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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뼈다귀 굴 천지 의 문을 닫던 시간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설거지 하던 손으로 내 기술을 만들기까지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안정된 회사를 나와 처음 가게 문을 닫기까지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법학과 와 군대에서, 자신감을 찾고 잃으며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560등 대에서 65등까지, 성적 뒤에 남은 피로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어린이 회장이던 아이, 통학으로 12K 걸어 다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바다가 집 앞에 있던 어린 시절

    2026.09.04 by 늘파란바다

뼈다귀 굴 천지 의 문을 닫던 시간

부산 남구 용호동에 감자탕집 ‘뼈다귀 굴천지’를 열었다. 여러 식당에서 설거지와 칼질부터 배웠고, 냉면과 만두를 맡으며 내 기술을 인정받은 뒤였다.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좋았고 내 가게에서 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 사업을 했을 때와 달리 주방에서 쌓은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믿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가게 전체를 운영할 준비가 됐는지는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가게에는 모두 2억 원이 들어갔다. 내가 마련한 1억 원에 형제들에게 빌린 1억 원을 보탰다. 내 돈만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그 금액을 적으면 돈을 빌려준 가족의 마음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 돈을 빌려주었기에 내 돈만으로는 하기 어려웠던 규모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의 결과가 내 생활..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7

설거지 하던 손으로 내 기술을 만들기까지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대학 친구와 시작한 고깃집은 오래가지 못했다. 준비와 경험이 부족했고 단순하지 않았다. 첫 사업을 접었지만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었다.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을 따고 울산의 뷔페식당에서 일했다. 자격증을 얻었다고 곧바로 능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필요한 솜씨는 실제 일을 하며 몸에 익혀야 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큰 식당으로 옮겼을 때 내 자리는 설거지하는 곳이었다. 설거지를 맡은 사람이 네 명이나 됐지만 접시는 하루 종일 밀려들었다. 평일에도 손님이 약 천 명, 주말에는 약 삼천 명이 찾았다. 음식물이 묻은 그릇과 뜨거운 물을 만지며 미끄러운 바닥에서 하루를 보냈다. 나이 많은 신입자에게 맡겨진 첫 일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6

안정된 회사를 나와 처음 가게 문을 닫기까지

금융회사에서 보낸 2년은 내게 어두운 시간으로 남아 있다. 어렵게 취업했고 안정된 직장이었지만 그 안에서 지내는 하루는 편하지 않았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마음도 안정될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나 역시 취업을 준비하며 합격을 기대했다. 그러나 입사할 수 있는지와 그곳의 생활을 감당하며 살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그 차이를 충분히 생각하기 전에 나는 먼저 취업이라는 결과를 향해 움직였다. 졸업을 앞둔 상반기에는 삼성그룹에 지원했다. 서울에서 새벽 6시부터 약 열두 시간 동안 입사 시험과 면접을 치렀다. 마지막 결과만 남겨 두고 있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최종 합격하지는 못했다. 선배에게 부산 지원자 가운데 내 점수가 가장 높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알 수 없었다.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한 채 다음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5

법학과 와 군대에서, 자신감을 찾고 잃으며

대학 원서를 쓸 때 부산대학교 사회복지학과와 동아대학교 법학과 사이에서 오래 고민했다. 사람을 돕는 일에 관심이 있었지만 결국 법학을 택했다. 당시 동아대 법학과는 부산에서 명성이 높았고 사법시험 합격자도 여러 명 배출하던 곳이었다. 그곳에 가면 고등학교에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보다 어디에 들어가야 다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더 크게 생각했던 선택이었다. 사회복지에 관심이 없어서 그 길을 접은 것은 아니었다.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뒤로 미뤘다. 지금 돌아보면 자신감이 흔들릴 때마다 새로운 이름이나 성과가 나를 다시 세워 줄 것처럼 생각한 면이 있었다. 법학과에 들어간 선택도 그런 마음과 무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시의 결정을 후회한다는 한마디로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5

560등 대에서 65등까지, 성적 뒤에 남은 피로

포항고등학교 첫 시험에서 약 580명 가운데 560등 대를 받았다. 울릉도에서 공부를 잘한다는 말을 듣던 내게 거의 꼴찌라는 순위를 줬다.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너무 많았다. 같은 내가 시험을 보았는데 평가가 크게 달라졌다. 지금 돌아보면 학교가 바뀌며 비교하는 범위도 달라진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 숫자를 차분히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섬에서 가지고 온 자신감이 그 시험 앞에서 흔들렸다. 처음부터 포항고에 가려던 것은 아니었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금호공업고등학교였다. 기술을 배워 삼성전자에 취업하고 일찍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었다. 좋은 대학으로 가는 길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내 손에 기술을 갖고 일을 시작하는 쪽에 마음이 있었다. 훗날 다른 일을 거쳐 기술을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4

어린이 회장이던 아이, 통학으로 12K 걸어 다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공부 잘하던 아이의 모습과 함께 여러 장면이 떠오른다. 친구의 응원을 받아 전교생 앞에 섰던 날, 빌린 선글라스를 쓰고 노래했던 소풍날, 학교까지 걸어 다니던 긴 길이다. 나는 평소 말이 적었지만 앞에 나서기도 했고, 마음에 있는 말을 끝내 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 여러 모습이 나의 어린 시절 안에 함께 있다. 초등학교 때에는 공부를 잘했다. 늘 한 명의 경쟁자가 있었고, 그 친구를 한 번이라도 이겨 보고 싶었다.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된 데에는 그 마음이 있었다. 지금의 눈으로 보면 어린아이의 승부욕일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그 친구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가까이에 경쟁자가 있다는 것이 어린 나를 공부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6학년이 되자 전교 어린이회장 선거가 열렸다. 4학년..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3

바다가 집 앞에 있던 어린 시절

내가 자란 곳은 울릉군 북면 현포리 신포구였다. 스무 가구 남짓한 마을에서 집 앞을 보면 바다가 있었고 뒤를 보면 높은 산이 있었다. 처음에는 초가집에 살았고 ㄱ자 모양의 함석지붕 집으로 옮겼다. 어린 시절의 집을 떠올리면 건물 하나만 생각나지 않는다. 부모님이 일하러 나가던 바다와 밭, 아이들이 심부름하러 다니던 길까지 함께 떠오른다. 내게 고향은 그 생활이 이루어지던 자리다. 부모님은 바다와 밭으로 일을 나가셨다. 마을의 하루도 바람과 파도에 따라 달라졌다. 집에 남은 아이들은 집안일과 심부름을 나누어 맡았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집의 살림은 부모님 두 분의 노동만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까지 할 수 있는 일을 보태며 살았다. 그때는 그것이 우리 형편인지, 다른 집도 그렇게 사는지 따져 보지..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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