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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잃은 뒤, 나까지 잃었다고 생각했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by 늘파란바다 2026. 9. 4.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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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추락사고로 목과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큰 수술이 필요했다. 이미 어깨와 무릎 수술을 받은 몸이었다. 거기에 목과 허리까지 다치자 써서 일하기가 어려워졌다. 그전에도 통증을 안고 현장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지만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내 의지만으로 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19년, 나는 10년 가까이 다닌 조선소를 떠났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더디게 일을 배웠고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다른 부서에서 다시 익혀 기술을 인정받았고 맡았다. 그 시간은 내 생계를 지탱했고 사업 실패 뒤 잃었던 자신감도 되찾게 해주었다. 그런 일터를 떠나면서 월급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설명하던 가장 익숙한 말도 함께 흔들렸다.
부산 동래의 병원에서 큰 수술을 받았고 이후 지체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오른쪽 다리는 약 3센티미터 짧아졌다. 몸의 균형을 잡기도 어려웠다. 전에는 몸을 움직여 맡은 일을 해내는 데 자신이 있었다. 이제는 그 몸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일을 얼마나 빨리 끝낼 것인가를 고민하던 생활에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움직임이 무엇인지부터 다시 알아야 하는 생활로 바뀌었다. 나는 주방에서도 조선소에서도 손으로 결과를 만드는 일을 해왔다. 재료를 일정하게 썰고 같은 맛을 내는 방법을 찾았다. 조선소에서는 구조물이 제대로 맞는지 확인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 판단했다. 배운 것을 몸으로 실행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자신감의 바탕이었다. 사고 뒤 그 방식이 어려워지자, 쌓아 온 경험까지 쓸 수 없게 된 것처럼 느꼈다. 내가 배운 것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직업과 소득을 잃었고 흔들렸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몸이 아프다는 한 가지 문제로 정리되지 않았다.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할지, 가족에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이 이어졌다. 하나에 답을 구하지 못한 채 다른 걱정이 따라왔다. 회복에 집중하고 싶어도 생활이 저절로 멈춰 기다려 주는 것은 아니었다. 아픈 몸과 불안한 생활을 동시에 감당해야 했다. 이전처럼 일할 수 없게 되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도움받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오히려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이 부끄러웠다. 지금은 도움받는다고 한 사람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당시에는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로 나를 평가했다. 받는 쪽에 선 내 모습을 바라보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몸의 통증도 힘들었지만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됐다는 생각은 더 견디기 어려웠다. 그것은 장애가 생긴 사람에 대한 사실이 아니라 그때 내가 나에게 내린 가혹한 평가였다. 일을 할 수 없다는 상황을 내가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결론으로 바꾸고 있었다. 두 생각 사이의 거리를 살피지 못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아직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처럼 받아들였다. 돌아보면 나는 이전에도 결과가 나쁘면 나 자신을 함께 낮춰 보곤 했다. 고등학교에서 성적이 떨어졌을 때, 사법시험을 포기했을 때, 사업의 문을 닫았을 때도 그랬다. 이번에는 몸의 변화까지 겹쳤다. 노력하면 다시 만회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붙잡기도 어려웠다. 열심히 살아도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기울일 노력의 방향을 찾기보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남긴 것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일이 잘되지 않으면 다른 일을 찾아 시작했다. 금융회사를 떠난 뒤 요리를 배웠고, 음식점이 망한 뒤에는 조선소에 갔다. 어느 곳에서든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들여 배울 수 있었다. 이번에는 새 일을 시작할 몸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이전의 재출발을 가능하게 했던 방법을 그대로 쓸 수 없자 다른 방법도 없을 것처럼 느꼈다. 익숙한 해결책이 막힌 상황을 삶 전체가 막힌 것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당시에는 이런 생각을 차분히 나누어 살필 여유가 없었다. 목과 허리의 통증이 있었고 소득을 잃은 현실도 분명했다. 걱정이 전부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실제로 어려워진 생활에 나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보태고 있었다. 아픈 몸으로 살아갈 길을 찾아야 하는데, 그 길을 찾을 사람인 나를 먼저 무가치하다고 몰아붙였다. 지금 쓰는 것은 그때의 어려움과 자기 비난을 조금씩 구분해 보는 일이기도 하다. 조선소를 떠났다는 일은 한 문장으로 적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장 안에는 익숙한 일을 더는 예전처럼 할 수 없다는 현실과 앞으로의 생계를 모른다는 두려움이 함께 들어 있다. 기록에서는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도 당시의 삶에서는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사고와 수술이 있었다는 사실만 적어서는 그 뒤에 내가 왜 그렇게 막막했는지를 충분히 말하기 어렵다. 몸은 이전과 달라졌고 다시 살아가는 방식도 달라져야 했다. 그러나 그 변화를 바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오래 일하고 많이 버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믿던 내게 다른 기준은 아직 낯설었다. 이 시간을 무조건 마음을 강하게 먹으면 넘길 수 있었던 일로 말하고 싶지는 않다. 몸을 치료하고 생활을 꾸릴 방법을 찾아야 했으며, 도움이 필요한 나를 받아들이는 일도 남아 있었다. 일을 잃었다고 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그때의 나는 아직 내 이야기로 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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