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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 아이의 등원 하원 시간 사이에서 일을 찾았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아들을 데려온 뒤에야 알게 된 하루의 무게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술을 끊기로 한 날에도 삶은 막막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일을 잃은 뒤, 나까지 잃었다고 생각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아픈 몸으로 출근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믿었다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조선소의 느린 신입이 책임자가 되기까지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뼈다귀 굴 천지 의 문을 닫던 시간

    2026.09.04 by 늘파란바다

  • 설거지 하던 손으로 내 기술을 만들기까지

    2026.09.04 by 늘파란바다

아이의 등원 하원 시간 사이에서 일을 찾았다

아들을 키우면서 일자리를 찾을 때는 예전과 다른 것부터 살펴야 했다. 얼마를 벌 수 있는지뿐 아니라 언제 일할 수 있는지, 내 몸이 감당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아이를 돌보고 생활비를 마련하고 몸도 보살펴야 했다. 어느 하나를 나중으로 미루기 어려웠다. 세 가지를 모두 해낼 수 있을까 싶었지만, 막연히 걱정한다고 아이의 등하교 시간이 바뀌지는 않았다. 내 하루를 그 시간에 맞춰 다시 짜야 했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는 회사에 다니기는 어려웠다. 아들의 등하교와 돌봄을 맞춰야 하고 있는 몸도 고려해야 했다. 하고 싶은 일을 먼저 고르고 생활을 맞추던 때와는 달랐다. 내게는 이미 지켜야 할 시간이 있었다. 조건이 맞지 않는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답답했지만, 그 조건이 없는 것처럼 생각할 수는 없었다..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31

아들을 데려온 뒤에야 알게 된 하루의 무게

부모님이 계신 양산 가까이로 돌아와 살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맡겼던 아들을 데려왔다. 다시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기쁜 마음만으로는 두 사람의 생활을 꾸릴 수 없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유치원에 보내는 일을 이제 내가 맡아야 했다. 아버지로 돌아간다는 말은 크게 들렸지만 실제로 내 앞에 놓인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지는 아이의 하루였다. 부모님께 용서를 구하며 울었다. 아들을 키워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렸다. 이미 다섯 자녀를 키우신 분들에게 다시 어린 손자를 맡겼으니 죄송한 마음이 컸다. 내가 무너져 있던 동안에도 아이의 생활은 멈추지 않았고, 그 생활을 부모님이 지켜 주셨다. 아들을 다시 데려온 것으로 지난 시간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대신 감당하신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30

술을 끊기로 한 날에도 삶은 막막했다

몸을 다친 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통증만이 아니었다. 이전처럼 일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도움받아야 한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자꾸 내 쓸모를 따졌다. 돈을 벌어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이제는 내가 보살핌받아야 했다. 몸이 할 수 없는 일과 내가 가진 가치가 서로 다른 문제라는 것을 그때는 구분하지 못했다. 일을 잃은 일이 곧 나 자신을 잃은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그때의 나를 돌아보며, 도움받아야 하는 몸을 가진 사람이 되어도 아버지이자 아들이라는 내 자리는 남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전에도 실패는 여러 번 있었다. 금융회사를 나온 뒤에는 요리를 배웠고, 음식점 문을 닫은 뒤에는 조선소 일을 시작했다. 새로 배우고 오래 일하면 어떻게든 다음 생활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30

일을 잃은 뒤, 나까지 잃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밤 추락사고로 목과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큰 수술이 필요했다. 이미 어깨와 무릎 수술을 받은 몸이었다. 거기에 목과 허리까지 다치자 써서 일하기가 어려워졌다. 그전에도 통증을 안고 현장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지만 생활을 이어 갈 수 없었다.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를 내 의지만으로 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2019년, 나는 10년 가까이 다닌 조선소를 떠났다. 처음에는 남들보다 더디게 일을 배웠고 부족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다른 부서에서 다시 익혀 기술을 인정받았고 맡았다. 그 시간은 내 생계를 지탱했고 사업 실패 뒤 잃었던 자신감도 되찾게 해주었다. 그런 일터를 떠나면서 월급만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설명하던 가장 익숙한 말도 함께 흔들렸다. 부산 동래의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9

