다고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는 말로만 과거를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당시의 나는 불안과 수면 부족, 두통, 대인기피가 일상을 흔들 정도였고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에게
비슷한 경험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혼자서 불안인지 망상인지 판단하며 버티지 않았으면 한다. 누군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믿음이 생기거나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기 어렵고, 잠과 직장 생활이 무너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 등 전문 기관에서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증상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즉각적인 위험이 있다면 112나 119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불안을 이겨낸다는 것은 다시는 걱정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스트레스로 마음과 몸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혼자 피하거나 술로 견디기 전에 도움을 선택하는 일에 가깝다. 당시의 나에게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 전하고 싶다. ‘네가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잠을 자고 쉬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 겪는 일을 믿을 만한 사람과 전문가에게 말해도 된다.’
참고 자료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Understanding Psychosis.
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 Generalized Anxiety Disorder.
National Institute on Alcohol Abuse and Alcoholism. The Cycle of Alcohol Addiction.
NHS Every Mind Matters. Facing your fears.
World Health Organization. Anxiety disor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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