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 오늘

고정 헤더 영역

글 제목

메뉴 레이어

다시 , 오늘

메뉴 리스트

  • 홈
  • 태그
  • 분류 전체보기
    •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학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 책 영화 공연으로 마음 읽기

검색 레이어

다시 , 오늘

검색 영역

컨텐츠 검색

전체 글

  • 아들의 공부와 돌봄을 맡기기로 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수입이 줄어든 뒤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아이의 등원 하원 시간 사이에서 일을 찾았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아들을 데려온 뒤에야 알게 된 하루의 무게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술을 끊기로 한 날에도 삶은 막막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일을 잃은 뒤, 나까지 잃었다고 생각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아픈 몸으로 출근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믿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조선소의 느린 신입이 책임자가 되기까지

    2026.09.04 by 늘파란바다

아들의 공부와 돌봄을 맡기기로 했다

아들의 교육을 생각하면 부모님이 나를 대학까지 보내 주신 일이 먼저 떠오른다. 빠듯한 형편에서 그 돈을 마련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하셨을까. 학생이던 나는 내가 공부하는 일에 마음을 썼지만, 아이를 키우는 지금은 배움 뒤에 있는 생활비와 시간을 생각한다. 저축하고 앞으로의 생활을 계획할 때도 아들의 교육이 먼저 떠올랐다. 나도 가능한 만큼 배울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방과후학교에 15만 원, 국어와 영어, 수학 교육에 41만 원을 썼다. 내 형편에서 교육비는 가볍게 생각할 돈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내가 누렸던 배움의 기회를 아이에게도 가능한 만큼 주고 싶었다. 얼마를 쓰는지가 곧 부모의 마음을 증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생활 안에서 아이의 배움에 어떤 자리를 내줄지 고민..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32

수입이 줄어든 뒤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다

프리랜서로 일할 방법을 찾은 것은 아들을 돌볼 시간을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생활을 하기 어려웠고 이전 같지 않았다. 일의 이름보다 생활에 맞는지가 먼저였다.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만 보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없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의 일정과 내 몸의 상태를 함께 고려하면 내가 시도해 볼 수 있는 방식이었다. 법학을 공부한 경험과 법 관련 분야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소개와 연결에 가까운 일을 하며 소득을 얻기도 했다. 한때는 사법시험을 포기한 일을 실패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시험 준비를 이어가지 못했다고 공부한 시간과 관심까지 모두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전의 경험을 살폈다. 지난 경력을 큰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31

아이의 등원 하원 시간 사이에서 일을 찾았다

아들을 키우면서 일자리를 찾을 때는 예전과 다른 것부터 살펴야 했다. 얼마를 벌 수 있는지뿐 아니라 언제 일할 수 있는지,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아이를 돌보고 생활비를 마련하고 몸도 보살펴야 했다. 어느 하나를 나중으로 미루기 어려웠다. 세 가지를 모두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막연히 걱정한다고 아이의 등하교 시간이 바뀌지는 않았다. 내 하루를 그 시간에 맞춰 다시 짜야 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회사에 다니기는 어려웠다. 아들의 등하교와 돌봄을 맞춰야 하고 있는 몸도 고려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고르고 생활을 맞추던 때와는 달랐다. 내게는 이미 지켜야 할 시간이 있었다. 조건이 맞지 않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지만, 그 조건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31

아들을 데려온 뒤에야 알게 된 하루의 무게

부모님이 계신 양산 가까이로 돌아와 살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맡겼던 아들을 데려왔다. 다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기쁜 마음만으로는 두 사람의 생활을 꾸릴 수 없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유치원에 보내는 일을 이제 내가 맡아야 했다. 아버지로 돌아간다는 말은 크게 들렸지만 실제로 내 앞에 놓인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아이의 하루였다.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며 울었다. 아들을 키워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렸다. 이미 다섯 자녀를 키우신 분들에게 다시 어린 손자를 맡겼으니 죄송한 마음이 컸다. 내가 무너져 있던 동안에도 아이의 생활은 멈추지 않았고, 그 생활을 부모님이 지켜 주셨다. 아들을 다시 데려온 것으로 지난 시간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대신 감당하신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30

술을 끊기로 한 날에도 삶은 막막했다

몸을 다친 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통증만이 아니었다. 이전처럼 일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받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자꾸 내 쓸모를 따졌다. 돈을 벌어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가 보살핌받아야 했다. 몸이 할 수 없는 일과 내가 가진 가치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때는 구분하지 못했다. 일을 잃은 일이 곧 나 자신을 잃은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도움받아야 하는 몸을 가진 사람이 되어도 아버지이자 아들이라는 내 자리는 남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도 실패는 여러 번 있었다. 금융회사를 나온 뒤에는 요리를 배웠고, 음식점 문을 닫은 뒤에는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새로 배우고 오래 일하면 어떻게든 다음 생활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30

일을 잃은 뒤, 나까지 잃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밤 추락사고로 목과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큰 수술이 필요했다. 이미 어깨와 무릎 수술을 받은 몸이었다. 거기에 목과 허리까지 다치자 써서 일하기가 어려워졌다. 그전에도 통증을 안고 현장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지만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내 의지만으로 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19년, 나는 10년 가까이 다닌 조선소를 떠났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더디게 일을 배웠고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다른 부서에서 다시 익혀 기술을 인정받았고 맡았다. 그 시간은 내 생계를 지탱했고 사업 실패 뒤 잃었던 자신감도 되찾게 해주었다. 그런 일터를 떠나면서 월급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설명하던 가장 익숙한 말도 함께 흔들렸다. 부산 동래의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9

아픈 몸으로 출근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믿었다

어느 아침 오른쪽 어깨가 움직이지 않았다. 조선소에서 기술을 익히고 책임자가 되기까지 나는 일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고 쉬지 않고 일한 시간도 길었다. 몸은 그 생활을 따라와 줄 것처럼 여겼다. 어깨를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나서야 내 뜻만으로 계속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눈앞에 놓였다. 맡은 일이 있다는 이유로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진주의 병원에서 수술받았다. 회사의 총괄책임자는 바쁘시기에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나를 나무랐다. 충격을 받았다. 회사 일을 하느라 몸을 아끼지 않았는데 아픈 것까지 내 잘못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느꼈다. 몸이 고장 나기 전에는 오래 일하는 나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수술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동안의 노..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8

조선소의 느린 신입이 책임자가 되기까지

결혼 뒤 경남 고성의 조선소에 들어갔다. 신혼집은 통영에 얻은 여덟 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통영에서 고성까지 왕복 1시간 40분이 걸렸다.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밤 8시쯤 돌아왔다. 집에서 보낼 시간은 짧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생활을 지나, 정해진 일터에 나가 일을 배우는 생활이 시작됐다. 주방에서 쌓은 기술이 조선소에서 곧바로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와 표시 업무를 처음부터 배웠다. 나이는 많았지만 나는 신입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석 달이면 익히는 일을 여섯 달 동안 붙잡았다. 남보다 늦었다는 생각은 이미 나이가 많다는 부담과 겹쳤다. 다른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도 모르는 일 앞에서는 다시 서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8

추가 정보

인기글

최신글

페이징

이전
1 ··· 5 6 7 8 9
다음
TISTORY
다시 , 오늘 © Magazine Lab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투브 메일

티스토리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