아픈 몸으로 출근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믿었다

어느 아침 오른쪽 어깨가 움직이지 않았다. 조선소에서 기술을 익히고 책임자가 되기까지 나는 일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고 쉬지 않고 일한 시간도 길었다. 몸은 그 생활을 따라와 줄 것처럼 여겼다. 어깨를 움직일 수 없게 되고 나서야 내 뜻만으로 계속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이 눈앞에 놓였다. 맡은 일이 있다는 이유로 통증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진주의 병원에서 수술받았다. 회사의 총괄책임자는 바쁘시기에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나를 나무랐다. 충격을 받았다. 회사 일을 하느라 몸을 아끼지 않았는데 아픈 것까지 내 잘못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느꼈다. 몸이 고장 나기 전에는 오래 일하는 나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수술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자 그동안의 노..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8

조선소의 느린 신입이 책임자가 되기까지

결혼 뒤 경남 고성의 조선소에 들어갔다. 신혼집은 통영에 얻은 여덟 평 남짓한 원룸이었다. 통영에서 고성까지 왕복 1시간 40분이 걸렸다. 새벽 5시에 집을 나가 밤 8시쯤 돌아왔다. 집에서 보낼 시간은 짧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가게 문을 열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생활을 지나, 정해진 일터에 나가 일을 배우는 생활이 시작됐다. 주방에서 쌓은 기술이 조선소에서 곧바로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정도와 표시 업무를 처음부터 배웠다. 나이는 많았지만 나는 신입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석 달이면 익히는 일을 여섯 달 동안 붙잡았다. 남보다 늦었다는 생각은 이미 나이가 많다는 부담과 겹쳤다. 다른 일을 해본 경험이 있어도 모르는 일 앞에서는 다시 서툴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8

뼈다귀 굴 천지 의 문을 닫던 시간

부산 남구 용호동에 감자탕집 ‘뼈다귀 굴천지’를 열었다. 여러 식당에서 설거지와 칼질부터 배웠고, 냉면과 만두를 맡으며 내 기술을 인정받은 뒤였다. 손으로 음식을 만드는 일이 좋았고 내 가게에서 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 사업을 했을 때와 달리 주방에서 쌓은 경험이 있었다. 그 경험을 믿었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만으로 가게 전체를 운영할 준비가 됐는지는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가게에는 모두 2억 원이 들어갔다. 내가 마련한 1억 원에 형제들에게 빌린 1억 원을 보탰다. 내 돈만으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 그 금액을 적으면 돈을 빌려준 가족의 마음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가족이 돈을 빌려주었기에 내 돈만으로는 하기 어려웠던 규모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업의 결과가 내 생활..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7

설거지 하던 손으로 내 기술을 만들기까지

금융회사를 그만두고 대학 친구와 시작한 고깃집은 오래가지 못했다. 준비와 경험이 부족했고 단순하지 않았다. 첫 사업을 접었지만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음식을 만드는 일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었다.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을 따고 울산의 뷔페식당에서 일했다. 자격증을 얻었다고 곧바로 능숙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필요한 솜씨는 실제 일을 하며 몸에 익혀야 했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큰 식당으로 옮겼을 때 내 자리는 설거지하는 곳이었다. 설거지를 맡은 사람이 네 명이나 됐지만 접시는 하루 종일 밀려들었다. 평일에도 손님이 약 천 명, 주말에는 약 삼천 명이 찾았다. 음식물이 묻은 그릇과 뜨거운 물을 만지며 미끄러운 바닥에서 하루를 보냈다. 나이 많은 신입자에게 맡겨진 첫 일이었다. 남들보다 빨리 ..

심리치유에세이(다시 시작하는삶의 기록) 2026. 9. 4.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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